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인문학DNA 삽입… 新르네상스시대 열다

권익도 기자
입력일 2014-11-27 18:49 수정일 2014-11-27 18:49 발행일 2014-11-2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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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드랭 '풀오브런던' 등 르네상스시대 예술작품들, 3D게임 배경으로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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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크래프트의 게임디자이너들은 최초의 야수파 화가였던 앙드레 드랭의 '풀오브런던'(왼쪽)의 원근법과 색감을 그대로 활용해 디지털 버전의 작품으로 재창조했다.

원근법을 최초로 활용해 그린 조반니 마사치오의 ‘성 삼위일체’. 예수의 머리 뒤로 소실점을 향해 뻗어나간 선들에 의해 사물이 뒤로 물러선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원근법을 몰랐던 당대 사람들은 마치 예수 뒤에 실제 공간이 있는 듯한 환상을 느꼈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신을 부르짖던 중세의 허물에서 탈피해 ‘인문주의’라는 새 시대의 가치를 내세웠다.

고전 텍스트를 재발견하고 유럽 문화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다양한 관점을 수용했다.

미켈란젤로는 캔버스에 과학적 고민을 쏟아 부었고 라파엘로는 추상적인 고전 철학을 고대 철학자 모습으로 환원시키며 새 시대의 찬가를 부르지 않았던가.

바로 지금 영국에선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작품들이 3D 컴퓨터로 재탄생해 디지털 시대의 ‘신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다.

풍부한 원근법과 정교한 오브젝트가 담겨있는 순수예술(Fine art)이 비디오게임과 결합해 국가 전체적으로 인문학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빌딩으로 빽빽하고 적막한 도시를 외롭게 거닐거나 사냥을 위해 맥락도 알 수 없는 괴기한 동굴을 찾아다니기만 했던 유저들에겐 더 없이 반가운 소식이 아닐까.

영국의 국립 미술관 격인 테이트 브리튼은 ‘테이트 월즈(Tate Worlds)’라고 불리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어드벤처 게임 마인드크래프트의 다양한 맵 제작에 예술을 접목시켰다. 프로젝트에는 예술과 게임이 환영적인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데 유사성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부터 미래파와 야수파까지 활용되고 있다.

우선 최초의 야수파 화가였던 앙드레 드랭의 ‘풀오브런던(1906)’을 모티브로 삼았다.

이 작품은 조화되지 않는 강렬한 야수파 색채 속에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 전통이 그대로 구현됐다.

마인드크래프트의 게임디자이너들은 이 작품의 원근법과 색감을 그대로 차용해 디지털 3차원 공간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미래파 및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던 크리스토퍼 네빈슨의 ‘영혼 없는 도시의 영혼(1920)’도 3D 컴퓨터로 구현됐다.

네빈슨의 작품에선 입체주의와 원근법이 교묘하게 결합돼 있다. 작품에서 원근법 때문에 마치 높이 올라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철길이 게임에서도 도시 빈민 지역 내의 공동 주택 사이로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게임 디자이너들은 얀 바이크,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15세기 걸작들로 멋진 디자인을 구현해낼 계획도 가지고 있다.

또 존 싱어 사전트의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1885-6), 존 마틴의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파괴(1822)’ 등도 이미 내년 초까지 프로젝트에서 구현될 예정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비디오게임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다며 비웃을지 몰라도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오늘날 살아있다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열기 위해 자를 컴퓨터에 대가면서 작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권익도 기자 bridgeuth@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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