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추경중독에 빠진 문재인 정부, ‘케인즈 유령’에서 벗어나야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입력일 2020-09-14 10:06 수정일 2020-09-14 10:11 발행일 2020-09-14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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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연합)

국가가 개인보다 도덕적이라고 믿었다면 이는 순진함을 드러낸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개인은 자식의 부담으로 빚을 미리 끌어다 쓰지 않지만, 국가는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능히 그럴 수 있다. 국가 정책은 기본적으로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국가가 빚을 낼 때, ‘그 빚을 누가 부담하는 가’에 대해 숙고하지 않는다. 빚을 내 파티를 할 때, 빚으로부터 수혜를 받는 계층과 빚을 책임져야 할 계층이 다르기 십상이다. 이는 ‘밥 먹은 사람이 계산을 남에게 미루는 격’이다. 자기책임 원칙에 반(反)하는 기막힌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 ‘큰 정부’를 지향한 문재인 정권

문재인 정부는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다. 출범이후 국가 총예산 증가율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조세수입은 통상적으로 인플레이션에 실질 경제성장률을 더한 경상성장률과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예산증가율이 경상성장률의 일정배율 범위에서 결정되면 된다면 무리가 없다. 주지하다시피 근래 경상성장률은 4%를 넘지 않는다. 예산증가율이 ‘4% + 알파’ 이면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2017. 5) 후 처음 편성한 2018년 예산안에서 “새 정부 정책 과제를 이행해야 한다”며 지출 증가율 7.1%의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 다음 해인 2019년 예산안에서는 “우리 경제와 사회가 구조적인 여러 문제를 안고 있어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며 지출증가율을 9.5%로 높였다. 2020년에는 “경제 활력 회복 의지를 지원해야 한다”며 지출증가율을 9.1%로 유지했다. 올 9월에 편성된 2021년 예산안은 “코로나 전시 상황임을 이유”로 지출증가율을 8.5%로 책정했다.

한 가지 간과해서 안 될 사실(fact)은 2020년 예산을 편성할 때만 해도 ‘코로라 바이러스’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을 근거로 재정 팽창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바이러스와 무관하게’ 이미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해 왔다. 문재인 정부가 편성한 4개년 예산의 총지출 증가율 평균은 8.6%이다. 이는 줄잡아도 경상경제성장률의 2.5배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추경을 편성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 극복을 명분으로 무려 4차례의 추경을 편성했다. 추경편성의 관행화는 ‘꼼수의 관행화’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본예산을 통과시키고 추경을 통해 지출을 보강했기 때문이다. 총지출증가율을 높이 잡는 것은 쉽지만 세금을 걷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그 차이는 ‘국가 빚’으로 메꿔지기 쉽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부채가 빠른 속도록 증가하고 있다.

과도한 정부지출 증가는 후과(後果)를 가져온다. 정부지출을 과도하게 늘리지 않았다면 세금을 적게 걷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돈은 ‘가계 주머니’에 있었을 것이다. 만약 ‘한계적인 마지막 1원을 민간이 더 효율적이고 합목적적으로 지출한다면’ 큰 정부는 경제 전체의 효율을 해치게 된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것을 ‘그레샴’법칙 이라고 한다. ‘효율 축면에서’ 정부의 나쁜 지출이 민간의 좋은 지출을 구축하는 것이다. 즉 재정지출에도 그레샴 법칙이 적용될 수 있다.

▲ ‘착한 부채’ 주장의 허구

5.14일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착한 부채론’을 거론했다. 재정 건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국채 발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채 발행을 통해 적극적인 재정 정책으로 GDP를 늘리면, 채무 비율의 증가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채 증가 속도보다 재정지출 증가에 따른 GDP 증가 속도가 더 빨라야 GDP 대비 부채비율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이는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정부관료의 발언으로 믿기지 않는다.

기업부채와 국가부채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기업의 경우, 타인자본(빚)을 이용해 사업규모를 키우지 않으면 구멍가게를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부채를 ‘지렛대’로 인식한다. ‘부채조달비용’과 부채로 조달된 자본으로부터 ‘예상수익률’을 비교해 “자본조달비용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다면 부채를 일으키라고” 경제학은 가르친다.

정부는 소비조직이다. 기업은 부채를 발행해 돈을 벌어 빚을 갚으면 되지만 국가는 돈(부가가치를 창출)을 버는 조직이 아니다. 따라서 국가부채에는 ‘예상수익률’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증세는 조세저항을 부른다. 따라서 정부는 ‘조세 저항’이 없는 국채발행을 통한 재원마련을 선호한다.

민간이 돈을 빌리려면 돈을 빌려주는 쪽에게 ‘자금활용 및 상환계획서’를 제출하고 대출을 승인 받아야 한다. 민간 대출은 그만큼 깐깐하다. 하지만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리면서(찍어내면서) 상환계약서를 제출하지 않는다. 정부의 상환계획서에는 목표성장률이 명시되어야 하지만 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국가는 도산(倒産)하지 않기 때문에 부채를 늘린 정치인은 그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재정준칙 법제화’ 해야

문재인 정부는 재정중독(財政中毒)에 빠져있다. ‘모든 것을 재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관행화된 추경 편성은 재정건전성을 해치는 복병이다. ‘큰 정부’를 지향하는 경우 정부지출을 규율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큰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세입 이상의 지출을 하게 되고 그 차이는 국가부채로 쌓이게 된다. 현세대가 ‘증세’ 해서 빚을 갚지 않으면 국가부채는 고스란히 후속세대의 몫이다. 2021년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46.7%로 전망되고 있다. 위험수위를 넘는 수치이다. 재정건전성이 지켜지지 않으면 ‘세대 간(間) 전쟁’이 촉발될 수도 있다. 재정규율도입이 절실한 이유이다.

전례 없는 ‘케인즈주의 성공’이 한국에서 목도되고 있다. 자유주의 철학자 미제스는 “케인즈주의가 풍미한 것은 ‘적자지출’ 정책에 대한 확실한 정당성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그 이전 세대들이 축적한 자본을 낭비하는 것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사이비 철학”이라고 설파했다. 머리 위를 배회하는 ‘케인즈 유령’을 걷어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