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기술과 네트워크 중심의 기업지배구조규제로 전환해야

전삼현 숭실대 교수(법학)
입력일 2020-08-17 09:20 수정일 2020-08-17 09:22 발행일 2020-08-17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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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현 숭실대 교수(법학)

전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시장재편의 파도에 직면해 있다. 특히, 인공지능·빅데이터·사물인터넷 등의 기술이 등장하면서 전 세계는 초연결사회로 진입했고 이 생태계에서는 사람(자연인, 법인)보다는 기술과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기업지배구조 규제는 기술이나 네트워크가 아닌 사람 중심의 법제도화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어서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사람 (개인 대주주, 지배회사)을 중심으로 법률로 정부가 기업지배구조를 강제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 대표적인 법률이 바로 상법과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공정거래법 등이다.

4차 산업혁명이란 산업간 융합을 통한 신산업인 AI, 로봇, 바이오, O2O (Online to Offline), P2P (Peer to Peer)를 통한 산업분야의 혁명을 의미한다. 즉, 기술과 네트워크가 시장과 기업을 지배하는 세상이 이미 도래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기업지배구조 관련해 두가지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첫째는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산업별로 칸막이식 사전규제를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지분소유율을 중심으로 대주주를 견제하는데 필요한 사전규제식 기업지배구조를 법제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고도의 신기술을 가지고 산업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4차 산업형 기업들이 우리 시장에서 새롭게 탄생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국내의 기존 기업들이 4차산업 기업으로 사업재편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우선, 현행법상 기업지배구조는 제조업과 서비스업 분야를 중심으로 각각 독립적으로 별개의 규제법으로 탄생 및 운용되어 왔다. 이는 1차, 2차, 3차 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이 산업간 융합을 통한 신기술 기반의 신산업으로 전환하는 것 자체가 다중 규제의 그물에 갖혀 실현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비교법적으로도 우리나라는 포지티브 (positive) 규제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서 네거티브 (negative)규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 등 선진국들과 비교해 볼 때 융합형 신산업이 탄생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시대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현행 기업지배구조법제에 대한 전면적 개편이 시급한 것이다.

미래에는 소유경제가 아닌 공유경제가 초연결사회(超連結社會, hyper-connected society)에 진입한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결합한 클라우드 기반의 공유경제가 세계경제의 주요 트랜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업지배구조 역시 소유형 지배구조에서 공유형 지배구조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소유집중 억제 중심적 기업지배구조 규제로부터 공유경제에 적합한 규제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즉, 최대주주가 독단적으로 경영하여 오너리스크를 유발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하여 법률로 지배구조를 규제하기보다는 기술과 네트워크가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이를 기반으로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규제법제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금융산업에 대한 기업지배구조규제가 엄격해 국내 금융사들이 4차산업혁명의 파고를 잘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 수년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와 관련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중계자 (TTP: Trusted Third Parties), 대표적으로 정부 및 대형 금융회사들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면서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 등장했다. 비트코인의 등장은 탈중앙화 (decentralization)에 대한 논의에 기름을 부은 효과를 가져 왔다.

탈중앙화란 모호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어떤 네트워크 내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사실과 의사결정에 관련된 합의를 중앙의 권위있는 집단으로부터 네트워크 내 다수에게 분산시키거나 위임하는 프로세스”라고 일반적으로 정의되고 있다. 즉, 대형컴퓨터를 소유하면서 거래의 중개자 또는 수임자로 역할하는 주체 (TTP: Trusted Third Parties)들이 권력화되면서 거래참여자들의 의사나 이해관계가 배제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체제의 수립을 위한 시도인 것이다.

물론, 탈중앙화가 기존질서 및 가치와 충돌되는 점이 많고 기술적 범용성의 한계가 노출되면서 최근에는 TTP와 탈중앙간의 조화를 유도하는 결합형 기술 (스테이블코인, 프라이빗 블록체인, CBDC) 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탈중앙화가 퍼블릭 블록체인 (public block chain)생태계에서 가치가 인정되고 기술적 진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입법정책 분야에서 이를 전면적으로 배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탈중앙화된 네트워크 상에서는 기업의 대주주가 누구이며, 해당 기업이 수직적 계열화 내지는 수평적 결합을 통해 기업지배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블록체인 생태계 내에서는 지분소유 중심의 기업지배구조는 그 의미가 희석되고 오히려 블록체인 기술과 네트워크상의 참여기업들간의 상호작용 중심의 지배구조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상법상의 기업지배구조 규제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상법상 투자 및 거래 관련 사전규제, 즉 사람 중심의 기업지배구조 규제가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해서 국내 기업들의 사업재편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대주주 및 주요주주를 중심으로 이사회 구성 및 의결권 제한에 관한 법적 규제들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해야 우리나라가 4차산업혁명의 승자가 될 수 있다.

금융회사의 기업지배구조 규제와 관련해서는 관치금융의 잔재인 금융회사의 주식소유제한, 금융회사 대주주의 정부 승인 및 적격성 심사, 금융회사 이사회 구성 및 감사선임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가하고 있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을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상의 기업지배구조규제와 관련해서는 지주회사의 지분소유규제와 기업결합심사를 통한 시장지배력 점유율 규제를 동시에 실시하는 경우 사실상 국내시장에서 기술 및 네트워크 기반의 4차 산업형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탄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내기업들이 사람 중심이 아닌 기술과 네트워크 중심의 사업으로 신속하게 재편할 수 있도록 기업지배구조관련 법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