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브라보 아저씨와 시체관극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사업지원파트 책임 기자
입력일 2024-01-25 13:37 수정일 2024-01-25 13:38 발행일 2024-01-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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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롯데문화재단 사업지원파트 책임

요즘 클래식 관객 중 유명인사가 있다. 좋은 의미가 아닌 두려움의 대상이다. 공연 직전 롯데콘서트홀이나 예술의 전당 로비 등에서 그 관객을 마주치면 공연을 망칠까 우려된다는 글이 클래식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한다.

음악의 여운을 느낄 새도 허락되지 않는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지휘자의 손이 내려오기도 전에 ‘브라보~~’를 외쳐 감동을 깨는 일이 잦다보니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곡의 마지막에 다다를수록 괜히 마음이 불안해진다는 웃픈 농담을 하기도 한다. 일명 ‘브라보 아저씨’다.

‘브라보 아저씨’ 말고 클래식에서 새롭게 등장한 ‘관크’(관객+Critical의 합성어, 매너 없는 행동으로 타인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도 있다. 바로 음악 찾기 서비스 음성이다. 주로 앙코르곡 연주 중에 곡 제목을 검색하는데 제대로 찾아지지 않을 때 ‘문의하신 음악을 찾을 수가 없어요’가 조용한 무대와 객석에 울려퍼진다. 공연 중 느끼는 감탄이 한탄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클래식이 ‘브라보 아저씨’와 음악 찾기 서비스로 인해 ‘관크’를 겪는다면 연극과 뮤지컬은 이 ‘관크’를 예방하기 위해 지나치게 까다로운 ‘시체관극’을 강조해 논란이 일기도 한다. ‘시체관극’이란 미세한 움직임이나 소리도 내지 않고 ‘시체’처럼 고정된 자세로 극을 관람하는 행위를 이른다.

‘시체관극’은 주로 300~400석 규모의 중소극장 연극 뮤지컬을 중심으로 생겨난 엄숙한 관극 문화다. 관람환경이 협소하고 열악하다 보니 주변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조심하는 것을 넘어 웃거나 환호도 삼가야 하고 몸을 조금 움직이는 것까지 눈치를 받게 된다. 최근 한 매체 기자가 작품 내용을 메모하려다 저지 받아 공연 관람을 포기하면서 ‘뮤지컬 리진을 볼 필요가 없는 이유’란 기사를 작성하며 다시금 ‘시체관극’ 논란이 대두됐다.

‘브라보 아저씨’ ‘시체관극’ 등은 결은 다르지만 극단적인 자기 감상 권리를 추구하는 것에서 야기된 문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내 감정을 표현해 비뚤어진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것, 그리고 내 관람이 조금이라도 방해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그 누구보다 빨리 ‘브라보’를 외치기 위해 연주 막바지부터 준비하느라 혹은 공연 몰입을 이유로 타인의 미세한 움직임과 숨소리마저 예민하게 주시하느라 오히려 더 경직돼 본질인 공연감상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연장은 함께 공연을 보고 정서적 유대를 나누는 공간이다. 같은 공간에서 동시대의 예술을 감상하고 공감하며 공연에서 받은 감동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고 행복을 느끼는 본질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공연장은 좀 더 세심하게 관람 수칙을 제시하고 불법 촬영이나 녹음을 엄격히 제지하며 매뉴얼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관객은 자신의 관람 권리만큼 타인을 존중하면서, 무엇보다 공연의 감동은 스스로 무대에 몰입하는 순간에 가장 극적으로 발현됨을 기억했으면 한다.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사업지원파트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