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사이드] ‘잃어버린 얼굴 1895’ 차지연 “연기 잘하는, 멋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07-03 21:30 수정일 2020-07-03 21:53 발행일 2020-07-03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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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연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명성황후 역의 차지연(사진제공=서울예술단)

“공연으로 (배우생활을) 시작하길 잘했다 싶어요. 온라인 공연마저도 긴장이 되더라고요. 라이브로 부딪혀 그날그날 감정에 따라 바뀌는 편인데 제3의 무언가가 찍고 있다는 생각에 옭아매는 듯한 심적 부담감이 있거든요.”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7월 8~2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개막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에 한창인 차지연은 무대가 아닌 TV 드라마, 영화 등의 연기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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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차지연(사진제공=서울예술단)

“카메라 앞에서 어떤 연기를 해야 하고 무대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복면가왕’은 가면이 있어서 그나마 적응했지만 영화는 너무 후회가 돼요. 좀 더 무대에서 다져지고 테크닉적인 부분을 알고서 만났더라면 훨씬 재밌게, 무대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듯 했을 텐데…모든 장면을 얼음 상태로 있었어요.”

그리곤 “환경이 달라서 영화 촬영 기간이 너무 두려웠다”며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용어도 처음 듣고 아무 것도 안잡힌 상태에서 저는 계속 뭘 하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뮤지컬을 계속 하고 있었고 예정된 작품도 있던 상태에서 짬을 내 출연하다 보니 버거웠어요. 다시 한번 TV드라마든, 영화든 만난다면 무대를 대하듯, 탄탄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싶어요. 덜 긴장하고 덜 초보 같은 모습으로요.”

이어 차지연은 “연기에 대한 욕심이 아직도 크다”며 “더 나이가 들 때까지도 계속 깨우치고 노력하고 연구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 연기”라고 말을 보탰다.

 

“노래. 발성, 발음 등도 늘 다시 가다듬고 체크하고 뒤돌아봐야하지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남고 싶은 소망이 커요. 연기가 너무 재밌거든요. 잘해서가 아니라 늘 부족하지만 그 인물에 가깝게 다가가게끔 연구하는 과정이, 정답도 없이 알 수 없는 데서 저만의 것을 찾아내는 여정이 너무 재밌어요. 얼마나 고민하고 씨름했느냐에 따라 차지연의 색이 만들어지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라운드’(Grounded)에도 도전장을 던졌죠.”◇두려웠지만 행복했던 모노극 ‘그라운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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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극 ‘그라운디드’의 차지연(사진제공=우란문화재단)

“연극 ‘그라운디드’를 만났을 때 그 동안 했던 뮤지컬 작업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리고 ‘잃어버린 얼굴 1895’를 다시 만나면서는 ‘그라운디드’ 때 배우고 찾아낸 것들의 도움을 받고 있죠. 두 작품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달까요.”

차지연은 지난 5월 모노극 ‘그라운디드’로 2010년 ‘엄마를 부탁해’ 이후 10년만에 연극 무대에 올랐다. 2013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그라운디드’는 미국 극작가 조지 브랜트(George Brant)의 모노극으로 뮤지컬 ‘라이온 킹’의 연출이자 의상 디자이너, 마스크·퍼펫 공동 디자이너인 줄리 테이머 연출작이다.

2015년 할리우드의 유명배우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가 출연했던 작품으로 에이스 전투기 조종사가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라스베이거스 크리치 공군기지의 군용 드론 조종 임무를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2013년 초연돼 19개국에서 12개 언어로 140여개의 프로덕션이 무대에 올랐던 작품의 한국 초연을 차지연은 오롯이 혼자서 감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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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초 제2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차지연은 축하무대로 ‘헤드윅’의 ‘미드나이트 라디오’(Midnight Radio)를 선사했다(사진=브릿지경제DB, 한국뮤지컬어워즈 제공)

2월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콘서트’, 뮤지컬 앙상블 배우들의 주연급 도전 경연 프로그램 tvN ‘더블캐스팅’ 멘토로 출연했던 그의 정식 무대 복귀작이었다.

겁 많은 그에게 1년여만의 복귀작이자 10년만의 연극, 게다가 혼자서 이끌어 가야하는 모노극이 쉬울 리 만무였다다.

“두려웠죠. 한번도 해본 적이 있는 모노극을, 노래와 멜로디를 없앤 상태에서 대사로만 1시간 반을 해내야 했으니까요. 평가 이전에 혼자 설 수 있을까 겁도 났죠.”

