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혼란의 시기에서의 정부 역할과 산업대전환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일 2023-02-27 08:30 수정일 2023-02-27 08:50 발행일 2023-02-26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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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무너지는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을 다시 일으키고 미래지향적 산업으로의 전환을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해 권력을 통제하는 일은 정부의 기본적 책무다.

대한민국은 고도성장기 시기에 색다른 경험을 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오해받기 쉬운 이름으로 정부가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수행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명령적 자원배분을 기초로 한 사회주의적 계획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 계획은 시장경제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인 미래의 불확실성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일부 해결해 주는 정부의 확인증 역할을 했다. 정부가 할 일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불확실한 미래의 일부를 확실하게 특정해, 민간이 경제활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선언이기도 하다. 현재 필요한 정부의 추가적인 역할이다.

1990년대 이후 과거는 폄훼되고, 정부의 개입이 성장을 도모했다는 미신만이 남아있게 됐다. 정부의 개입으로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사회주의자들이 득세했다. 노동조합이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정책 수립의 주체로서 부상하고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노동조합을 찾아가는 행태가 반복되었다. 기업인들은 각종 규제로 발목이 잡히고 노사관계의 악화로 경영권은 침해됐다. 정치권은 복지국가를 외치면서 사적 영역의 경제활동을 공권력으로 제어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불합리한 정부 개입의 상징이 됐다. 경제성장 동력을 잃고 미래가 불안하다 보니 정부의 사회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사회주의적 이상향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힘도 세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필요한 방향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1990년 이후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한 번도 상승한 적이 없이 하락했다. 성장을 결정하는 투자, 노동, 생산성 등 주요 요소들도 개선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경제는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중심의 공급망이 강화되고 중국은 철강, 화학, 반도체 등 주요 중간재 생산 부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수입의존도를 줄이고 첨단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간재 무역뿐 아니라 최종재 무역에서도 우리나라와 중국은 상호 보완적 관계에서 전략적 경쟁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산업 전반에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혼란의 시기에서 정부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과거 고도성장기의 경험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것이다. 정부는 경제 주체들에 대한 명령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현재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산업구조의 변화 조짐이다. 소위 잘나간다는 반도체의 미래도 불안하다. 메모리 분야에서의 반도체 우위만으로 미래의 위상을 확보할 수 없다. 발전할수록 단가가 떨어지는 산업의 미래는 불안하다.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의 기간산업의 경쟁력도 미래를 불안하게 만든다. 귀족노조가 기간산업의 발전을 틀어쥔 지 오래다. 귀족노조가 생산성 제고 정책도 방해하는 등 경영개입으로 전체 산업의 경쟁력도 위태롭다.

정부가 할 일은 합리적 노사관계를 정착시키고 경영권을 보호해주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경영권의 보호는 헌법에 규정된 정부의 책무다. 규제로 억눌린 경영권을 정부가 풀어줘야 한다. 새로운 산업의 등장은 과거 산업의 쇠퇴를 의미한다. 정치권도 표를 의식해서 새로운 산업의 등장 자체를 막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개인의 창의로 경제가 발전하며, 개인의 창의와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연구개발 투자와 인재 양성에 매진함으로써 경제 내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정부가 훼방꾼이 아니라는 믿음이 형성된다면, 우리 산업은 대전환되어 경쟁력을 찾게 될 것이다. 정부는 과거를 교훈 삼아 자신의 책무를 확실하게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