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동맹 강요에 '딜레마' 빠진 韓 반도체… 대응 전략 부심

우주성 기자
입력일 2021-09-27 16:44 수정일 2021-09-27 16:45 발행일 2021-09-2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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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상고 포기<YONHAP NO-1590>
서초사옥.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핵심 영업 기밀 등의 제출을 요구하고 나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미국의 요구대로 민감정보 제출시 발생할 상황에 대한 법리 검토에 착수했다. 향후 미국 정부 등에 비밀 준수의 특약을 요청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과 상무부는 지난 23일(현지시간) 개최된 반도체 업체와의 화상 회의에서, 반도체 재고, 주문·판매 등 반도체 공급망 정보를 담은 설문지를 오는 11월 8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미 상무부 관보 등에 따르면, 미 정부는 반도체 제조·공급업체에 대해 최근 수 년 간의 매출과 재고 정보와 기업이 보유한 직접회로(IC) 종류, 제품별 3대 고객 정보 등 핵심적이고도 민감한 기술 및 영업 관련 정보도 함께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이 외에 지난 3년 동안 기업 출하와 수주 비율, 기업이 보유한 공정능력과 공정능력 향상 계획, 지난 3년간의 원자재 및 설비 구매 변동유무 등의 경영 정보도 함께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고객사 관련 경영 정보가 직접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객사와 관련된 내용은 기업의 경영 정보에서 가장 중요한데, 그걸 제출한 상태에서 향후 거래나 협상에 나서기 쉽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요구”라고 언급했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이 미제출 기업에 대해 ‘국방물자생산법(DPA)’ 적용 가능성을 내비쳐, 압박 수위를 더욱 올렸다는 분석이다.

결국 국내 기업이 이런 미국의 반강제적 요구를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정부의 정보 제출요구에 협조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미국의 요구대로 무작정 자료나 정보를 넘기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미 정보 제출이 기존 고객사와의 계약 등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법리 검토에 착수하는 등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또 경영정보가 미국 인텔 마이크론 애플 등 경쟁사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 만큼, 최대한 협조는 하되 비밀 유지 등의 특약을 요구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정보 제출 시 한국 기업 입장에서 법적으로 상당히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기존 고객사와의 계약 사항을 위배할 소지가 있는지 등을 우선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객사 정보 등이 공개될 경우 반도체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경영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미국 정부에 비밀 준수 특약 등의 안전장치를 받아내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주성 기자 wjsburn@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