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마시기도 전에 속 쓰린 '소주 5000원'

김승권 기자
입력일 2019-05-09 14:40 수정일 2019-05-09 14:42 발행일 2019-05-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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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
김승권 생활경제부 기자

“이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현진건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 마지막 대목이다. 소설 속 화자는 구한말 사회의 현실 때문에 자주 술을 마신다고 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술 마시는 이유가 훨씬 많아졌다. 직장, 가족,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술을 부른다.

하지만 이제 마음껏 술을 마시는 일조차도 녹록치 않게 됐다. 소주가 병당 5000원 시대가 현실이 된 탓이다. 하이트진로 ‘참이슬’ 출고 가격이 이달부터 6.45% 인상되며 소주를 5000원에 파는 집이 많아졌다. 2000년 초반 2000원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가격 상승폭이 상당하다.

해당 업체는 “원부자재 가격, 제조경비 등 원가 상승요인이 발생했다”고 인상 요인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과연 소주의 원자재 가격이 과연 상승했을까.

시중에 판매되는 희석식 소주는 곡물원료를 발효 후 증류, 정제하여 만든 순도 95% 이상의 에탄올(주정)을 주원료로 한다. 값싼 원료로 제작돼 첨가제로 맛을 냈기에 희석주 가격이 저렴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2년간 곡물가격을 보면 상승폭이 2% 미만이다. 오름세와 내림세의 반복이었다. 국제 에탄올 가격도 하락세였다. 원자재가 상승 외에 주세법 개정이라는 변수를 앞에 두고 미리 가격을 과감히 올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현진건은 ‘술 권하는 사회’가 괴롭다고 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술 권하기 부담스러운 사회’가 아닐까. 우리 사회가 소주 한 잔 맘 편하게 사기 힘든 사회는 되지 않았으면 한다.

김승권 생활경제부 기자 peac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