그런 그를 이끈 이는 ‘그라운디드’의 오경택 연출이었다. 차지연은 “작품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우면서 재밌었다”며 “뮤지컬도 좀 다른 고민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처음엔 두려웠지만 재밌고 행복하게 작업했어요. 배우로서 고민 지점이 라이선스, 창작 등 작품에서 어떤 인물을 만나든 제가 많이 입혀져 있다는 거였어요. 제 색을 입혀 차지연화된 인물로 비춰지는 게 좋은 건지 저의 색을 없애고 새 인물로 확확 변하는 게 나은지가 늘 고민이었죠.”이어 “연기 톤, 애티튜드, 몸에서 나오는 태, 기운 등 마주하는 작품들, 인물들마다 제 색을 입히면서도 변화를 주기 위해, 똑같은 인물로 보이지 않도록 저 나름대론 노력해 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래서 동서양, 중성적인 캐릭터와 여성스러운 인물 등 상반되는 캐릭터를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외형적으로도 중성적이거나 성이 없는 역할, 남성이 가진 힘과 여성의 섬세함이 합쳐졌을 때 시너지가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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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연은 '광화문연가'에서 시간여행 안내자 월하를 정성화와 번갈아 연기하며 젠더프리의 길을 열었다(사진=브리지경제DB, CJ ENM 제공)

그의 말처럼 차지연은 ‘광화문연가’의 시간여행 안내자 월하, ‘더데빌’의 선악을 상징하는 X블랙, X화이트 등으로 젠더프리(성이 없는)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트랜스젠더 록 밴드 보컬의 일대기를 다룬 ‘헤드윅’이 시즌을 거듭할 때마다 캐스팅 일순위로 이름을 올리는 배우이기도 하다.

“하나의 이슈보다는 배우로서 드라마를 만나고 싶어요. 젠더프리를 할 수 있는 역할도 계속 도전하고 싶고…진부하거나 지루한 배우가 되지 않으려고 항상 애쓰고 있죠. 연기를 더 파고들고 싶은 이유기도 해요. 기회가 된다면 좋은 연극도 병행하고 싶어요. 물론 또 깨지겠죠. 하지만 부딪히면서 또 배우고 싶어요. 다양한 작업은 두렵지만 깨뜨리면서 오는 희열이 엄청나요. 깊이도 생기고 저의 스펙트럼도 넓힐 수 있는 동시에 점점 더 재밌고 흥미로운 배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의심병’은 나의 힘! 무대에서 살아 숨 쉬는 멋진 배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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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멋진 배우’를 꿈꾸는 차지연(사진제공=서울예술단)
“(2월에 있었던) 뮤지컬 ‘지저스크라이스트수퍼스타’ 콘서트에서 유다를 하면서도 괴로웠어요. 양먼성을 가진 인물이라 하고는 싶은데 맡겨지면 저만의 색을 어떻게 입힐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고민이 많았죠. 이틀이나 잠을 못자고 고민하니까 이지나 연출님이 등짝을 때리시면서 ‘왜 그렇게 너 자신을 못믿냐’고 하셨어요.”

차지연은 “스스로를 못 믿고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네가 뭘 할 줄 알아’라고 자학하는 스타일”이라며 “그래선지 나태해지지는 않는다”고 말을 보탰다.

“자신감이나 자존감도 중요하지만 너무 자신만만하거나 ‘잃어버린 얼굴 1895’은 벌써 세 번씩이나 만났는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무대에서 배우로서 생명력을 잃는 것 같아요. 박수는 받겠지만 스스로 거짓말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관객분들께도 너무 죄송한 일이죠. 스스로 믿지 못하는 의심병은 괴롭죠. 하지만 한 작품, 한 작품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건 확실해요.”

이어 그는 “함께 무대에 오르는, 언젠가 제 포지션이 꿈인 친구들에게 안일한 모습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며 “일일이 챙기거나 밥은 못 사줘도 무대가 소중하고 감사한 곳이라는 걸 같이 느끼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연습을 할 때도 다 저를 보고 있잖아요. 그래서 늘 고민하는 모습으로, 함께 더 새롭고 좋은 걸 찾아가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그래야 더 좋은 배우가 생겨나고 무대의 질도, 컨디션도 좋아지죠. 그렇게 후배들과 같이 멋있게 늙어가고 싶어요. ‘예쁘다’는 말은 잘 안 믿지만 ‘멋있다’는 말은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후지지(?) 않게, 세련되고 아름답게 흔들리지 않고 저만의 길을 묵묵하게 걸으면서 스스로 더 멋있게 해보려고 노력 중이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