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시대 지성 필요한 때

엄길청 국제투자분석가/국제투자리서치포럼 회장
입력일 2024-01-31 14:04 수정일 2024-01-31 14:20 발행일 2024-02-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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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국제투자분석가/국제투자리서치포럼 회장

사람에게서 노동을 빼앗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절대 내 돈 보다 귀한 것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도 상당수다. 인간의 전유물이 곧 감정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장착한 기계가 나타나고, 본데없는 가상화폐가 등장하고, 마음을 가진 서비스 로봇이 탄생하면서 세상을 뒤집고 있다. 우리들이 스스로 만든 상황들이니 달리 탓 할 수도 없다. 무장해제란 말이 이런 때도 쓰이게 되었다. 살다가 이제 이런 세상을 만나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한국의 40대 남자들이 가장 취업률이 낮다는 소식은, 이런 변화가 이미 우리 삶을 흔들고 있음을 본다. 대학에서 산업사회의 전문가들을 육성하던 사람으로, 코로나로 인해 더욱 빨라진 세상의 격랑에 너무도 큰 충격을 받는다. 예견된 일이었지만 정부는 연금제도를 손대기 시작했다. 연금은 이제 덜 타가고, 더 내는 일만 남은 듯하다. 이 제도가 얼마나 더 갈지는 큰 관심사도 아니다.

와중에 젊은이들은 도심을 찾는다. 아니, 파고 든다고 봐야 옳다. 직장도 직업도 이제까지의 정형이 흔들리는 세상과 맞닥트려 서로의지가 되고 도모의 빌미를 찾고자 도심으로 스며든다. 마침내 정부도 청년들에게 도심 안에 집을 장만해주고자 바쁘다. 그러니 공부에 좀 소질 있는 학생들은 직업의 테두리가 아직은 살아있는 의사나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수의사로 집결하는 중이다. 의대 정원 확대 논란은 이런 복잡한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베이비 부머’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도 들린다.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 출생 인구가 한해 100만 명을 오르내리던 1970년대 중반까지 거의 20년을 횡단해 늘어난 인구다. 지금 50대와 60대를 꽉 채운 그 사람들이다. 무려 1500만 명을 헤아리며 전체인구의 30%에 이른다. 거리에서 지나치는 중장년 대부분이 베이비 부머들이다. 그들의 맨 앞단 세대들이 이제 막 70대에 진입중이다. 앞으로 20년간 노인인구 폭증이 예견되는 이유다. 

막 나가는 해외언론들은 한국이 이제 늙어간다고 비아냥이다. 오래지 않아 한국은 사라질 것이란 저주를 마구 퍼대는 곳도 본다. 지나치게 낮은 출산율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가 이제 노인 국가, 소멸 국가란 지적을 받는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가족을 이루며 살던 같은 동네에서 웃어른들이 오래 살아계심을 마을의 축복으로 여기던 우리 사회가, 이런 뒤죽박죽의 세상을 불과 40여 년 만에 만나고 있다.

직장의 산업사회인들이 점점 동네 사람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자신이 나고 자란 집안에서 삶을 꾸려가기 시작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이 외톨이나 사회 부적응 청년들이 것도 아니다. 이전 세대와는 다른 삶을 준비하고 실행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제는 웬만한 부음을 듣고 조문을 가보면 90수를 넘기는 고인들이 빈번하다. 요즘 60대의 취업이 20대보다 많다는 통계도 이런 사회를 반영하는 듯하다.

지금 한국 내면의 근심과 외부의 소란은 세대나 계층이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알 수 없는 파란과 파상, 심지어 파국의 그림자가 동시다발적으로 서서히 엄습한다. 그래서 바른 소리, 깨어있는 울림이 간절하다. 나이 든 사람들은 그래도 고비 때마다 시대를 이끄는 지성의 자리에 ‘언론’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오늘도 육필의 보도와 논설의 갈피에서 시대의 이정표를 찾아본다.

엄길청 국제투자분석가/국제투자리서치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