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패션협찬 상생의 생태계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23-03-29 15:07 수정일 2023-03-29 15:09 발행일 2023-03-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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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배우 A가 ○○ 작품에서 입은 옷, 가수 B가 △△ 예능에서 썼던 안경. 언제부터인가 미디어 속 패션 협찬은 익숙하다. 이제는 전통 매체 광고보다 대중에게 자연스레 스며드는 각종 협찬이 패션사업의 홍보·마케팅에 더 효과적이다. 의상, 소품에 대한 끊임없는 수요를 갖고 있는 연예인이나 제작사의 이해관계가 맞물려서 등장하는 협찬은 방송사 입장에서도 제작비를 아끼는 수단이다. 이렇듯 협찬은 비용을 최소화하는 상생의 산물이자 선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순환 생태계가 깨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방송사의 방송저작물 사용금지 및 고가의 사용료 청구가 그 주범이다. 오랜 관행에 따라 방송캡처본을 사용한 블로거, 대행사에게 방송사가 돌연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심지어 몇몇 블로거를 상대로 형사고소까지 진행하면서 합의금을 요구한다. 저작권법만 따진다면 방송사 주장이 맞다. 하지만 이는 협찬 사정을 모르는 억지일 뿐이다. 연예인과 대행사 사이의 협찬계약에는 패션협찬의 대가로 해당 영상을 광고 용도로 사용할 권한이 부여된다. 그럼에도 방송사는 협찬계약에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협찬의 오랜 관행을 깨고 줄기차게 저작권 침해로만 몰아 부치고 있다.

이런 저작권 주장은 누구를 위한 걸까? 방송사가 모든 협찬을 PPL처럼 비용을 받으려고 든다면 연예인에 대한 패션 협찬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방송저작물을 둘러싼 모든 당사자들은 피눈물을 흘려야 한다. 연예인은 일일이 돈 주고 패션제품을 구입해야 하며 방송사 입장에서는 협찬품이 빈약해지면서 콘텐츠 품질 문제가 발생한다. 더불어 잠재적인 광고주도 잃고 판권 해외수출에도 좋을 리 없다. 패션브랜드는 효율적 홍보수단을 하루아침에 박탈당하게 된다.

협찬을 둘러싼 분쟁은 단순히 방송사와 패션브랜드·대행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예인을 관리하는 연예매니지먼트협회, 연예제작자협회도 이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연예인 측은 당장 슈퍼갑 방송사의 눈치를 보느라 조심스럽겠지만 그나마 의미있는 목소리를 방송사에 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협찬 없이도 의상 등 소품을 준비할 수 있게끔 방송사가 연예인에게 충분한 출연료를 지급하지 못한다면 순조로운 패션 협찬 및 협찬 계약의 이행을 위해 대행사 등이 캡처본을 무상 또는 적절한 가격에 사용할 수 있도록 방송사에 요청해야 한다.

결국 공은 공공기관으로 넘어온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중간자적 입장에서 협찬품의 방송캡처본을 공정하게 사용할 수 있는 표준 약관을 제정하거나 양자 사이의 협약이 체결될 수 있도록 중재해야 한다. 아울러 공정거래위원회도 방송저작물 사용료 청구에 있어 불공정행위의 요소가 있는지 여부도 살펴야 한다. 하다못해 교통범칙금 딱지조차도 일정한 계도기간을 거쳐야 시행하는 세상 아닌가.

협찬은 협업을 의미한다. 협업은 모두 같이 이익을 얻는 것이다. 자연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조차도 영원히 포식만 할 수는 없다. 먹이사슬에 의해 약자를 배려하며 같이 살아야 자기도 계속 생존할 수 있다. 문화산업에서도 자기 권리만 고집한다면 상생의 생태계는 금세 파괴된다. K콘텐츠, K패션의 내일을 위하여 조화로운 상생의 길을 슬기롭게 모색해야할 때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