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카드업계 '바보' 만든 금융위의 번복

이나리 기자
입력일 2014-11-27 19:05 수정일 2014-11-27 19:05 발행일 2014-11-2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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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금융·증권부 기자
금융위원회의 정책 시행여부 번복으로 여신금융협회와 카드사들만 바보가 돼버렸다.

금융위가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여신협회와 카드사들에게 허용해준 ‘신용카드 50만원 이상 결제 시 신분증 필수 제시’ 약관이 발표된지 이틀 만에 폐지됐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50만원 이상 결제 시 신분증 필수 제시’라는 조항은 본래 2002년부터 금융위가 관리하는 감독규정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아 사문화된 상태였다. 그러나 카드업계가 카드 불법 사용 등을 방지하기 위해 이를 되살려 지난 9월 ‘개인회원 표준약관’ 개정을 추진해 공표했다. 금융위에서도 이러한 감독규정을 약관에 반영하고 카드사들에 공지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신분증 제시를 의무화한 약관이 결제시 불편만 초래하고 부정사용의 책임을 소비자에게 뒤집어씌우는 꼴이라는 비판을 우려해 이틀 만에 개정안을 폐지시켜버렸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애초에 시행하고 있던 이 규정을 타 약관에 추가하기 위해 카드사·여신협회와 함께 합의하에 개정해 공표했는데 이틀 만에 폐지시켜버렸다는 점이다. 금융위의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책으로 여신협회와 카드사는 졸지에 ‘바보’가 된 셈이다.

게다가 금융위는 표준약관 개정을 애초에 여신협회에 지시한 적이 없다고 하고 여신협회는 약관 개정에 대해 금융위와 협의를 거쳤다고 주장하고 있어 마치 의견 조율 실패인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이번에 변경됐던 개인회원 표준약관은 여신법상 여신협회가 재정권자지만 금융위의 허락이 없으면 약관을 개정하거나 폐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번 정책 폐지는 금융위의 정책 시행 실패로 볼 수 있다.

소비자들의 실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정책이 소비자와 카드업계에 미칠 파장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금융위의 이랬다 저랬다 하는 태도 때문에 금융당국과 카드업계의 마찰로 국민들의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듯싶다.

이나리 기자 nallee-babo@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