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뮤지컬 ‘마리 퀴리’ 리사 “마리 스클로드프스카, 안느 코발스키…그 이름값의 특별함”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03-16 17:00 수정일 2020-03-16 17:00 발행일 2020-03-17 11면
인쇄아이콘
[人더컬처]
뮤지컬 '마리 퀴리'
뮤지컬 ‘마리 퀴리’ 리사(사진제공=라이브)

“뮤지컬 ‘마리 퀴리’에서 이름이 갖는 의미는 정말 특별한 것 같아요. 특히 마리와 안느는 둘 다 여자였고 폴란드인이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었거든요.”

뮤지컬 ‘마리 퀴리’(3월 2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로 분하고 있는 리사는 “이름이 갖는 특별한 의미”에 대해 털어놓았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두 번의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김소향·리사·정인지,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의 삶을 다루는 작품으로 뮤지컬 ‘리지’ ‘팬레터’ ‘신과함께-이승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연극 ‘히스토리보이즈’ ‘오펀스’ 등의 김태형 연출작이다.

SHAO뮤지컬 '마리 퀴리' 마리 역 리사_제공 라이브(주) (2)
뮤지컬 ‘마리 퀴리’ 리사(사진제공=라이브)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는 ‘신진 스토리 작가 육성 프로그램’의 일환인 2017년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2 선정작이자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초연된 후 두 번째 시즌을 맞는다. 김태형 연출을 비롯해 뮤지컬 ‘셜록 홈즈’ 시리즈, ‘곤 투모로우’ ‘서울의 달’ 등의 최종윤 작곡가, 뮤지컬 ‘귀환’ ‘그날들’ ‘그리스’ ‘랭보’ ‘모래시계’ 등의 신선호 안무가가 새로 합류했다. 

마리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다소 늦은 나이에 소르본대학에 입학하며 ‘과학자’라는 꿈을 안고 파리로 향했다. 안느 코발스키(김히어라·이봄소리) 역시 “폴란드에서 성공하는 길은 농장주의 세 번째 부인이 되는 것 말고는 없다”는 현실에서 꿈을 안고 파리로 향했다. 당시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못하고 남자의 소유물쯤으로 여겨지며 차별받던 ‘여자’였고 러시아 식민지였던 폴란드 ‘이민자’였던 마리와 안느는 쉽지 않을 꿈을 안고 향하던 파리 행 기차에서 만났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마리는 원소주기율표의 빈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꿈을 꾸었고 안느는 마리의 꿈이 꼭 이뤄지기를 바라면서 약속을 하죠. 뮤지컬 ‘마리 퀴리’를 통해 느낀 바가 있어요. 한 사람이 이름을 남기겠다는 목표를 위해 살지는 않아요. 명예나 성공 등 세상의 잣대나 기준 보다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소명에 최선을 다 했을 때, 그때 그 사람의 삶이 ‘이름’이라는 형태로 남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패는 해도 포기는 없다” 마리 스클로드프스카 퀴리의 이름값

MariQLisa0000
뮤지컬 ‘마리 퀴리’ 리사(사진제공=라이브)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어요. 마리는 그 식민지의 여자였고 과학자였죠. 너무 힘들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라듐을 발견하고 기뻐했지만 유해성을 알게 되면서 오는 책임감, 무게 등을 감당하는 장면들, 그것들을 뚫고 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들이 보여져요.”

리사의 설명처럼 뮤지컬 ‘마리 퀴리’는 유익성과 유해성이 충돌하는 라듐의 발견을 두고 마리를 비롯해 폴란드 출신의 라듐시계공장 언다크 직공 안느, 마리의 동료 과학자이자 남편 피에르(김지휘·임별), 언다크의 사장 루벤(김찬호·양승리) 등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갈등하고 고뇌한다.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 어려운 과학용어, 외워야할 공식들 등이 너무 많았거든요. 단지 흉내만 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발견한 것에 대해 책임지려는 마리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포기하면 안되겠구나 다짐했죠.”

그의 고백처럼 “처음으로 굉장히, 너무 잘하고 싶은” 마리는 극을 준비하고 무대에 오르는 지금까지도 “늘 긍정적인 마인드와 넘치는 파이팅으로 사람들을 토닥이곤 하던” 리사에게 눈물의 연속인 날들을 선사했다.

“이번엔 ‘진짜’가 되고 싶었어요. 마리의 고통, 기쁨, 고민 등을 차곡차곡 쌓아 완성시키기 위해서 정말 공부를 많이 했죠.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여자로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에게 과학은 어떤 존재였는지, 피에르와의 결혼 당시의 분위기, 딸들과의 관계….”

