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근로자'에겐 너무 높은 상아탑… 대학 문턱 낮춘 '선취업 후진학' 낮잠

서희은 기자
입력일 2014-11-16 19:37 수정일 2014-11-16 19:37 발행일 2014-11-1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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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해 봤자 전공 먼 허드렛일… 대학 가고싶어도 학비지원 전무
'재직자 특별전형' 참여 대학은 학과 늘리고 싶어도 재량권 없어
정부 정책 추진의지 상실… 기업도 '사내대학' 외면

이명박 정부에 이어 이를 핵심 교육 정책으로 정하고 적극 장려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선취업 후진학 제도’가 겉돌고 있다. ‘고졸시대를 열겠다’는 정부의 의지와는 달리 이해 당사자들의 호응을 전혀 얻지 못해 구호로서의 정책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16일 교육부와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선취업 후진학 제도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특성화고·마이스터고 등 전문계 고교 졸업 후 3년 이상 산업체에서 근무하면 입학 가능한 ‘재직자 특별전형’, 고졸 근로자를 위해 사내에 교육장을 운영하는 ‘사내 대학’,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 ‘사이버 대학’ 등이다.

특히 재직자 특별전형은 지난 2010년 교육부의 ‘고교 직업교육 선진화 방안’ 발표 때 신설됐다. 전국 691개 전문계 고교를 오는 2015년까지 400개로 축소하고 선취업 후진학 체제를 확고히 하겠다는 뜻이다. 2015학년도에 4년제 대학 70곳 153개 학과에서 5074명을, 경남정보대·조선이공대 등 전문대학 19곳 187개 학과에서 1149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수능시험 없이 무시험 특별전형으로 뽑고 직장인들이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주·야간, 사이버 과정으로 운영된다.

박근혜 정부 역시 이 제도가 청년취업을 촉진시킬 좋은 도구라며 적극 추진 중이나 현실은 정부 기대와는 큰 차이가 있다. 특성화 고교 기계과 졸업 후 취업해 현장부서에 배치된 김영화(가명)씨는 “CAD CAM(컴퓨터를 이용한 설계 및 제조) 등 관련 자격증도 있고 공부도 많이 했지만 박스 포장만 했다”면서 “선취업 후진학 제도를 통해 후진학을 실현하기란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개인 시간도 없는데 학교에 다닌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발표한 ‘선취업 후진학을 위한 특성화고 재학생의 진로 선택과 직업교육 개선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특성화고 학생 439명 중 ‘특성화고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답한 비율이 31.2%를 차지했다. 10명 중 3명꼴로 대학 진학을 희망한 셈이다. 가장 큰 이유는 ‘고졸 학력만으로는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해서’(41.7%)였다. 보고서는 학력에 따른 직장에서의 차별과 불이익에 대한 우려, 특성화고 재학생을 위한 취업 유인 부족 등을 이유로 들었다.

지난 5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고졸 신입직원의 직장적응 실태’ 자료도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고졸 재직자 10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 자료에서 고졸 취업자들의 후진학 참여 비중은 고작 16.2%에 그쳤다. 참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38.1%가 ‘대학 진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라고 답했고 ‘학비 부담’(31.9%), ‘일·학업 병행의 시간적 여유 부족’(15.8%)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대학 진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약 70%가 ‘대학을 진학한다고 임금이 인상되거나 승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학비가 고스란히 본인 부담인 것도 후진학을 꺼리는 원인이다. 후진학 참여자의 68.7%는 회사로부터 전혀 비용을 지원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기업의 지원 미비와 인식 부족이 이 정책이 후진 내지 역행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기업과 학생 간 입장 차이도 컸다. 한기대 설문 참여 학생의 45.5%가 선취업 후진학 제도를 활용하고 싶다고 답한 반면, 기업 관계자는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주로 중소 제조업체에 입사해 대학 진학을 위한 휴직이 쉽지 않고 대졸자가 되면 연봉을 올려줘야 하는 (기업의)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한 마이스터고 취업 담당 교사는 “마이스터고 학생들은 선취업 후진학을 미리 생각하고 온 학생들이 대부분임에도 기업이 이 제도를 모르거나 알아도 협조하지 않으면 취업 기회 자체가 아예 없다”고 말했다.

재직자 특별전형에 참여 중인 한 대학 입학처 관계자는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학과 폭을 넓히기 위해 학과 증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 힘든 사회 분위기와 기업의 인식 부족, 학비 부담 등이 선취업 후진학 제도 정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동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선취업 후진학은 수직화된 대학진입경로를 우회할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해당 고졸 사원이 이를 원하더라도 회사 내 핵심 업무가 아닌 사이드 업무를 맡고 있는 경우가 많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후진학 시스템을 교육정책의 일부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일자리 정책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교육 관계자는 “학령기 학생 위주로 학과과정을 개설 중인 대학이 취업자를 받으려면 야간수업 등이 개설돼야 한다”며 “대학이 학사 제도를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행정적, 재정적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관련 기관들의 통합적 운영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정부가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서희은 기자

heseo@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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