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집단 착각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입력일 2023-08-09 14:02 수정일 2023-08-09 14:03 발행일 2023-08-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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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가지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1조는 오늘날 매우 비현실적인 외침이 돼버렸다. 현실에서 우리는 나와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면 동지로, 나와 생각이 다르면 ‘없어져야 할 적’으로 간주한다. 문제는 이러한 ‘집단 착각’이 인터넷과 유튜브라는 ‘집단 광기 표출의 장’이 대중화하면서 더욱 심해졌으며 대한민국을 넘어 전 지구적 규모로 과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Q. 당신은 성공적인 인생이란 뭐라고 생각하는가? 다음 A·B 중 하나를 선택해보시기 바란다.

A: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룰 때 성공적인 삶을 산 것이다.

B: 사회적으로 높은 명성과 부를 축적하고 유명인사가 될 때 성공적인 삶을 산 것이다.

만약 스스로는 A가 답이라 생각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B를 선택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집단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성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5200명을 대상으로 동일하게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는 ‘집단 착각’을 반영하고 있다. 응답자 중 97%는 A가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동시에 92%는 대다수가 B를 답으로 택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집단 착각’은 개인적 성공 외의 영역인 교육, 의료, 법조계 등에서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집단 착각은 정치, 경제, 전쟁, 기후위기 등 모든 것을 대하는 우리의 눈에 색안경을 씌운다. 윤리적 행동 양식뿐 아니라 어떤 음식을 선택할지조차 집단 착각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집단 착각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대학생을 대상으로 화장실 이용 후 손을 씻는지를 묻는 실험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연구자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77%가 손을 씻었다. 반면 연구자가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들은 고작 39%만이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갔다. 이 실험을 통해 인간은 너무나 사회적인 동물이며 다른 이가 지켜보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행동에 변화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을 조율하고 싶은 충동을 ‘순응 편향’(Conformity bias)이라고 한다.

집단 착각이 존재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인간의 내면에는 사회적으로 망신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포심은 지구의 중력 마냥 무의식적으로 군중과 함께 하도록 작동돼 진실을 말하는 것을 꺼리며 임금님이 실은 벌거벗고 있다고 감히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한다.

‘구멍의 제1법칙’. 영국의 재무장관과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데니스 힐리가 남긴 말이다. 이 법칙의 핵심은 “구멍에 빠져 있다면 삽질을 멈추라”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 들어가기 전에 다른 사람들 보다 먼저 객관적인 시각으로 관찰하고 그들의 의도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나와 상대방의 개인적인 판단을 지키기 위해서만 필요한 노력이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의 생존과 건강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다.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