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기회와 행운

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입력일 2023-08-02 14:34 수정일 2023-08-02 14:35 발행일 2023-08-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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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로마 제정시대의 저명한 철학자 세네카(Seneca)는 잘 알려진 정치가다. 네로(Nero) 황제의 스승이기도 하고, 황제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발각돼 네로에게 자살을 명령받은 일로 더욱 알려져 있다. “행운은 준비와 기회가 만났을 때 온다” 라는 명언도 남겼다. 멋진 말이다.

매리엄 웹스터(Merriam Webster) 사전에 의하면, 카이로스(Kairos)는 ‘적절하고 중요한, 기회의 순간’이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이다. 시간을 나타내는 또 다른 말로 크로노스(chronos)라는 단어가 있다. 순차적 시간이라는 정량적 의미로 사용되며 크로노미터(chronometer, 항해에 쓰이는 매우 정밀한 시계)라는 단어는 여기에서 유래한다. 반면 카이로스(Kairos)는 좀 더 영속적인 의미로, 무언가 행동을 취하기에 적절하고 기회가 되는 질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카이로스는 제우스의 막내아들이라고 한다. 카이로스는 길고 풍성한 앞머리를 특징으로 하고, 머리 뒤쪽은 민머리의 미소년으로 묘사되곤 한다.

커다란 양쪽 날개 이외에도 다리 복숭아뼈 근처에 날개가 한 쌍 더 있는 것이 특징으로 그려진다. 양손에는 저울과 칼을 들고 있는 카이로스는 기회(opportunity)의 신이다.

그가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려지는 이유는 상대의 눈에 쉽게 띄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한 스쳐 지나간 이후에는 붙잡을 수 없도록, 어떠한 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미리 잘 준비하고 있다가 기회의 신이 멀리서 보이면 바로 그의 풍성한 앞 머리카락을 꽉 붙잡아야만 기회를 성공적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 뒤쪽에는 잡을 수 있는 머리카락도 없고, 옷도 입고 있지 않기에 다만 옷자락이라도 잡아볼 요량이라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눈앞에서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그를 멈추기란 정녕 불가능할 것이다.

양손에 든 저울과 칼은 저울처럼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칼과 같이 날카로운 결단을 내리기 위한 것이다.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하고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겨 주어진 기회를 현명하게 활용하라는 의미다. 준비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잡을 수 없는 것,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것을 ‘기회’라고 보았고, 마찬가지로 양손에 들고 있는 저울과 칼로 기회가 왔을 때 바로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나이만큼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다고 한다. 그래서 10대, 20대에는 인생이 10㎞, 20㎞의 차분한 속도로 여 유있게 지나가지만, 60·70대에는 60㎞, 70㎞의 빠른 속도로 인생이 지나간다는 것이다. 고속도로 위의 자동차처럼 빠르게 질주하는 인생,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인생 속에서, 날개를 두 쌍이나 장착하고 있는 기회의 신을 마주하고, 그야말로 어렵게 주어진 기회를 잘 잡아서 활용하는 일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기회와 행운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라니, 넋 놓고 기다리지만 말고 바램을 실현하기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살자.

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