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오징어게임’ 전 세계 흥행에… 국감서 번지 수 틀린 억지 질책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1-10-14 18:30 수정일 2021-10-14 18:30 발행일 2021-10-1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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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Talk] 번지수 틀린 억지 질책 '눈살'
답변하는 양승동 KBS 사장<YONHAP NO-3096>
양승동 KBS 사장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방송공사, 한국교육방송공사 국정감사에 출석,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연합)
글로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국회 국정감사를 연일 장식했다. 지난 12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는 KBS가 ‘오징어게임’같은 한류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작품은 우리가 만드는데 큰돈은 미국(넷플릭스)이 싹 다 가져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KBS는 왜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느냐”고 질의했다. 이에 양승동 KBS 사장은 “‘오징어 게임’은 KBS 같은 지상파가 제작할 수 없는 수위의 작품이다.  KBS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KBS와 KBS계열사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드라마제작사 몬스터유니온을 언급하며 “(몬스터유니온을) 대형 스튜디오로 키우고 지상파TV와 온라인 콘텐츠를 구분해 제작하는 방식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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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에서는 이날 국정감사에서 나온 ‘오징어게임’ 관련 질의를 ‘국정감사용 쇼멘트’라고 보고 있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글로벌 OTT는 고비용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지만 그만큼 실패 확률도 높다. 고위험 고수익(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원칙을 앞세우지만 망해도 책임 소재를 따지지 않는다. 
실제로 ‘오징어게임’ 이전 한국이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 작품은 ‘킹덤’ 시리즈와 ‘스위트홈’ ‘D.P’ 등 손에 꼽는다. ‘오징어게임’ 역시 해외 흥행 전 국내에서는 호불호가 적지 않았다. 
‘오징어게임’의 높은 제작비도 재정이 열악한 국내 지상파 방송사 자본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규모다. 회당 22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오징어게임’은 해외에서는 가성비 좋은 작품으로 꼽히지만 지상파 방송사가 흥행 실패 위험을 떠안고 제작하기엔 부담이 크다. 
오징어게임_1차 메인포스터_세로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사진제공=넷플릭스)

한 방송관계자는 “국내 지상파 방송사는 ‘규모의 경제’로 국내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먼저 충족시켜야 한다”며 “가뜩이나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인건비가 상승한 가운데 능력있는 프리랜서 편집자, 조연출들이 유튜브 등 자체 콘텐츠 생산업체로 빠지면서 쓸 만한 인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송 관계자는 “수신료 인상안과 관련, 국감에서 부정적인 입장이 대부분이었는데 40년 동안 수신료를 동결해놓고 회당 22억원의 작품을 만들지 못하냐고 하면 방송사 입장에서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말문이 막힌다”고 분개했다. 
무엇보다 폭력성과 선정성으로 지금과 같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가 없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만약 ‘오징어게임’ 판권을 KBS가 구매했다면 1회에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누리꾼들도 “방송심의위원회와 시청자게시판의 산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징어게임’의 흥행이 글로벌 OTT채널인 넷플릭스의 유통망을 통해 이뤄진 만큼 공영방송인 KBS사장에게 “왜 ‘오징어게임’ 같은 작품을 만들지 못했냐”는 질타는 번지수가 틀렸다는 의견도 있다. 웨이브, 티빙, 왓챠 등 글로벌 OTT채널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OTT채널 대표를 소환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국감에서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넷플릭스가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하는 대신 흥행에 따른 수익을 모두 가져가는 상황을 언급하며 “미디어 산업의 넷플릭스 종속화”라고 규정했다. 
이에 양승동 사장은 웨이브를 언급하며 “웨이브의 콘텐츠 경쟁력이 앞으로 발전할 것이기에 긴장감을 가지고 대응하면서 장기적으로 한류 콘텐츠를 육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번지수가 틀린 질책과 질의에 그나마 정답에 가까운 답을 낸 셈이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