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배운 지식으로 80년을 살 수는 없다

브릿지경제
입력일 2014-09-14 21:57 수정일 2014-09-29 15:57 발행일 2014-09-1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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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일·여가'가 삶이 되는 사회 만들어야
현정택 국민경제자문위원회 부의장
장수는 축복 노인을 비중있는 다수로 생각해야
일하는 기간, 재능기부 확대
청소년 교육에서 평생교육으로
국민경제자문회의 현정택부의장1

지난 추석에 아들 손자와 함께 어머니 댁에 가서 4대가 함께 모였는데, 네 살짜리 손자에게 할머니 외할머니 위에 증조할머니라는 호칭이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는데 애를 먹었다. 그런데 엄마의 외할머니는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예전 같으면 아주 드문 일이지만 요즈음에 와서는 4대가 만나는 일이 흔한데, 아이들 사이에는 엄마나 아빠의 집안 구분 없이 부르기 편한 왕할머니라는 호칭이 널리 쓰인다고 한다. 진외조모 외증조모와 같은 어려운 말보다 훨씬 친숙한 이름인데 100세 시대에 맞춰 국어사전에 올려 봄직하다.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2000년 7%, 2017년 14%를 넘어서고 2040년에는 일본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노인이 많은 나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노인에 대한 복지를 늘리고 연금을 정비하는 등 노년에 대비하는 정책을 확대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저 노인을 지원하고 부양하는 방식으로는 100세 시대를 맞이할 수 없다. 생산 인구에 대한 노인의 비율이 현재 7:1에서 앞으로 1:1이 될 수도 있는데, 이를 젊은이 한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해야 하는 구조로만 인식한다면 앞날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고 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EU)에서는 일찍부터 active aging을 목표로 길어진 인생을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장수하는 것은 축복임에 틀림없으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과 여가를 통한 보람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평균 퇴직연령은 53세인데 임금피크제와 같은 제도를 활용하여 일하는 기간을 늘려야 한다. 경험이나 지식을 활용하여 재능 기부나 자원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확대되어야 한다. 주거환경 교통시설 문화예술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공간의 배치나 제도의 운영도 노인이 소수의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비중 있는 다수가 되는 구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야 한다.

100세 시대를 준비함에 있어 노인들을 위한 대책이나 정년을 앞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은 앞으로 살아갈 날이 가장 많이 남은 세대에 대한 정책이다. 이른바 일류 대학 좋은 학과를 나와 취업을 하면 정년이 될 때까지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공식은 두 차례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깨졌다. 근본적으로는 청소년기의 학교교육에서 생애 전 기간 동안의 평생 교육으로 우선순위가 옮겨져야 한다.

온 가족의 삶의 초점이 아이들 교육에 맞춰져 물질적 정신적으로 진을 다 빼게 하는 시스템은 이제 그만 접고, 아이나 어른이나 노인이나 각자 주어진 삶의 깊이를 체험하는 가운데 건강하고 안전하게 학습과 일과 여가를 병행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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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로 틀을 바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