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최소우주’에서 ‘최대우주’ 만드는 조동희 “작사의 시대가 오리라 믿어요”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1-11-09 18:00 수정일 2021-11-09 18:00 발행일 2021-11-1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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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조동희
싱어송라이터 조동희 (사진제공=한겨레출판)
연년생 세 아이의 엄마, 싱어송라이터 겸 작사가, 대학 강의 및 각종 강연, 그리고 기획사 대표까지…뮤지션 겸 작사가 조동희(48)의 하루는 숨 돌릴 틈이 없다. 대체 잠은 언제 자나 싶을 정도로 하루를 쪼개 쓰는 그가 책까지 썼다.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한겨레 출판)는 조동희의 여러 ‘부캐’ 중 작사가로서의 삶에 초점을 맞춘 에세이집이다. 
조동희가 24살이던 1997년에 노랫말을 쓴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는 한국 포크의 걸작으로 꼽힌다. 아이유, 넬 김종완, 슈퍼밴드의 김한겸 등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꼽는 이 곡은 찬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음악 팬들의 시린 추억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준다. 
책은 이미 음악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출간 이틀만에 2쇄를 찍었다. 최근 마포구 연남동에서 만난 그는 “가사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극적인 아이돌 음악의 라임과 후크가 잘못됐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야기를 통해 공감을 얻길 원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작사의 시대’가 오리라 믿어요.”
유명 영화감독인 부친(故 조긍하)과 한국 포크음악의 전설로 꼽히는 두 오빠(故조동진, 조동익)를 뒀지만 조동희는 책 속에서 학창시절이 부유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남다른 가정환경으로 그의 피 속에 흘렀던 감성적인 DNA는 자연스럽게 노랫말의 길로 이끌었다. 첫 작사는 조규찬 1집 수록곡 ‘조용히 떠나보내’(1993). 이후 김정민, 김장훈, 장필순 등 1990년대를 수놓은 수많은 명반에 작사가로 이름을 올렸다. 조동희는 그 무렵을 “인생에서 가장 잘 벌던 시기”라고 말하며 웃었다. 
“20대 때는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덕분에 백화점에서 옷을 사 입었죠.(웃음) 친구들 술값도 다 내줬고…제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그때는 천재소리를 듣곤 했어요. 하하”
가사가 시 같다며 거절당하던 20대 청년은 이 녹음실, 저 녹음실의 해결사로 떠올랐다. 당시만 해도 K팝 시장이 지금처럼 산업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사 때문에 고민하던 뮤지션들은 주저하지 않고 “동희 불러”를 외치곤 했다. 하지만 천재성을 남발하던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둘째 오빠 조동익의 호된 꾸지람에 그는 자숙의 의미로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이후 결혼해 첫 딸을 출산하고 이듬해 쌍둥이 형제를 낳으며 자연스럽게 음악과 멀어지게 됐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변기에서, 세면대에서 사고를 치고 엄마의 첫 깁슨 기타를 부러뜨린 세 남매는 어느덧 훌쩍 성장해 엄마의 좋은 친구로 자리잡았다. 큰 딸은 학교밴드에서 깁슨 기타를 치는 병아리 기타리스트고 막내 아들은 최근 충무로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엄마와 외할아버지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조동희는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음악을 하고 싶어도 못했다”며 “1집 발표 뒤 쉰 적이 없다. 육아의 시간을 통해 음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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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조동희 지음| 한겨레출판 | 1만 5000원 | 사진제공=한겨레출판

책은 작사의 노하우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기보다 조동희의 노래처럼 여백의 미가 많다. 곰곰이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는 의미다. 수많은 이의 가슴을 울린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쓰게 된 배경 역시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조동희는 “많은 사람들이 장필순 언니의 곡으로 알고 있어 내 사연을 알려드리는 모습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노래는 듣는 이가 각자의 사연으로 해석하고 배경음악으로 남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인터뷰 때 살짝 공개한 노랫말은 애절한 남녀관계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이 노래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 부르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조동희는 책 속에서 ‘영감이란 어느 순간 벼락처럼 내려오는 게 아니다. 일상 속에서 묵히고 묵히며 묵묵히 살아가는 중 돌연 발끝에 치이게 된다’고 적었다. 조동희의 표현처럼 그의 영감은 그가 꾸려가는 ‘최소 우주’ 속에서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다. 이미 올해 경기도어린이박물관 개관10주년 기념사업으로 융진, 임주연, 박혜리, 장필순, 말로, 박새별, 유발이, 허윤정, 강허달림 등 내로라하는 엄마 뮤지션들이 참여한 ‘엄마의 노래’ 프로젝트를 마쳤다. 
신인 싱어송라이터를 발굴하는 ‘네오유니버스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달 27일 가수 동은의 싱글 ‘을’을 냈고 내년 2월 젊은 가수와 베테랑 가수가 함께하는 ‘투 트랙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첫 번째 주자인 가수 정승환이 부르는 곡 ‘연대기’의 가사도 책속에서 만날 수 있다. ‘최소우주’에서 ‘작사의 시대’를 열어가는 조동희의 무궁무진한 ‘최대우주’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