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금융의 그림자①] 생보 설계사 1년새 2만6000여명 감소…모바일 영업 '난감'

이지은 기자
입력일 2022-06-01 10:24 수정일 2022-06-19 13:37 발행일 2022-06-0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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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게티이미지뱅크)

[편집자 주]최근 금융권의 주요 화두 중 하나는 ‘비대면(언택트)경영’이다. 금융사들이 저비용 고효율을 실현한다며 비대면 프로그램을 강화하면서 상품 판매 인력들과 영업 점포가 줄어들고 있다. IT(기술정보)발전에 따른 경영혁신이라지만 자칫 고용시장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비대면 시대 도래 이후 금융산업의 취약계층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고용·근로 환경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짚어본다.

“라텍스 장갑을 끼면서까지 고객을 만나러 갔는데 가게 앞에서 문전 박대를 당했어요”

박미성(가명·57) 씨는 A 생명보험사에서 24년째 보험을 판매해 온 베테랑 전속설계사다. 박 씨는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월지출을 줄이고자 보험을 해지했던 이들을 다시 끌어들여 고객으로 만들었을 만큼 뛰어난 영업 수완을 가지고 있다.

그런 박 씨도 오미크론이 확산되기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는 실적 고민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영업을 위해 시장과 가게로 들어설 때면 접촉을 꺼려하는 고객들에게 싸늘한 시선을 받기 부지기수였다.

박 씨를 더욱 힘들게 만든 것은 보험사의 비대면 영업시스템이었다. 보험사 측에서는 모바일 청약시스템, 화상상담 시스템 등 다양한 플랫폼을 적극 이용하도록 권장했지만 대면 영업이 익숙했던 박 씨는 이 같은 방식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박 씨는 고객을 직접 만나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서야 했다.

◆생보 설계사 1년 만에 2만6000여 명 감소뒤바뀐 영업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박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대면 영업이 급격히 위축하면서 생명보험업계 전반적으로 설계사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1일 금융감독원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생보사 전속 보험설계사는 6만8958명으로, 전년(9만4866명) 대비 2만5908명이 줄어들었다.

손해보험사 전속 설계사 수는 같은 기간 2만2515명(27.0%) 증가해 지난해 말 기준 10만5750명을 기록했다.

생명보험사의 설계사 감소 폭이 더 가파른 이유는 고령화, 저출산으로 고액의 종신보험 가입률이 줄어들며 수수료 수익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또한 상품구조가 복잡한 생명보험 특성상 대면 가입 비중이 높은데 코로나19로 영업 환경이 위축되면서 이전보다 보험 판매에 제약이 컸던 것도 이유로 꼽힌다.

GA 설계사 이탈율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보험대리점협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대형GA 10개 사 가운데 설계사 수가 감소한 곳은 7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지에이코리아가 869명 감소했으며 글로벌금융판매는 597명, 프라임에셋은 584명 감소했다. 10개 GA의 총설계사 감소수는 3398명으로 집계됐다.

“모바일청약 이용 어려워”…고령 설계사들 난감설계사의 이탈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사의 급격한 비대면 시스템 도입으로 영업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설계사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보험대리점에서 점장으로 근무 중인 이 모씨(56)씨는 고령층의 보험설계사에게 비대면 영업 시스템을 교육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씨는 “지방의 경우 젊은 설계사보다는 50~60대 설계사들이 주를 이룬다”며 “이들은 태블릿 PC 사용법도 익숙치 않을뿐더러 모바일 청약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팀장과 지점장이 영업 현장에 동행하곤 한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으로 인해 모바일 청약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특히 금소법 상 보험 가입 시 자필서명을 할 때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르면 전자서명이 이뤄질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설계사들은 애를 먹고 있다.

이 씨는 “말만 비대면 영업이지 어머니가 딸의 보험을 가입해주는 케이스가 생기면 결국 직접 고객을 찾아 가야해서 사실상 대면 영업과 다를 바 없다”며 “전화로 설명을 드리거나 등기우편으로 보내서 사인을 받는 경우도 있다 보니 부실계약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토로했다.

◆설계사 잦은 이탈…소비자 피해로 돌아와보험업계 관계자들은 보험설계사의 잦은 이탈은 결국 소비자에게도 피해로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설계사가 이직 또는 퇴직을 하는 과정에서 계약자에게 제대로 된 정보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해 계약이 실효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김소영 인카금융서비스 보험설계사는 “카드를 납부하는 고객 가운데는 카드 유효기간이 끝났는데 카드번호를 다시 보내주지 않아 보험이 해지되는 경우도 있다”며 “비대면 가입이 늘어난다고 해도 보험 계약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설계사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설계사는 “피보험자와 계약자가 달라도 모바일 청약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거나 수익자 지정시 고객의 신분증 사진을 캡처해 보내는 절차를 없애 설계사들이 비대면 영업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