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선거판의 흑묘백묘(黑猫白猫)

김수환 기자
입력일 2019-04-04 15:10 수정일 2019-04-16 17:23 발행일 2019-04-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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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국제부 차장

터키 지방선거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고향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를 야당에 모두 빼앗겼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터키가 경기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사실상 에르도안 심판론이 작용한 것이다.

한국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부산·경남(PK) 지역 민심을 알아볼 수 있었던 4·3 보궐 선거에서 민주당 당적의 당선인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힘 있는 여당’ 보단 ‘문 정권 심판론’에 무게가 더 쏠린 셈이다. 불과 1년 남은 총선. 총선 후 2년 뒤면 대선이다. 표심을 움직이는 건 여당의 ‘20년 집권 플랜’일까 야당의 ‘정권 심판론’일까.

캐나다 정치인 토미 더글러스가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의회 연설에서 역설한 선거판의 흑묘백묘(黑猫白猫·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론은 이 시점에도 시사하는 바가 깊다. 검은 고양이 때문에 고통스러운 생쥐들이 검은 고양이를 몰아내고 흰 고양이를 뽑았다. 생쥐들은 이전보다 더 힘들어졌다. 다시 검은 고양이를 뽑았지만 고단한 삶은 바뀌지 않았다. 색깔만 바뀌었지 생쥐 잡아먹는 고양이라는 건 똑같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국가에서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데도 고달픈 국민의 삶에 변화가 없는 이유였다.

2년 전 추운 겨울 시민들은 광화문 등지에서 촛불을 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전국민적 기대 속에 문재인 정권이 출범했지만, 최근 청와대 간담회에서 한 청년은 “정권이 바뀌었는데 달라진 게 없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혼탁했던 4·3 보선의 여야간 싸움. 생쥐를 앞에 놓고 다투는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처럼 보이지 않는가.

동유럽 두 나라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정치경험이 전무한 코미디언과 여성 환경운동가를 선택했다. 부패한 기득권 정치인보단 차라리 정치 1도 모르는 서민대표가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유권자가 깨어있다면 우리선거에도 그런 날이 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김수환 국제부 차장 ks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