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한물간 극장, 한물간 사람… 이대로도 괜찮아요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20-06-03 18:00 수정일 2020-06-03 18:06 발행일 2020-06-04 13면
인쇄아이콘
[Culture Board] 영화 '국도극장'
29일 극장,VOD에 동시 서비스,명필름랩 출신 전지희 감독이 직접 각본과 감독 맡아
잔잔한 일상 카메라로 훑으며 아날로그 감성 담아... 관객들에게 위로 전해
movie_image
지난 달 29일 극장과 VOD에 동시개봉한 영화 ‘국도극장’(사진제공=명필름랩)

이토록 저릿할 줄이야. 영화 ‘국도극장’의 감독 버전은 흡사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이 가진 롱테이크 엔딩을 한국버전으로 보는 듯하다. 첫사랑에 실패해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카메라 뒤를 쳐다보던 티모시 살라메를 단박에 할리우드의 신성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이 영화는 배우 이동휘를 ‘다시 보게’ 만든다. 인스타그램에서 수많은 패피들과 교류하는 일상 혹은 다수의 작품으로 웃음을 유발했던 모습은 완전히 지웠다.

함께 출연한 배우의 면면을 보자. 신신애, 이한위를 필두로 화면에서 펄떡이는 이상희, 서현우 등이 가세했다. 이들은 대부분 코믹함을 기반으로 한 배우들이다. 이들이 웃음기를 빼고 보여주는 담백한 연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큰아들만 바라보는 늙은 엄마, 무심한 동네 아저씨, 중국집에서 일하는 학교 동창 등 주인공인 기태(이동휘)의 고향 벌교는 고루하고 지루한 공네였다. 법대를 나와 고시생으로만 10년을 흘려보낸 기태는 그나마도 사법고시가 폐지되면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국도극장1
영화의 배경은 지친 기태가 그토록 벗어나고 했던 고향이지만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꽉 채워져 관객들의 향수를 더한다. (사진제공=명필름랩)

반가운 사람도, 기댈 사람도 없는 그곳에서 재개봉 영화관인 국도 극장에서 기태는 관리인 오씨(이한위)를 만난다.

시종일관 “대학나온 사람”이라며 거리를 두고 사회성 없는 오씨와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도 고향에서도 마음 붙이지 못하는 주인공은 함께 밥을 먹고 담배를 피며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든다. 

제목과 동일한 국도극장은 동네를 대표하는 개봉관이었지만 이제는 재개봉 영화만 틀어주는 곳이다. 사회적 속도에 따라가지 못한 두 사람의 공간이기도 한 그곳에서 두 남자의 영혼은 각자의 시선으로 머물며 치유받는다.

영화의 대부분은 기태의 시선이다. 또 다른 주인공은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림으로 그린 ‘추억의 영화 간판’들이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흐르는 강물처럼’이 걸리는가 하면 ‘박하사탕’ ‘첨밀밀’ ‘영웅본색’ 등 현재 4060관객들이 젊은 시절 열광했던 작품들이다. 돌고 돌아 만난 인연을 그린 ‘첨밀밀’과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명대사를 남긴 ‘박하사탕’은 기태의 인생이나 다름없다.

거친 계곡을 흘러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마지막의 ‘영웅본색’은 극중 오씨가 기태에게 해줬듯 누군가의 ‘따거’(형)로 살아갈 주인공의 미래를 가능하게 만든다. 극적인 ‘한방’은 없지만 도리어 영화에서 다루는 잔잔한 일상이 ‘코로나19’로 지친 심신을 달래준다. 긴 시간 개봉을 준비해 온 이 작품은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명필름랩 3기 연출 전공 전지희 감독의 데뷔작으로 지난 5월 29일 극장과 VOD 공개가 동시에 진행됐다.

지난 해 아동 학대를 주제로 한 ‘어린 의뢰인’으로 만난 이동휘는 “소재가 주는 잔인함과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영화 ‘국도극장’을 찍으며 치유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개봉을 앞두고는 “사실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 주인공이다. 쫓기듯 사는 삶을 벗어나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직접 각본과 감독을 맡은 전지희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건 약 12분 분량이 더 긴 개봉판과 감독판의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작이 좀더 다듬어진 느낌이라면 후자는 확실히 여운이 길다. ‘한 영화이면서 다른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남다르다. 12세 관람가.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