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인구 격차, '로컬리즘'으로 풀자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23-05-14 14:26 수정일 2023-05-14 16:54 발행일 2023-05-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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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방에는 먹이가 없고, 서울에는 둥지가 없다는 비유가 화제다. 2030세대의 먹먹한 현실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문장이다. 어디든 청년이 잘 살아냄직한 환경일 수 없다는 뜻이다. 더 정확한 비유는 ‘먹이가 없어 서울에 왔더니 둥지가 없어 알을 못 낳는다’로 정리된다. 순환경제가 멈춰선 지방에는 먹이(고용)가 없고, 그래서 인프라·일자리가 있는 서울로 왔더니 둥지(주거)가 없어 알(출산)을 낳을 수 없다. 먹이와 둥지가 한 곳에서 해결되지 않는 복합위기란 얘기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의사결정은 신중해진다. 특히 가족분화·자녀출산처럼 위험카드는 좀체 택하기 어렵다. 미래선택은 안정환경이 구축될 때 실현된다. 한국형 초저출산이 매년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는 이유다.

인구변화는 복합적이다. ‘사회변화→인구변화→사회변화’처럼 전후방의 사회문제가 초저출산을 심화시킨다. 앞단은 지방의 고용불안, 뒷단은 서울의 주거악화로 정리된다. 가운데의 인구변화는 고용불안 탓에 서울로 몰려든 사회이동이 저출산에 닿고, 이게 재차 서울권역의 자연감소로 초저출산을 심화시킨다. 인구가 몰린 고밀도공간은 대부분 저출산을 뜻한다. 실제 2021년 전국 평균 0.81명의 출산율에도 불구, 서울은 0.63명으로 평균을 갉아먹었다. 서울로의 사회이동이 초저출산의 원인이란 얘기다. 물론 사회이동은 먹이를 찾아오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문제는 개별선택이 사회전체의 갈등·비용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소멸운운은 이렇듯 확산된다.

‘인구문제=도농격차’라면 당면해법 중 우선순위는 자연스레 정리된다. 먹이·둥지의 공간격차를 해소해주는 책략이 시급하다. 위험수위를 넘긴 지역격차에 주목하는 것이다. 방치·외면이 빚어낸 값비싼 결과는 초저출산의 매서운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물론 원인·이유는 많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사회구조 모두가 인구변화에 한몫했다. 경직적인 제도·정책이 시대변화를 못 따르니 엇박자·부작용이 뒤틀린 인구수급의 저출산·고령화를 낳았다. 더는 곤란한 상황이다. ‘지방전출→도시전입’으로의 공간이동을 줄여줄 안전장치가 없다면 교육·취업부터 산업·문화·주거까지 서울수도권의 경쟁우위·일극집중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분산과 완화는 시대의제일 수밖에 없다.

로컬리즘은 그래서 실험해봄직한 아이디어다. 지역재생·지역활성화 등 키워드가 뭣이든 자생·순환적인 직주락(職住樂)의 로컬기반을 튼실하게 구축하는 접근법이다. 난파선처럼 침몰이 계속되는 소멸경고의 지방경제를 살려낼 우선적인 실행과제다. 단 달라진 취지와 새로운 접근은 필수다. 창의적 재생모델과 열정적 협업체계로 기존의 타이틀뿐인 균형발전 경로·관성에서 벗어나는 게 좋다. 실제 그간 수많은 단위사업이 펼쳐졌지만, 결과는 실망스럽다. 건물·단지 등 공간조성(하드웨어)부터 제품·서비스 등 재화공급(소프트웨어)까지 판박이처럼 빼닮은 한계만 반복했다. 새로운 활력거점을 기대한 지역주민은 좌절에 익숙하다.

지역마다 경로축적의 토양기반은 다르다. 좋다는 모범사례조차 이식에 따른 거부반응의 부작용은 상존한다. 따라서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하고 협력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역활력의 엔진은 지역과 주민일 때 지속된다. 전시행정과 달리 지역협력을 강조하는 달라진 로컬리즘이 절실하다. 군집생활의 협력은 개별행동보다 탁월한 생존조건 때문이다. 숨가쁜 양적개발로 잊어진 협력효과가 발휘되면 건강한 지역복원도 어렵잖다. 풀뿌리주체가 주고받던 다양한 순환생태계의 복원이 로컬리즘의 기본취지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