절판된 책부터 일러스트레이트를 곁들인 프랑스 그림책, 해외 유튜브, 다큐멘터리, 자료사진, 안느 등 언다크 직공들의 바탕이 된 미국의 라듐걸스, 당시 라듐에 열광하던 사람들과 출시됐던 제품들 등을 끊임없이 찾아보며 탐구했다.

“환자 중 (눈이 보이지 않는) 루이스가 마리에게 하는 ‘실패는 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붙들었어요. 그 말이 마리한테 다시 ‘할 수 있다’는 계기가 됐듯 저에게도 그랬거든요. (코로나19로) 지금은 너무 힘든 시기잖아요. 마리나 저를 보면서 안정과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절제된 마리, 멋지지만 짠한
뮤지컬 마리 퀴리 리사5
뮤지컬 ‘마리 퀴리’ 리사(사진제공=라이브)

“식민지인 폴란드인이니까, 여자니까 등 다양한 이유로 조용히 살아야 한다고 주입받았을 마리는 감정을 다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예요. 절제가 몸에 밴 사람이고 감정 표현도 무게가 느껴지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자신이 표현하는 마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리사는 “연습 때 딱딱하고 완벽한 사람으로 해보기도 했다”며 “하지만 누구보다 뛰어났고 똑똑했지만 폴란드인이고 여자여서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MarlQuUntitled-6
뮤지컬 ‘마리 퀴리’ 리사(사진제공=라이브)

“연습을 하다 보니 ‘마리는 정말 완성된 사람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청난 돌들을 깨서 집요하게 끓이고 녹이고 먹고…라듐, 폴로늄을 찾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마리가 66세까지 살았는데 늘 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밥도 제대로 안먹어서 영양실조였다고 하더라고요. 그의 집요함이 멋지기도 하지만 안타깝고 짠하기도 해요.”

그리곤 “그 과정이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완성되지 않은 사람이었겠구나’라고 느껴졌다”며 “젊어서는 열정이 넘쳐 새로운 원소를 찾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모르다가 유해성을 알게 되면서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마리는 인류를 위한 발견이 우주 최고라고 생각하는, 너무 순수하고 좋은 과학자잖아요. 유해성을 알고 책임감과 무게, 해결 못하면 큰일 난다는 고통을 안고 연구를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마리를 짓누르는 ‘폴란드인’ ‘여자’라는 핸디캡과 인류를 위해 반드시 유해성을 해결해야한다는 책임감의 무게, 그로 인한 절제된 표현이 흔들리는 순간에 대해 리사는 “남편 피에르의 죽음”이라고 털어놓았다.

마리가 라듐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임상실험에 집중하는 동안 피에르는 라듐의 유해성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다리에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 실험을 다리를 못쓰게 되는 지경에 이른 피에르는 달려오는 마차를 피하지 못해 죽음을 맞는다.

“세상의 모든 편견, 벽을 뚫고 잘해낼 거라고, 할 수 있다고 늘 참고 절제하는 마리지만 피에르가 죽었을 때는 흔들리고 무너졌을 것 같아요. 그때는 오열하면서 감정을 다 토해내죠. 다만 마리가 너무 약해보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 순간에도 실험일지를 들고 피에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검을 결정하잖아요. 사실 저는 상상이 안돼요. 남편의 죽음 앞에서 무너지려다가 다시 굳건하게 일어나 업적과 약속을 위해,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부검을 한다는 게…그리고 또 다짐하죠. 나는 살아 있으니 끝까지 싸우겠다고.”

◇라듐, 또 다른 마리의 이름? 스스로 빛나는 별

뮤지컬 마리 퀴리 리사1
뮤지컬 ‘마리 퀴리’ 리사(사진제공=라이브)

“라듐은 마리에게, 위해성을 처음 알고 부르는 1막 마지막 넘버 ‘또 다른 이름’인 것 같아요. 스스로 에너지를 폭발시켜 빛나는 나(마리) 같기도 하고…점점 더 마리가 이해돼요. 마지막 공연할 때는 어떻게 돼 있을지 저 스스로도 궁금할 정도죠.”

그리곤 “안느는 원소주기율표에 이름을 적어 넣는 꿈을 응원해준 친구였다. 그 친구가 제(마리) 소개로 언다크에서 열심히 라듐시계를 만들면서 붓을 빨았고 직공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땠을까 싶다”며 “마리가 했을 결정의 무거움”에 대해 언급했다.

