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가격으로 말하는 시장이 가장 효율적 제도이다

조성봉 숭실대 교수(경제학)
입력일 2020-09-07 11:04 수정일 2020-09-07 11:05 발행일 2020-09-07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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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 소비를 중심으로
조성봉
조성봉 숭실대 교수(경제학)

시장 거래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소비자와 공급자가 선택한다. 상품에 대한 기본적 약속만 지키면 책임도 자신이 진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변화가 자유롭게 반영된다.

원유가격이 등락하면 휘발유 가격도 오르락내리락 한다. 자원배분도 이에 따라 효율적으로 이뤄진다. 기름 값이 오르면 소형 자동차가 유행하고 기름값이 내리면 좀 더 편안하고 큰 차가 팔린다. 이래라저래라 명령하고 훈계할 필요가 없다. 알아서 한다. 그래서 군말이 별로 없다. 메시지가 줄어든다.

기업과 같이 경제주체 스스로 시장 대신 조직을 선택하는 경우는 비효율성이 크지 않다. 시장에서의 거래비용이 낮아지면 기업은 수익성을 위해 언제든지 조직을 벗어나서 시장으로 뛰어든다.

문제는 시장의 결과를 정부가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규제하는 경우이다. 가격이 높다고 상한을 정하게 되면 초과수요가 나타나 상품이 모자라는데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배급, 할당, 우선순위 책정 등 조직과 행정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가격이 낮다고 하한을 정하는 경우에는 결국 물건이 남아서 정부미처럼 정부가 국민들 세금으로 이를 사서 창고에 쌓아 놓던지 사기 싫은 사람들에게 억지로 떠안기든지 해야 한다. 이 또한 많은 자원이 추가로 들어가는 일이다. 정부 나름대로는 자원을 아낀다고 하는 일이지만 결국 인적·물적 자원을 더 많이 쓰게 된다. 게다가 이렇게 만들어진 조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에너지 산업에서 이러한 문제점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오일쇼크 때 유가가 급등하고 모든 에너지 가격이 따라서 올라가자 정부는 그 충격을 완화하려고 ‘에너지이용합리화법’을 제정하게 된다. 당시 수출산업 등 꼭 필요한 부분에만 석유 등 모자라는 에너지를 할당하면서 에너지 소비를 절약하려 했다.

그런데 이 법은 정부의 행정조직과 함께 여러 공공기관 그리고 에너지소비를 절약하고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한 부차적인 조직을 연쇄적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에너지절약을 위한 시설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금융·세제상의 지원을 시행하고,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에너지사용 기자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효율관리 기자재’를 지정하였고 이에 대한 사후관리도 시작하였다.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해 평균에너지 소비효율을 고시하였고 이에 못 미치는 기자재에 대해서는 효율의 개선을 명하도록 하였다. 또한 고효율 에너지 기자재를 인증하였고 이를 위해 시험기관에서 측정하도록 하였다.

한편, 에너지절약을 사업으로 하는 에너지절약 전문기업에 대한 등록기준을 만들었으며 에너지 사용량이 높은 사업자를 에너지다소비 사업자라 하여 이들이 에너지사용량을 시·도지사에게 신고하게끔 하였다. 그리고 에너지다소비 사업자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준을 별도로 정하였으며 에너지사용을 진단하는 진단기관에 대한 지정제도를 만들게 되었다.

에너지이용합리화법은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에너지소비를 규제하였다. 이를 위해 등록, 관리, 지정, 신고, 양성, 진단, 명령, 설정, 조치, 요청, 검사, 선임, 자격 부여, 사후관리, 인증, 표시, 지원 등 다양한 ‘조직적’ 행정수단을 정부는 동원하였다.

에너지의 95% 이상을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이처럼 지금까지 수많은 에너지절약 조치를 시행하였다. 중화학공업과 에너지다소비 업종이 많은 우리의 산업구조 상 수출경쟁력을 위하여 또 소비자를 위하여 전기요금과 같은 에너지가격을 그동안 낮게 유지하여 왔다.

그러면서도 에너지를 아껴 써야 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면서 많은 행정력과 조직을 동원하였다. 1·2차 오일쇼크를 겪었던 필자는 중고등학교 미술시간과 방학숙제로 그렸던 에너지절약 포스터도 적지 않았으며 에너지 아껴 쓰기 표어도 몇 개씩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에너지절약과 효율 개선 노력은 성공하였을까? 정반대다. 한국은 에너지를 가장 비효율적으로 쓰는 나라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효율은 OECD 35개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1차 에너지 소비량으로 정의되는 ‘에너지 원단위’도 OECD 평균보다 50%가량 높다. 겨울철에도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안에서 거의 속옷 바람으로 지낸다. 미국 등 선진국은 겨울철에 은 집 안에서 두터운 쉐터를 입고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오히려 에너지 가격을 정상화하고 높게 유지하였더라면 에너지는 더욱 절약되었을 것이고 효율은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에너지효율화 기기가 발붙일 틈이 없다. 건물이나 공장에서 이를 사용할 인센티브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높은 에너지 가격 때문에 건물 자동화로 자동 컴퓨터 시스템과 센서로 사람들이 출퇴근할 때 조명과 냉난방이 자동 조절되는 설비가 많이 팔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그 기능이 좋아도 잘 보급되지 않는다. 에너지 가격이 싸니까 이런 설비에 돈을 투자하기가 아까운 것이다.

수십년째 우리나라가 제조업 중심의 에너지다소비 구조를 못 벗어나는 이유는 에너지다소비 업종이 많다는 이유로 에너지가격의 현실화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에너지다소비 업종이 점점 더 많아지는 구조이다.

해외 유수의 IT업체에서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데이터센터를 우리나라로 배치하고, 그래픽 카드 끼운 전기 잡아먹는 PC로 비트코인 ‘채굴’하는 사업이 번창했던 것도 바로 전기요금이 쌌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 가격이 주는 시그널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였더라면 우리 에너지소비는 훨씬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며 에너지 관련 정부 및 공공조직은 훨씬 더 슬림하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국민들이 내는 세금, 부과금과 에너지에 대한 지출도 훨씬 절약되었을 것이다. 뿜어 나오는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도 훨씬 더 줄어들었을 것이다. 가격으로 말하는 시장이 가장 효율적인 제도이다.

조성봉 숭실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