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 칠석을 연인의 날로

정운일 명예기자
입력일 2021-08-12 13:47 수정일 2021-08-12 13:49 발행일 2021-08-13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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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일 명예기자

칠석날은 음력 7월 7일로 홀수가 겹치는 양수(陽數)라 하여 생기가 돕는다고 믿었다. 칠석은 삼국시대부터 전해오는 큰 명절로 사찰이나 무당집을 찾아가 많은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민간인들이 자연지물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해, 달, 별, 산, 바위, 나무, 강 바다 등이 있고, 집안에서는 안방, 대청, 광, 부엌, 장독대, 측간, 우물, 마구간 등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칠성신은 북두칠성을 인격화 한 신으로 재물과 재능을 주고, 소원성취, 무병장수, 어린아이 수명을 늘려주고,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해주는 신으로 믿어왔다. 주부들은 장독대 옆에 칠성단을 만들고 정화수를 올려 칠성신을 섬기는 풍습이 민간신앙으로 자리를 잡았다.

필자가 어릴 때 동네에서는 칠석날이 되면 칠석제를 지냈다. 동네 사람들은 칠석 전날 모여 홍수로 파인 길에 흙을 돋아 길을 닦고, 겨울을 대비해 떠내려간 징검다리를 다시 놓았다.

동제와 기우제는 여자가 주동이 되어 지냈다. 여자는 아기를 낳고 기르는 생산력이 있어서 그랬다. 동제는 산봉우리에서 오이, 가지, 참외, 수박, 복숭아 등 과일과 시루떡, 밀전병, 칼국수, 호박 부침 등의 음식을 준비하여 칠석제를 올렸다.

옛날 서당에서는 학동들에게 견우직녀를 시제로 시를 짓게 하고, 민가에서 여름 장마철에 장롱 속의 옷가지와 책장에 습기가 차면 햇볕에 말리고, 국가에서도 사고(史庫)의 귀중한 서적이나 팔만대장경을 햇빛에 말렸다고 한다. 그래서 귀중한 자료들을 후손들이 볼 수 있고 앞으로도 이러한 좋은 전통이 이어져야 한다.

칠성각은 우리나라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전각이다. 중국에서 대승불교가 전해 올 때 만해도 사찰에서는 칠성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나타나기 시작하여 현재는 대부분 사찰에 건립되어 있다.

오늘날 칠석의 풍속은 견우와 직녀의 전설로 끝나서는 안된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동성연애를 하고, 혼인을 기피하고, 아이를 낳지 않은 풍조가 만연해 가는 시점에서 젊은 남녀의 순결한 사랑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일 년에 한 번 만난다는 우리 민족 고유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칠석을 ‘연인의 날’로 제정하자는 건의도 있었으며, 농촌진흥청은 칠석을 ‘우리 농산물 주고받는 날’로 정해 사랑하는 사람, 존경하는 분, 가까운 이웃 친지들에게 우리 농산물을 선물하자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좋은 방안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행사는 일회성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칠석 전통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자체에서는 남원 광한루 오작교, 영도다리, 진천 농다리, 청계천 광진교, 장충단 공원 수표교, 중랑천 중랑교, 살곶이 다리 등 여러 곳에 오작교를 미리 지정해 주고 널리 홍보해야 한다.

청춘 남녀는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되어 오작교에서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칠석의 의미도 살아나고 성스러운 혼인도 증가하여 인구도 늘어날 것이다. 잊혀저 가는 우리의 전통문화인 칠석을 연인의 날로 되살려야 한다.

정운일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