“또 한편으로는 눈 뜨기를 기다리는 루이스가 있잖아요. 루이스가 라듐으로 인해 눈을 뜬다면 죽어가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죠. 그런데 한쪽에서는 라듐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요. 그 가운데서 거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마리는 말로 할 수 정도의 괴로움을 느꼈을 거예요.”

이어 “라듐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마리는 라듐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고 나쁜 거라고 점 찍히면 자신도 없어진다고 느꼈을 테고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마리를 일깨운 이 역시 안느였다.

“안느도 마리가 라듐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을 거예요. 그런 안느에게 속내를 고백하고 그 유해성을 해결하겠다고 하죠. 안느와의 연대, 남편 피에르의 죽음 등으로 깨달음을 얻은 마리는 마지막까지도 많은 연구를 했어요. 그럼에도 결국 다 찾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그 분야는 여전히 연구 중이니 죽기 직전까지 마리의 책임감과 무게가 얼마나 컸을까 싶어요.”

안느는 파리행 기차에서 처음 만나 마리가 직접 그린 원소주기율표를 건네받고 고향 폴란드의 ‘길잡이흙’을 선물했다. 그리고 “넌 폴란드의 별, 나의 별”이라며 마리의 꿈에 응원을 보냈다.

뮤지컬 마리 퀴리 리사
뮤지컬 ‘마리 퀴리’ 중 파리행 기차에서 처음 만나는 마리 역의 리사(왼쪽)와 안느 이봄소리(사진제공=라이브)

“안느 길잡이흙은 폴란드인으로서 나라를 잊지 않기 위한 부적처럼 소중한 거예요. 같은 여자이고 폴란드인이지만 자신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 엄청난 걸 해낼 것이라고 믿는 마리에게 그 소중한 길잡이흙을 주죠. 안느의 폴란드를 준 거예요. 그걸 아는 마리에게 안느와의 약속은 중요할 수밖에 없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쓰며 성과도 내지만 실수도 하고 반성도 하는 마리를 일깨우는 이도, 채 다 찾지 못한 채 죽음을 앞둔 마리에게 그가 한 일을 하나하나 짚어주며 위안을 건네는 이도 안느다.

“패배감을 느끼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최선을 다한 죽음이죠. 평생 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짚어주는 안느가 있어서 마리의 마지막이 너무 감격스러워요. 조금은 위안이 되고 위로를 받으며 내 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랄까요. 마리는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함으로서 원소주기율표의 빈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어요. 그렇게 안느와의 약속을 지키죠. 그렇게 주기율표는 마리에게 내 자리를 찾아가는 지도 같아요.

◇내 삶의 마리 같던 순간들 그리고 ‘연대’가 주는 위안

뮤지컬 마리 퀴리 리사
뮤지컬 ‘마리 퀴리’ 리사(사진제공=마지끄)

“폴란드 사람들도 우리나라랑 비슷해요. 오래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 보니 한(恨)도, 정(情)도 많죠. 유럽 국가 중에서도 유난히 예의를 중시 여기고 뭉치기도 잘 뭉쳐요. 그래선지 자기 마음대로 표현하면 안되는 분위기죠. 마리 역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여기저기 살면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좀 힘들 때도 있었죠. 그때 (유럽에서는) 한국이 뭔지도 몰랐고 얕잡아 보곤 했거든요.”

리사 역시 어린시절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폴란드의 바르샤바를 비롯한 독일, 스웨덴 등 다양한 나라, 도시에서 살았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리사는 “폴란드 사람이고 여자인 마리가 당했을 차별이나 고통에는 비교도 안되지만 내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에 눌렸던 느낌이 뭔지 저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모님은 외국인이니까 절제해야 하고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한국 망신을 시키면 안되니 더 똑똑해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런 부분에서는 마리랑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그리곤 ‘연대’의 힘에 대해 전하기도 했다. “라듐이 곧 또 다른 나”라고 여기며 라듐 자체를, 그것으로 얻은 기회를 지키려 무던히도 애를 쓰는 마리와 “넌 라듐이 아닌 너야” “너 자체로 빛나는 별”이라고 끊임없이 말해주는 안느는 마지막까지 연대하며 ‘이름값’에 대한 가치를 높인다.

“그 시대 여자들 뿐 아니라 지금도 어쩔 수 없이 힘든 점들이 많아요. 그걸 이겨내는 가장 큰 힘은 ‘연대’인 것 같아요. 꼭 여자들 뿐 아니라 (차별 받고 소외받는 모든) 사람들의 연대는 힘을 발휘하거든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