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상사맨, 담당자라는 이름의 '중압감+자부심'

이혜미 기자
입력일 2014-11-30 18:42 수정일 2014-12-01 23:29 발행일 2014-12-0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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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속 종합상사 들여다보기] ③현실속 안영이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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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회 자체 최고 갱신해가고 있는 tvN 금토드라마 ‘미생’에서 안영이(강소라)가 남자로 가득한 원 인터내셔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사진제공=tvn)

2011년12월 입사자인 신형씨는 대우인터내셔널 영업 3부문 비철2팀 소속으로 메인 아이템이 구리다. 2011년 1월 입사한 혜수씨는 (주)효성 무역PG 철강1PU(퍼포먼스 유닛, 기업 부서의 개념) 냉연팀 소속이다. 미생 속 무대인 원인터내셔널에는 여자 상사맨들이 거의 없다. 신입사원 중에서는 안영이가 유일하고 재무부장(황석정 분)과 선차장(신은정 분), 그리고 몇몇 단역들이 등장할 뿐이다. 실제 종합상사 역시 ‘남초’(男超)의 지대다.

혜수씨의 철강 1PU에는 모두 44명의 영업 담당 상사맨이 있지만 여성은 단 4명에 불과하다. 혜수씨 입사 당시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는 효성무역이 철강이랑 화학을 다루기에 다른 상사에 비해 여자가 더 적다고 말했다.

신형씨의 경우, 입사 동기 70명 중 여자는 10명이었다. 지금 소속팀에도 남자가 7명, 여자는 2명 뿐이다.

이처럼 다루는 아이템도 딱딱하고 남성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종합상사에서 이 두 안영이는 힘들지 않았을까? 실제 혜수씨나 신형씨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도 “힘들지 않냐”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이 더 노력하지 않으면 뒤처지거나 인정받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여자라서 안 된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 치열하게 노력하는 안영이처럼 말이다. 극중 안영이는 무거운 자재나 정수기도 남자의 도움 없이 든다. 최근에는 파업으로 평택 서부화학 창고의 비료를 옮길 수 없자 공장의 작은 트럭을 빌려 평택에서 인천항 CY(컨테이너 보관소)까지 3번을 왕복하며 비료를 옮기는 당참을 보여줬다.

혜수씨는 무엇보다 상사맨들은 감정 조절에 신경써야 한다고 말한다. “상사 업무가 아무래도 을의 입장이라 감정적으로 하면 될 일도 안됩니다. 사람 대하는 일이 주이기 때문에 자존심을 일에 결부시키거나 감정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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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성만의 부드러움과 친화력은 강점이 되기도 한다. 신형씨는 “대부분 거래처 담당자들이 남자라 본사 담당자가 여자라고 하면 신기해하고 일이 잘 풀리는 경우도 있다”면서 전문성을 잘 활용한다면 큰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안영이의 직전 사수였던 신팀장(이승준 분)이 안영이에게 여자의 강점을 활용하도록 조언한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그는 “중국이나 아랍쪽 바이어는 여자가 담당자란 생각을 못 해. 앞으로 어떤 회의에서건 남자들 사이에 있을 땐 늘 가운데 앉아”라는 말을 했다.

실제 이들 상사맨들의 생활은 어떨까? 상사맨의 하루는 드라마 미생에서 나타나듯 전화와 메일, 서류작업이 대부분이다. 출근 후 주요 업무는 전날 판매된 가격을 확인해 수요자에게 알려주거나 물건이 어디쯤 생산되고 있는지 생산 진도를 파악하는 일이다. 또 신문기사를 통해 시황을 확인하고 선적 일정을 파악하거나 새로운 스팟성 거래의 기회를 살핀다. 삼국거래가 많은 상사의 특성상 해외출장이 아닌 이상 외근은 국내 주 거래처로 가는 편이다.

신형씨와 혜수씨는 상사 업무는 결코 일정에 맞춰 진행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혜수씨는 “배가 나가는 날인데 비가 와 작업이 중단되는 등의 생각지 못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기에 매순간 대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일들이 갑자기 치고 들어올지 모르는, 그야말로 매순간이 긴장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상사 업무는 틀이 정해져 있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 스트레스가 많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일에 자부심을 갖는 이유는 큰 성취감과 상사 업무의 매력 때문이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사고가 터지면 속상하고 힘들죠. 그러나 그 과정들을 거쳐 계약이 됐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 그게 좋아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것같아요. 80% 힘들다가도 계약이 돼 기분이 좋은 20%의 동기로 말이죠.”(신형씨) “상사에는 말단사원이라도 맡은 지역과 아이템이 있어요.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담당자가 모르면 누가 알아?’였어요. 이 말은 지금도 굉장한 책임감으로 다가옵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책임질 수 있는 이 담당자라는 단어가 상사의 매력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 같아요.”(혜수씨)

 

이혜미 기자 hm7184@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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