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수요를 진작시키는 거시경제 정책의 근본적인 문제

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입력일 2023-05-02 14:25 수정일 2023-05-02 14:35 발행일 2023-05-02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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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경제성장률을 계산하는 데 보통 GDP(국내총생산) 증가율을 이용한다. 그리곤 소비가 몇 %, 투자가 몇 %, 정부지출이 몇 %, 순수출(수출-수입)이 몇 % 증가했는지를 따지면서, 경제성장률이 증가한 이유, 혹은 감소한 이유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만일 소비와 투자 증가율이 낮으면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GDP가 소비지출(C), 투자지출(I), 정부지출(G), 순수출(X-M)의 합으로 측정되고 있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GDP = C + I + G + (X-M)은 회계상의 항등식이지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GDP는 한 국가에서 일정 기간 생산된 모든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말한다. GDP는 한 국가의 구성원 모두가 생산하여 얻은 총금액이다. 이 금액은 구성원들이 지출한 총금액과 같아야만 한다. 즉, 한 국가 내에서 생산된 총생산물의 가치를 측정한 ‘생산GDP’와 총지출 측면에서 측정한 ‘지출GDP’가 같아야 한다. 이 지출GDP는 앞에서 언급한 소비지출, 투자지출, 정부지출, 순수출로 구성되어 있다.

지출 측면의 GDP에서 소비지출, 투자지출 정부지출이 포함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순수출이 왜 지출 측면에 포함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생산된 재화(소비재나 투자재)를 구매하는 것이 우리의 입장에서는 수출이다. 이 수출에 대한 지출이 더 해져야만 한다. 소비, 투자, 정부지출은 단지 우리가 생산한 재화 중에서 국내 지출만을 반영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우리가 생산한 재화에 대한 지출을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다.

한편 우리 국민들이 외국에서 생산된 재화(원유나 기계 등)를 구매하면 이에 대한 지출은 소비지출과 투자지출에서 빠져야 한다. 그것들은 국내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변을 GDP라 하고, 우변을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을 더한 것이라고 하면 좌변과 우변은 회계상 같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항등식을 이용하여 우변에 있는 변수 중의 하나를 올리면 GDP가 증가할 것이라는 생각이 정책입안자, 경제전문가, 일반지식인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다. 그리하여 GDP로 계산한 경제성장률이 저조하면 정부지출을 늘려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는 정책을 많이 쓰며, 또 그렇게 제안한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 잘못된 이론이다. 왜냐하면 항등식을 인과관계로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은 올바른 경제이론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올바른 경제이론의 기본은 인과관계로부터 출발한다. 인과관계가 없는 변수를 마치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가정하는 경제이론을 바탕으로 한 정책은 잘못될 수밖에 없고, 잘못된 정책은 경제를 성장시키기는커녕 경제에 혼란만 초래한다.

더 좋고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될 때 경제가 성장한다. 생산이 증가해야 경제가 성장하는 것이다. GDP 항등식의 우변은 총지출, 즉 총수요를 나타낸다. 생산이 증가하면 우변인 총수요가 증가하게 된다. 생산이 감소하면 우변인 총수요가 감소하게 된다. 이것은 수요보다는 생산이 먼저이며, 수요는 생산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실 내가 생산하고 그것으로부터 얻은 소득으로 소비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경제원리다.

생산의 증가 없이 수요는 증가할 수 없다. 생산의 증가 없이 정부가 지출을 늘리거나 통화를 팽창시켜 수요를 늘리면 생산이 뒷받침되지 않는 수요가 증가하게 된다. 생산이 뒷받침되지 않는 수요를 늘리는 정책은 새로운 생산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 것을 재분배할 뿐이다. 생산된 것을 재분배하는 것은 자원의 비효율적인 사용을 초래하므로 수요를 늘리는 정책은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쇠퇴하게 만든다.

정말로 경제성장을 유도하려면 더 좋은 재화와 서비스가 더 많이 생산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출을 늘리거나 통화를 팽창시키는 수요진작 정책이 아니라 기업과 기업가의 활동을 방해하는 제도를 개혁하고 규제를 완화하여 기업과 기업가가 창의적이고 역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왜냐하면 기업과 기업가가 생산의 주역이기 때문이다.

수요진작이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잘못된 이론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 잘못된 이론에 근거한 거시경제정책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