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일본의 출산실패와 정책선회…배울 곳 없는 한국형 출산절벽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기자
입력일 2023-07-23 14:46 수정일 2023-07-23 14:49 발행일 2023-07-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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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길을 잃거나 모르면 나침반이 유효하다. 방황·혼돈을 잡아주는 꽤 믿음직한 도구다. 가려는 목적지와 독법만 알면 나침반은 안전장치로 손색 없다. 물론 성근 형태의 방향·경로만 알려줄뿐 그 다음은 없다. 당사자의 능력·의지에 좌우된다. 이런 점에서 먼저 경험·대응해본 선험사례의 분석·함의는 후행주자에게 좋다. 적어도 나침반처럼 지향·취지는 알려준다. 선행해본 방법·수단이 먹힐지는 별개지만, ‘벤치마킹 vs 반면교사’의 교훈은 도출된다. 성공은 좇고 실패는 피해 가성비 좋은 결과를 내면 충분하다.

한국은 선행국가의 득을 톡톡히 본 사례다. ‘개도국→선진국’으로의 성과 달성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먼저 경험해본 추격대상 덕분에 가능했다. 적어도 상당한 도움을 받은 건 부인하기 어렵다. 아쉽게도 더 이상은 아니다. 참고할만한 나침반이 존재하지 않아서다. 선진국에 진입한데다 동일그룹에서도 추격에 따른 훈수보다 동행하는 경쟁이 더 일반적이다. 하물며 인구변화는 속도·범위·깊이 무엇으로도 한국이 어떤 비교군보다 맨 앞에 서있다. 세계꼴찌의 0.78명(2022년) 출산율은 압도적인 최저치다.

그나마 일본은 참고사례다. 2016년 제1호 총인구감소국답게 2020년 제2호가 된 한국보다 앞선 경험이 있다. 30년 넘게 저출산에 사회전력을 다한 경위도 의미하는 바는 크다. 1989년 1.57명 쇼크, 1994년 엔젤플랜, 2003년 저출산담당장관 신설 등의 배경이다. 고강도대책도 계속된다. 올해는 ‘출산감소=국가위기’를 천명한 총리가 전국을 돌며 전면에 섰다. 청년세대·양육환경 등을 챙기겠다는 포부다. 저출산의 반전 없이 미래는 없다는 위기 탓이다. 총리직속의 ‘아동가정청’도 시작된다. 육아예산을 2배로 늘리는 전략도 주목된다.

그럼에도 대체적인 평가는 ‘백약무효론’으로 수렴된다. 성과를 낸 정책이 없을뿐더러 저출산 원인조차 특정하기 어렵다는 게 속내다. 해서 임신·출산·양육 등 경제(현금)적 지원집중을 반복해온 과거정책은 도마 위에 오르고, 출산·양육의 당사자에게 주는 직접 지원을 넘어 최근엔 외부의 기반·환경조성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돈을 직접 줘도 출산율이 올라가지 않으니 다른 길을 찾자는 의미다. 기업도 꽤 적극적이다. 재미난 대응책이 언론주목을 받는다. 가령 육아휴직을 떠나면 남은 동료에게 현금지원(응원수당)을 하는 식이다. 미쓰이스미토모해상화재보험은 최대 1인당 10만엔을 지급한다. 육아휴직으로 일거리가 늘어날 불만을 막고 맘편히 떠나도록 배려하는 차원이다. 나름 파격적이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일본대응도 한계상황인 건 어쩔 수 없다.

한국은 나침반 없는 길앞에 섰다. 무엇보다 일본적 대응책·상상력을 뛰어넘는 게 중요하다. 출산 충격은 한국이 훨씬 거센데다 기반환경도 다른 까닭이다. 돈 몇푼이 아닌 맘놓고 낳고 기를 믿음직하고 확실한 신호가 요구된다. 독박육아에서 벗어날 다양한 보완·대체형 안전망이 그렇다. 일본에서 더 배울 건 없다. 남은 건 한국만의 혁신적인 대응뿐이다. 고강도 구조개혁을 염두에 둔 상상력 저 건너편을 고민할 때다. 튼튼한 혈관(기반조성)에 건강한 새피(혁신대책)의 동시다발적 체계구축이 필요하다. 반발·저항이 거셀수록 제대로 된 접근·해법일 확률이 높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