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파이프 오르간의 위로, 울려퍼지길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사업지원파트 책임
입력일 2023-05-22 14:07 수정일 2023-05-22 15:04 발행일 2023-05-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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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롯데문화재단 사업지원파트 책임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인 2019년 가을 유럽 몇개국을 여행했다. 주요 공연장과 이름 있는 성당을 갈 때 마다 파이프 오르간이 눈에 띄었다.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만난 경험은 새로우면서도 각별했다. 

빈 구시가지 중심에 자리잡은, 12세기에 건축된 웅장한 자태의 슈테판 성당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당시 슈테판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은 보수 중이었고 전면 파이프 주변을 떠받치는 비계(飛階)가 설치돼 있었다.

그리고 파이프 오르간 앞에는 낯선 키오스크 한대가 놓여있었다. 오르간 보수에 필요한 모금을 진행하는 키오스크였다. 관광지답게 키오스크는 독일어, 영어 등으로 표기돼 1유로부터 다양한 금액을 선택해 기부할 수 있었다.

슈테판 성당에서 멀지 않은 성 페터 성당은 매일 한번 무료로 30분간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려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입장료는 무료지만 성당 입구에 자유롭게 기부금을 낼 수 있는 모금함이 놓여있어 연주를 듣고 나오는 길에 5유로짜리 지폐 한장을 넣었다.

‘모금’은 재해나 질병, 생계 등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기금 마련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문화재 관람료에도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한국에서는 낯선 풍경이었다. 파이프 오르간이라는 악기 보수를 위해, 매일 무료로 들려주는 오르간 연주를 위해 모금을 계획하고 그것을 낯설지 않게 여기며 정성을 보태는 모습은 유럽 역사와 상업의 발달 양상에 따라 진화해온 파이프 오르간 발전의 원동력임을 깨달았다.

지난 19일 지자체 설립 공연장 중 처음으로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한 부천아트센터가 문을 열었다. 2016년 대규모 클래식 전용홀로는 처음으로 설치된 롯데콘서트홀 파이프 오르간 이후 약 7년 만에 만나는 귀하고도 반가운 파이프 오르간이다. 막대한 제작비, 건축설계와 함께 진행돼야하는 준공기간 등의 제약으로 신규 공연장이 건립될 때마다 파이프 오르간 설치 여부는 큰 관심사였다.

지금까지는 여건의 제약으로 고귀하면서도 다채롭고 성스러우면서도 화려한 파이프 오르간의 음색을 들을 기회가 자주 없었다. 하지만 롯데콘서트홀을 시작으로 부천아트센터 그리고 2025년 개관 예정인 부산국제아트센터에도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된다고 하니 더욱 큰 기대를 갖게 된다.

오르간의 정수는 ‘다양성’과 ‘화합’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음이 사라지는 여타 악기들과 달리 오르간은 건반을 누르고 바람이 공급되면 무한대로 소리를 지속시킬 수 있는 영속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렇게 오르간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며 영위해가는 우리 사회를 닮았다. 그리고 그 악기의 정수이자 특징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갖춰야 할 속성들이기도 하다.

아직 넉넉하지는 않지만 파이프 오르간과 우수한 오르가니스트를 갖춘 것으로 첫 음은 눌렸다. 이제 지자체와 공연장의 지속적인 지원과 좋은 기획 그리고 시민들의 관심이 오르간 음을 지속하게 하는 바람처럼 공급된다면 세계 최고의 오르가니스트 올리비에 라트리의 말대로 “모든 소리를 구현할 수 있는” 파이프 오르간을 통해 황홀한 감동과 겸허한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사업지원파트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