[기자수첩] '사이다 강박'이 낳은 한심한 '막말 정치'

김윤호 기자
입력일 2019-05-30 13:48 수정일 2019-05-30 14:53 발행일 2019-05-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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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윤호 정치경제부 기자

올해 정치권의 막말은 유달리 볼썽사납다. 정치권을 취재하다 보면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온갖 노골적인 표현들을 듣는데, 요새는 공개적인 막말 탓에 오히려 취재원과의 사담이 더 점잖아 보인다.

올초 ‘조작정권’이라고 규정당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대변인’을 거쳐 근래에는 ‘좌파 독재자’가 됐다. 반작용으로 자유한국당에는 ‘독재자의 후예’ ‘사이코패스’라는 날선 표현들이 돌아왔다.

갈수록 막말이 격해지는 건 여야 대치 장기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가오는 총선을 의식한 ‘사이다 발언 강박’ 탓이 크다. 막말은 자신과 생각만 같다면 표현이 노골적일수록 더 큰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사이다 발언이 된다. 지지층 결집이 절실한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막말이 춤추는 이유다. 실제 효과도 있다. 탄핵정국으로 한자리 수까지 떨어졌던 한국당의 지지율은 심해지는 막말 수위를 따라가듯 올라 지금은 30% 내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막말의 필요성은 이처럼 명확하다. ‘정치공학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올바른 정치를 위해서도 막말은 필요한 것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의된 정치의 역할은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다. 막말이라는 일방의 편에 선 ‘편파중계’는 인기는 끌지언정 다른 생각들을 더욱 배척하게 만든다. 세월호 참사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정치적 시각이 갈리는 사건의 추모일과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정치인은 연례행사인양 지지층에 막말을 바치고 사회적 논란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느낀다.

공복에 사이다만 들이켜봤자 남는 것 없이 요의만 올 뿐이다. 정치인도, 지지자도 막말을 통한 순간의 쾌감만 좇다가는 서로 비난만 배설하는 사회가 도래하고 말 것이다.

김윤호 정치경제부 기자 uknow@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