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법원과 검찰에 ‘책임’ 물을 수는 없는가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3-02-13 10:42 수정일 2023-02-13 10:45 발행일 2023-02-13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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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의 근원적 문제는 불량기업의 ‘퇴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유경쟁 시장에서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외면하면 퇴출될 수밖에 없는 것과 대조적이다. 말하자면 기업들은 소비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책임’을 ‘퇴출당하는 것’으로 진다. 그러나 공기업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소비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해도 처음부터 법으로 보장된 독점이거나 혹은 세금 등의 지원을 통해 계속 연명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제대로 ‘책임’을 지게 할 때, 비로소 ‘효율성’도 달성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유의 반대자들은 흔히 고전적 자유주의의 구호인 ‘레세 페어’(Laissez-faire)를 ‘자유방임주의’라고 번역해서 고전적 자유주의가 마치 책임을 전혀 지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인 양 선전했다. 그러나 고전적 자유주의는 정부 간섭을 배제한다는 것일 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면서 남들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자유와 책임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 같다. 사실 책임 부재에 따른 문제는 단순히 공기업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도 만연해있는 것 같다. 특히 최근 사법부가 이런 책임 부재의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다. 그 비근한 사례가 바로 ‘재판 지연’이다. 법대를 다니면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고 아무리 배우면 뭣하나. 재판을 지연했다고 해서 그 재판을 주관하는 판사가 ‘책임’을 졌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최근 법원의 윤미향과 곽상도에 대한 ‘사실상의’ 무죄판결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윤미향 의원은 1심에서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 가벼운 처벌인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문재인 정부 당시의 검찰이 2020년 9월 기소한 후 무려 2년 5개월만이다. 이는 ‘기소 후 6개월 내’라는 통상적인 민사소송 재판 기준을 4배나 끈 것인데 대법원까지 소송이 진행되면, 윤미향 의원이 “의원 자격이 없다”는 비판을 경청하지 않는 한, 끝까지 의원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래서 법원이 사실상의 면죄부를 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심지어 소송 처리 시한을 법률로 정한 ‘선거무효소송’의 경우에도 법원은 판결시한을 지키지 않았다. 자신은 법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법원이 누구를 법 위반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인가. 판결시한에 대해 책임을 추궁해야 하지만, 그런 처분이 내려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선거무효소송은 공직자선거법 제225조에 따라 다른 쟁송에 우선하여 180일(6개월) 이내에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부정선거로 당선된 이의 공직 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126건의 소송 가운데 가장 빠른 민경욱 전 의원의 경우에도 김명수 대법원은 27개월이나 끌어 법의 취지를 무색케 했다.

법원은 또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화천대유에 6년간 근무하고 31세에 퇴직하면서 50억원의 퇴직금을 받았고 녹취록에도 이를 곽 전 의원이 요구했다는 김만배 씨의 발언이 있었지만, 법원은 뇌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봤다. 또 아들이 분가된 독립가구여서 경제공동체가 아니라는 판단도 내렸다. 그래서 1심 재판부는 아들 퇴직금 50억원 수령에 대해서는 뇌물이 아니라고, 다만 지난 총선 직전 받은 5000만원에 대해서만 불법정치자금으로 판단해서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이런 법원의 판결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과 분노가 들끓자 검찰은 수사팀과 수사를 보강해서 항소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은 “앞으로 분가한 독립가구인 아들에게 50억 뇌물을 합법적으로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개별 재판에 대한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만 대답했다고 한다. 윤미향과 곽상도 사건에 대해 1심 재판부가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법리와 사실만으로 판결했다고 하겠지만, 상식을 벗어났다. 검찰의 수사가 부실했든지 아니면 판결이 지나치게 피고의 입장을 대변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느 편이 진실이든 제대로 된 ‘정의로운’ 법률서비스를 하지 못한 이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가.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