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마쓰시타 고노스케 > 송희영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20-02-01 07:00 수정일 2020-05-29 11:20 발행일 2020-01-30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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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평 >

저자는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국내에서 손 꼽히는 마쓰시타 전문가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던 인물이다. 기업에게는 이윤도 중요하지만, 사회공헌을 통한 좋은 평가가 더 중요하다는 독특한 경영론을 실천한 경영인이다. “학교 보다는 시장에서 배워라”며 오사카 센바 시장으로 등을 떠민 아버지, 그곳에서 만난 밑바닥 경영론의 인생 멘토들 덕분에 그는 기업인으로서의 자세, 국가와 사회에 대한 남다른 애정, 친족 경영에 연연하지 않는 후대에 남을 경영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 ‘경영의 신’ 마쓰시타

*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불황론 - “호황도 좋지만 불황은 더 좋은 기회다.” 그는 실제로 경기 사이클에 상관없이 흑자 경영에 성공한 경영인이다.

* 일본 기업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경영자 - 아사히신문이 2000년 밀레니엄 특집에서 국민들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그는 지난 1000년 동안 일본 기업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 1위에 선정되었다. 

* 농업시대 루저가 제조업시대 영웅으로 - 마쓰시타는 저학력에 허약체질, 가난 등 인생의 3대 악재를 타고났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일본 경영계의 영웅으로 변신했다.

* ‘1인 1업’ 정신 지킨 마쓰시타 - 미쓰비씨 미쓰이 스미토모 같은 큰 재벌들은 수백년 걸쳐 그룹을 키웠다. 권력과의 밀접한 연결고리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마쓰시타는 당대 혼자 힘으로 글로벌 기업의 지위를 성취했다. 권력과 거리를 두면서 전기전자 분야 사업에 골몰했다.

* “한 마디로 말하면 무슨 뜻인가?” - 마쓰시타가 가장 자주 썼던 질문이다. 그는 대화 도중 다리를 꼬거나 팔짱을 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남의 말을 가로채거나 중도에 자르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경청의 달인이었다.

◇ 마쓰시타를 키운 경영·인생 멘토들

* 상·중·하 장사꾼론 - 마쓰시타의 두번째 직장인 고다이자전거점이었다. 이곳의 주인은 마쓰시타의 뺨을 세번이나 때렸을 정도로 사업 부문에선 엄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단골 고객 집을 향해선 함부로 발을 뻗고 자선 안된다”며 장사꾼의 자세를 가르쳤다. 이를 배운 마쓰시타는 “돈을 남기려는 장사꾼은 하급이고, 가게를 남기려는 장사꾼은 중급, 그리고 단골 고객을 남기려는 장사꾼이야말로 진짜 상급”이라고 강조한다. 사업이란 회사와 고객 뿐아니라 사회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 오사카 센바 상인 - 센바는 오사카성 서쪽 번화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배하던 시절부터 일본 상업과 교역의 최고 중심지였다. 운하가 있어 역사적으로 교통요지다. 오사카의 중심이자 일본 경제의 축소판이다. 센바에서 시업을 시작했다면 장사꾼으로서 내공이 단단할 것이라 인정받을 정도다. 어느 상점에서 일을 배웠느냐 물어 상대방 인맥과 사업 분야를 파악했다고 한다. 사회의 평판을 중시했다. 마쓰시타도 “사업의 기본은 ‘센바대학’에서 다 배웠다”고 말할 정도다.

* 도리이의 ‘산토리 정신’ - 산토리 위스키를 창업한 도리이 신지로도 마쓰시타와 같은 시기에 센바에서 말단 점원 생활을 했다. 월반으로 초등학교를 마치고 오사카상고를 졸업한 재원임에도 대학 진학 대신 사업을 배웠다. 일단 저질러 보자는 것이 산토리의 도전 정신이다. “성공의 비결은 간단하다. 성공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것이다.” 

◇ 마쓰시타와 그 가족들

* 마쓰시타의 ‘야마기’ - 마쓰시타를 사업가의 길로 이끈 이는 아버지다. 학교 가기를 희망 하는 마쓰시타에게 “학교는 이제와서 더 다닐 필요가 없다. 네가 출세하면 이름있는 학교를 졸업한 훌륭한 사람을 데려다 쓸 수 있다”며 반드시 센바에서 장사를 배워 출세하라 독려했다. 와타나베 쇼이치 교수는 “아버지가 고노스케에게 물려준 유산 가운데 큰 것이 배포있게 일을 저지르는 기질”이라고 평가했다. 이를 일본어로는 야마기(山氣)라고 한다. 모험을 두려워 않는 야성미를 의미한다.

* 가문 승계 포기한 마쓰시타 - 경영 후계구도를 둘러싼 내부 갈등을 겪다 결국 창업자 가문 대물림을 포기했다. 마쓰시타의 큰 손자 마사유키는 19년 동안 그룹 부회장 명함 갖고 있었다. 하지만 명예직일 뿐 투자 결정이나 인사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2019년 6월에는 특별고문으로 사실상 일선에서 은퇴했다.

* 스피드광 둘째 손자 히로유키 - ‘카 레이서 히로’로 잘 알려진 마쓰시타 히로유키는 고베에 드론 벤처기업 스위프트XI를 설립했다. 15세부터 카 레이서에 입문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캘리포니아에 경주용 차를 전문 개발 제조하는 회사를 만들어 4인조 경량 제트 항공기 제조 등에서 성과를 냈다. 무인항공기 개발해 노드롭항공사에 사용권을 매각하기도 했다. 

