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동물농장 vs 정치농장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23-06-08 14:11 수정일 2023-06-08 14:12 발행일 2023-06-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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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1946년 조지 오웰이 발표한 소설 ‘동물농장’은 구 소련이 겪은 사회주의에 대한 정치 풍자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로부터 거의 80년쯤 흐른 2023년 SBS 예능프로그램 ‘TV동물농장’은 누구를 위한 농장인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출연을 둘러싸고 ‘정치쇼’라는 비판과 ‘인간적’이라는 우호적인 분위기가 엇갈리고 있다. 그 와중에 문재인 전 대통령의 풍산개 파양까지 강제 소환되기도 했다. 동물농장이 공감, 협업은커녕 분열의 원인이 된 셈이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일생을 추적한 ‘TV동물농장-나는 행복한 안내견입니다’ 편에는 윤 대통령 부부가 11번째로 입양한 은퇴 안내견 새롬이와 관저 마당에서 뛰어 노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이 방송 직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대통령 부부와 반려동물의 방송출연이 적절했는지 여부를 두고 치열한 격론이 벌어졌다.

“일요일 아침 가족 대상 프로그램에 정치색 나타내는 방송”이라고 비난하는 글이 폭주한 반면 “동물을 사랑하는 대통령 부부의 인간적인 모습”을 지지하는 견해도 많았다. 정치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갈라치기하는 세상이라지만 반려동물 프로그램마저 정치에 시커멓게 오염돼야 하는 모습은 비이성적 몸부림이다. 이제는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나아가 정치 자체를 떠나 정치인의 TV출연에 대해 정치인과 미디어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돼야함을 시사한다.

현직 대통령이나 정치인에게 유명 TV프로그램 출연처럼 유효적절한 홍보 수단은 없을 것이다. 지지율이 뜻대로 오르지 않거나 정쟁 상태에 빠져있을 때 TV는 돌파구를 마련해줄 수 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거나 심지어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2022년초 윤 대통령이 취임 직전에 유재석의 ‘유퀴즈’에 출연했을 때는 오히려 어색한 정치색 때문에 호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TV동물농장’ 출연으로 나름 승부수를 던졌다. 반려동물 인구가 무려 1000만명이 넘는 현상에 주목했고 정치색 없이 반려동물을 다루는 방송을 선택한 것이다. 동물 입양이나 안내견에 대한 정부 정책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동물과 잘 어울리고 있는 대통령의 서민적 풍모에 초점을 맞췄다.

기존 지지층을 더 결집시키고 정치적 지지 기반이 취약한 계층에게 친근한 시그널을 보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렸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정치 속에서 TV의 영향력 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정치농장’이라는 신랄한 풍자에도 일리가 있다. 방송사의 중립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경청해야 하며 정치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보다 면밀하게 둘러봐야 한다. 결국 열쇠는 정치색을 최대한 옅게 만드는 노력에 있다. 이를 위해 거창한 가이드라인이나 제어시스템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정치인이 출연하더라도 방송사 뿐 아니라 정치인 스스로 얄팍한 홍보를 자제하고 정책적, 인간적인 진심을 전달하고 시청자들과 같이 호흡해야 한다. 또한 정치인과 방송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도 정파에만 묶이지 말아야 한다. 정치의 늪에 국민 스스로 빠져 유익한 프로그램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정치와 방송은 공생하는 관계다. 오늘날 정치인의 TV출연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한쪽 눈을 감고 바라보지 않으면 된다. ‘동물농장’은 ‘정치농장’이 아닌 ‘협동농장’이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