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반복되는 성착취의 역사! 위안부, 미투 그리고 N번방…나와 다르지 않은 ‘공주(孔主)들2020’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06-03 19:00 수정일 2020-06-04 15:43 발행일 2020-06-0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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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Board] 연극 '공주들2020'
연극
연극‘공주(孔主)들2020’(사진제공=극단 신세계)
“물어보고 싶었어. 내 엄마한테, 엄마의 엄마한테,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한테. 아빠한테 물어보고 싶었어. 아빠의 아빠한테, 아빠의 아빠의 아빠의 아빠한테. 우리 언제부터 이랬는지.”
그저 옛날이야기로 여겼던 위안부부터 최근의 디지털 성착취 N번방 사건까지 국가와 사회가 ‘여성’이라는 성을 가진 이들에게 가한 폭력은 다양한 모습으로 대물림을 거듭하고 있다. 연극 ‘공주(孔主)들2020’(6월 9~14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은 불편하지만 마주해야할 19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의 ‘성착취’ 연대기다. 
국가, 사회, 가족, 타인 등을 위해 자신의 구멍을 희생하며 살아온 12명의 공주들이 성착취를 당해온 이들이 아닌 성구매자, 그들이 성구매를 하도록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에 의문을 가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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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공주(孔主)들2020’(사진제공=극단 신세계)
누군가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또 누군가에게는 전혀 몰랐던 이야기는 ‘망각댄스’ 시리즈, ‘이갈리아의 딸들’ ‘광인일기’ ‘파란나라’ ‘그러므로 포르노’ ‘보지체크’ 등의 김수정 연출과 강주희, 고용선, 권주영, 김보경, 김선기, 김정화, 김혜미, 김현규, 남선희, 민현기, 양정윤, 이강호 등 극단 신세계의 배우들이 공동창작으로 엮어냈다.
2018년 초연돼 2019년에 이은 세 번째 시즌을 맞은 ‘공주들’이 ‘2020’이라는 특별한 타이틀을 단 데 대해 배우 김보경은 ‘브릿지경제’에 “주변에 있음직한 혹은 나 같은 두명의 인물을 추가해 좀 더 일상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다”며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썼던 ‘성착취’ 개념을 N번방까지 확장시킴으로서 ‘100년이 흘러도 그대로 가고 있다’고 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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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공주(孔主)들2020’(사진제공=극단 신세계)
‘공주들2020’의 극장은 그 자체가 주인공 김공주의 몸이다. 배우들은 김공주의 윗구멍, 아랫구멍, 뒷구멍으로 등퇴장하고 관객들 역시 그 세 구멍으로 입장하고 퇴장한다. 그렇게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이 끊임없이 구멍들을 들락거리며 침범하는 김공주의 삶을 구현했다. 관객들은 침입자로, 가해자로 혹은 연대자로 그 삶의 일부가 되고 자신의 삶에 빗대 고민하기도 한다. 
김보경은 “어쩜 이렇게 모르고 살았는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묻고 싶었다. 결국 이유는 나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나 때문에 벌어지는 이야기”라며 “ ‘지금 왜’ 가 아니라 이제야 알아서, 지금이라도 계속 해야 하는 이야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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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공주(孔主)들2020’(사진제공=극단 신세계)
“이번 공연에서는 위안부와 나는 다르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집중하고 있어요. 위안부 문제는 내 문제예요. 남의 문제처럼 떨어뜨려놓고 보거나 불쌍한 한 여자의 서사처럼 볼 게 아니라 바로 ‘내 문제’  ‘우리 문제’ 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비단 여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표면만 다를 뿐 사회구조, 체제의 연속성으로 부당함, 폭력, 부조리 등에 고스란히 노출된 노동자들, 을로 살아가는 사람들, ‘포기’와 ‘절망’으로 보내고 있는 청춘들 등 국가와 사회, 타인, 가족 등을 위해 희생하고 폭력과 부조리를 견뎌내는 다양한 형태의 ‘공주들’ 이야기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