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칼럼] 어느 중견 페인트 회사의 똑똑한 예술후원

주순이 한국메세나협회 경영기획팀장·경영학 박사
입력일 2023-05-11 13:45 수정일 2023-05-20 09:06 발행일 2023-05-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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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순이 한국메세나협회 경영기획팀장·경영학 박사

미술관에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시작품과 작가에 집중하지만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후원경쟁, 협찬 유치전이 뜨겁다. 인기 많은 전시와 아트페어에는 명품 패션 브랜드와 자동차 회사, 금융권 등이 후원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려고 줄을 선다. 대부분 예술분야에 대한 기업의 후원은 예술성과 창의성을 공유하거나 홍보를 통한 브랜드 관리 등을 목표로 진행한다.

최근 전폭적으로 예술후원을 하는 한 중견기업이 눈에 띈다. 도료 및 합성수지 제조·판매사인 노루페인트다. 노루페인트는 업종에 맞게 컬러를 중심으로 한 예술후원 활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미술시장을 뜨겁게 달군 ‘프리즈 서울’과 여의도 더현대서울 알트원에서 열린 ‘다비드 자맹: 프로방스에서 온 댄디보이’ 전 그리고 올해 4월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까지 전시장의 각 섹션을 감각적인 색깔로 연출하도록 페인트와 후원금을 지원했다.

노루페인트는 각 행사의 주최 측에 파트너십을 먼저 제안하는 적극성을 보였는데 전시 공간을 고려해 특별하고 전문적인 컬러 제품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후원기업의 전문성을 자랑할 만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좀비’ 전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렸던 ‘워치앤칠 2.0’, 과천관의 ‘백남준 효과’, 덕수궁관에서 진행한 ‘문신:우주를 향하여’ 전시에도 페인트를 협찬했다.

특히 만화풍의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무라카미 좀비’ 전에는 특수 제작한 화이트 컬러로 전시 공간을 꾸몄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신진작가 프로그램인 ‘젊은 모색’ 전의 올해 전시에도 후원을 했으며 홍철책빵 벽화 프로젝트, 롯데월드 그럴싸진관 등 젊은 세대가 찾는 공간에도 페인트를 협찬해 MZ세대의 마음을 공략하고 있다. 

이밖에 노루페인트는 지난 4월에 열린 세계 최대 디자인 전시회인 ‘2023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도 참여하여 ‘미라지’(Mirage)라는 제목의 전시관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등 해외시장에서의 브랜드 관리도 열심이다.

노루페인트의 예술후원은 미술에 한정돼 있지 않다. 국립오페라단, 세종솔로이스츠, 무악오페라단, 한국페스티발앙상블, 서울문화재단,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함신익과 심포니 송, KBS교향악단 등 수많은 음악단체에 조건없는 후원을 해왔다. 특히 함신익과 심포니송 오케스트라의 ‘더 윙’(The Wing) 사업을 전폭 후원한 사례는 많은 음악가들에게 회자된 바 있다.

문화기반시설의 지역별 불균형을 없애고 저소득층들에게 품격있는 클래식 무료 공연을 제공하고 싶다는 심포니 송에 2억원 넘는 이동무대인 5.5t 트럭 마련부터 전국 순회공연과 정기공연까지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페인트 제조사가 이렇게까지 예술후원 활동에 열심인 이유는 미래시장 선점을 위한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예술을 활용한 고도의 경영전략이 기업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됐기 때문이다. “기업은 문화예술을 돕는 게 아니고 기업 존재가치를 위해 메세나 활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故이어령 선생의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주순이 한국메세나협회 경영기획팀장·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