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들의 반란에 삼성이 굴복했다

조민영 기자
입력일 2014-11-19 18:30 수정일 2014-11-19 19:23 발행일 2014-11-2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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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엔지니어링 합병 무산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추진이 무산되면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거수기에 그치던 주주들이 기업 사업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다.

19일 삼성중공업은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흡수합병 계약을 해제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삼성중공업은 “17일까지 신청한 주식매수청구 현황을 확인한 결과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행사한 주식매수청구 규모가 합병 계약상 예정된 한도를 초과함에 따라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주주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업의 합병, 영업양수도 등이 주주총회에서 결의된 경우 그 결의에 반대했던 주주가 자신의 소유 주식을 회사로 하여금 매수하도록 요구하는 권리다. 두 회사의 합병계약서에 따르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식매수청구권이 각각 9500억원, 4100억원을 초과하면 합병 계약이 무산된다.

실제 주식매수청구권 신청 결과 삼성중공업은 9500억원에 못 미치는 9235억원이었지만 삼성엔지니어링은 한도보다 3000억원이나 많은 7063억원으로 집계됐다.

두 회사의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에 대해 시장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양사의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주식매수청구 가격보다 낮아지면서 국민연금 등 주요주구가 이를 행사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번 합병 무산으로 오히려 삼성중공업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박무현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합병은 해양 부문을 키우는 등 사업적인 이유에서 추진됐지만 실제 합병을 한다 해도 사업 시너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자금여력이 있는 삼성중공업이 삼성엔지니어링을 도와주는 것에 불과하다”며 “합병이 실제 추진되면 부정적인 해양산업 전망과 능력 대비 과도한 외형,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계열사 간 합병으로 삼성중공업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번 합병 무산이 향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회사가 삼성그룹 지배구조 말단에 놓여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지배구조개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과 소액주주들이 대주주와 경영진의 일방적인 합병계획에 반발해 합병이 무산됐다는 점에서 앞으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주주들이 앞으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이나 승계 과정에서 무조건 ‘거수기’ 역할만 하지 않고, 적극적인 주주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의미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앞으로 삼성전자의 분할, 지주회사 체제 구축을 위한 다른 계열사의 합병 등 지배구조 개편 이슈가 많다“며 ”이 과정에서 주주들은 주주의 이익을 훼손하는 결정에 대해선 침묵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최근 현대그룹이 한전부지를 10조원이 넘는 금액에 구입했다가 외국인 주주의 반발로 주가가 크게 하락한 것과 같은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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