* 마쓰시타의 가족주의 - 마쓰시타의 두번째 직장이 고다이자전거점이었다. 오너가 가족을 아끼면 충성심이 높아진다는 것을 이 곳에서 배웠다. 주인 부부의 종업원 사랑을 직접 보고 배웠다.

◇ 마쓰시타 경영론

* 기업이익 환원론- 마쓰시타는 “기업의 이익이란 회사가 사회에 공헌하고서 사회로부터 받은 사례금”이라고 규정했다. 기업이 사회 번영을 위해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하면, 그 보상으로 받는 대가가 기업 이윤이라는 논리다. 사랑받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 대단한 저술자 마쓰시타 - 단독으로 집필한 저서가 59권이다. 대담집이 10권, 연설집 19권, 공저가 20권에 이른다, 편저 45권, 발언집 45권 등 총 198종의 저서를 남겼다.

* PHP연구소 - 마쓰시타가 1946년에 설립한 대형 출판사다. 번영을 통한 평화와 행복이라는 기치 아래 마쓰시타 경영이념을 시대 흐름에 맞춰 재해석하고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다. 마쓰시타 경영 철학을 세일즈하는 총사령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최근 공 들이는 사업은 마쓰시타 경영숙(경영스쿨)이다.

* 훌륭한 상인의 자질 ‘셋’ - 장사의 의미를 아는 사람,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 다른 사람보다 머리를 더 굽히는 사람이다.

* 수돗물 철학 - 수돗물이 산 가격에 콸콸 공급되는 것처럼 기업 경영도 그래야 한다고 믿음이다. 사회에 필요한 제품을 싼 가격에 공급하면 많은 사람이 행복을 누릴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파나소닉의 1차 목표는 사회 빈곤과 궁핍을 극복하는 일이라고 천명했다. 이익은 2차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 주5일 근무를 1960년에 도입 - 회사 경영에 협조하는 노조에 대한 화답으로 종업원 중시 경영을 적극 펼쳤다. 1960년 시무식 때 주5일제 도입을 전격 선언하고 3년 후인 1963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일본이 노동법을 개정해 주5일제를 공식적으로 전면 도입한 것이 그로부터 28년 후인 1988년이었다. 주5일제 도입이 성공하자 3년 후에는 임금 인상 5개년 계획을 전격 공개했다. 5년 안에 미국과 독일 수준까지 금로자 임금을 올리겠다는 원대한 포부였다. 

* 전형적인 ‘추적자’ 전략 - 파나소닉은 발명 보다는 그 기술을 개량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때문에 모방의 천재, 베끼기 전문기업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하지만 오리지날 기술 없이도 1등 기업이 가능함을 그는 보여 주었다. 

◇ 마쓰시타의 국가 기여론

* 무세국가론 - 마쓰시타는 세금에 대해 원초적 저항감을 갖고 있었다. 무세국가론이란 국민과 기업에서 걷는 세금을 절반으로 줄이고, 국가가 기업처럼 스스로 돈을 벌어 쓰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액 세금에 불만 있어도 공공성을 앞세우는 기업관을 평생 유지했다. 기업은 공공재라는 인식을 가진 것이다. 파나소닉 경영에도 줄곳 공해 방지, 환경 중시는 물론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강조했다. 기부와 칭찬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도 ‘기업은 공공재’라는 소신 때문이었다고 한다.

* 신국토 창성론 - 산악 지대가 많은 일본 국토를 개조하자는 주장이다. 200년에 걸쳐 산을 헐어 간척지를 개발해 국토 면적을 2배로 늘리자는 구상이다. 정치에도 생산성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 고야산 기업묘 - 고야산(高野山)은 일본 불교의 성지로 진언종의 총본산이다. 템플스테이로 유명하다.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인들이 유독 많이 찾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진언종 명상법과 좌선이 큰 인기를 끄는 곳이다. 이곳에는 100여개의 기업묘로도 유명하다. 산업 전사들이 죽어서도 극락정토에 모여 함께 살길 바라는 뜻으로 세웠다고 한다. 기업묘의 원조가 바로 파나소닉이다.

* 영욕의 마쓰시타 정경숙 - 치가사키시에 1987년 84세 나이로 마쓰시타 정경숙을 건립했다. 지금 돈으로 3000억원 가량을 투자했다. 1년에 6번, 주말에 1박2일을 합숙하며 강연 세미나 토론회를 진행한다. 입학생을 매번 15명으로 제한한다. 지금은 매년 5~7명 정도 선발에 그치고 있다. 현직 경영인이나 기업 후계자 꿈꾸는 3세와 4세로 참여 자격을 제한했다. 아무리 바빠도 수업은 본인이 직접 참가토록 한다. 현직 경영인과 마쓰시타와 함께 파나소닉 경영했던 전직 원로들이 특강을 맡는다. 학생들에게는 졸업 때까지 4년간 매달 대기업 신입사원 수준의 월급을 지급했다. 마쓰시티 회장과의 정기적 대화 모임 등이 있었다. 

* 정당 결성으로 갈 뻔한 정경숙 설립 - 현실정치에 대한 관심 반영. 1989년에는 참의원 선거를 계기로 마쓰시타정당 출범 결심도. 정당 발기문과 정강 정책까지 준비. 하지만 건강이 갑지가 악화되면서 1989년 4월 사망하자 무산. 30년 동안 마쓰시타 정경숙 졸업자 274명. 40%가 정치에 입문하고 39%는 기업체 근무. 1기 졸업생 노다 요시히코가 2011년 총리대신 올라 정경숙 출신 국회의원을 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요직에 발탁.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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