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다 내주는 합병, 무슨 의미가 있나

김아영 기자
입력일 2023-10-15 15:41 수정일 2023-10-15 15:43 발행일 2023-10-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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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를 매각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합병 의미가 퇴색됐다는 뼈아픈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항공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지적한 독과점 해소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상당수의 알짜 슬롯을 포기한 상태에서 화물사업까지 반납한다면,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확실해 보인다.

사실 EU가 합병 심사를 까다롭게 볼 것이란 시그널은 있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합병도 그랬고, 2020년 에어캐나다와 에어트랜셋 사례에서도 조건 조정을 요구한 바 있다. 국내 공정거래위원회가 화물사업 경쟁 제한성이 없다고 판단했더라도, EU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제동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화물사업권이 해외로 넘어가게 된다면 국내 항공 화물 사업 분야 축소는 예견된 수순이다. 과거 한진해운 사태와 비슷한 일이 또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네트워크 운송업인 해운산업 역시 한진해운이 청산됐을 당시 해운시장 점유율은 현대상선이 아니라 머스크 같은 외국 선사들에게 돌아갔다. 그 결과 우리 산업계 물동량에 대한 운임은 오히려 더 상승했다.

기업합병은 이론적으로 기업 가치 극대화 효과를 위해서다. 합병을 통해 시너지 창출을 실현하자는 경영전략인 셈이다. 시작 전부터 출혈이 이렇게 크다면, 합병 의미에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기업은 스스로 경쟁력을 챙겨야 한다. 화주와의 네트워크가 견고한 항공화물 분야에서 아시아나 몫의 화물 물량을 국내 항공사들이 커버할 방법을 세밀히 고민해야 한다.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사의 발전은 우리 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항공 빅딜은 항공산업 재편의 출발점이다.

김아영 기자 aykim@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