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일본다루기> 김현구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20-01-29 07:00 수정일 2020-05-29 11:21 발행일 2020-01-28 99면
인쇄아이콘
'한국 길들이기' 하는 일본을 우리는 어떻게 다뤄야 하나
0000453389_001_20200120204220265

< 총평 >

저자는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일본사를 연구하고 국내 대학에서 오랫동안 일본의 역사를 가르쳤다. 한일관계에서 우리가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필요한 역사적 논점과 극복방안 등을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일본이 우리와의 많은 거래에서 우리가 모르는 구조적 불균형 덕분에 엄청난 이득을 챙겨 왔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일본 정부의 ‘한국 길들이기’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이제는 북한마저 같은 식으로 ‘제2의 한국’을 만들려 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한국과 중국이 합동으로 ‘재팬 불매운동’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북한의 휴전선 일대 방사정포 배치로 서울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우리도 동해안 주요 지역에 군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 한다.

◇ 한국과의 거래에서 엄청난 이득 챙긴 일본

* 8억 달러 주고 6000억 달러 벌어간 일본 - 한국이 대략 100억 달러 생산품을 수출하려면 약 10억 달러 부품이나 원자재를 일본에서 수입해야 한다. 1965년 한일협정 이래 2018년까지 대일 무역에서 우리는 대략 6000억 달러의 누적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일본은 유·무상으로 8억 달러를 한국에 제공하고 6000억 달러를 한국에서 벌어간 셈이다. 수출품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일정량의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해야만 하는 한국의 경제구조가 바로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 침략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 아베정권의 경제보복 목적은 ‘한국 길들이기’ - 아베 정부의 한국 경제 제재 목적은, 한국을 적으로 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반중(反中) 연대’로 전환시키기 위함이 목적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 한중 합동 재팬 불매운동 검토해 볼 만 - 한국에 더해 중국까지 ‘NO 재팬’ 운동에 참여할 경우, 일본은 더 큰 경제적 타격을 즉각 체험하게 될 것이고 해당 관광지 지역 정치인들이 아베 정권을 압박할 가능성 크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한중이 함께 하는 ‘NO, NO 재팬 투어’ 운동은 한중관계를 강화하는 계기일 뿐만 아니라 한국이 일본을 견제하는 방법으로서 하나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는 셈이라고 강조한다.

* 북한을 제2의 한국으로 만들려는 일본 - 일본은 1965년 한국과 수교하면서 유무상 8억 달러를 제공했듯이, 최근 북한에도 70억~100억 달러를 지불하려 준비했다고 한다.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만 풀리면 언제든 북한을 제2의 한국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최근 한일관계가 난관에 봉착하자 일본이 다시 북한에 접근하기 시작하는 것이 이런 이유였다. 아베 역시 납북 일본인에 대한 송환 요구 목소리를 부쩍 낮추고 있다. 급기야 2019년 5월에는 ‘조건없는 북일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싶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 한류열풍의 실제 이득은 일본이 챙겨 - 2005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대일 서비스 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욘사마(배용준) 열풍’이 휘몰아쳤던 2005년에 여행수지가 7억3000만 달러 적자였다. 운수수지도 3억3000만 달러 적자로 전락했다.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이 해마다 두자릿수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한류열풍에 우리가 흥분하던 시기에 여행수지, 운수수지는 적자로 전락하고 무역적자는 대폭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 조선업도 일본 의존도 과다 - 조선업 기자재 자급률이 20%라는 국내 보도가 있었다. 외국에서 한국에 주문을 넣을 때, 일본산 부품을 사용해 달라는 조건을 붙인다고 한다. 한국도 부품개발 능력 있으나 경기가 좋을 때는 수입산이 오히려 싸니 부품을 수입하고, 경기가 어려울 때는 부품 개발에 돈이 들어가니 개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저자는 안타까와 한다.

◇ 급할 때 한국을 외면한 일본과 미국

* 외환위기 때 한국지원 외면한 일본 - 한국이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일본은 철저히 한국을 외면했다. 1995년 어업협정 개정을 요구하던 일본 정부에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일갈했던 것을 꼬투리 삼았다. 일본이 우리의 단기외채 연장 요청에 불응하면서 한국은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 미국은 한국편일까 일본편일까? - 저자는 “한국과 일본이 충돌한다면 미국은 어떤 태도를 취할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1950년 한국이 미국 방위권 밖에 있다고 밝힌 이른바 ‘에치슨 성명’도 미국이 최종적으로 생각하는 보루가 일본 임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자위대는 지리적 제한 없이 전 세계를 무대로 미국과 함께 활동 중이다. 소설 ‘대지’를 쓴 작가 펄벅은 “미국은 역사적으로도 두번 한국을 배신했다”고 말한 바 있다. 1882년 조미수호조약에도 불구하고 을사조약 때 우리를 외면했고,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따라 필리핀을 미국에 주고 한일합방 조약을 방조한 적이 있다고 한다.

*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다루는 법 - 김 전 대통령은 취임 다음 달인 3월에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해 9월에는 일본과 신어업협정을 체결했고 이어 10월에는 일본을 방문해 대중문화 개방을 선언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8일에는 오부치 게이조 당시 총리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3대 현안을 전부 해결해 주자, 일본은 30억 달러 차관 제공으로 화답했다. 한국은 1998년 12월 18일 IMF 자금 18억 달러를 1차 상환함으로써 IMF 관리체제에서 탈피한다. 오부치 총리는 “금세기의 한일 관계를 돌이켜 보고 과거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대단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를 바탕으로 마음으로 사죄한다”고 말했다.

* 왜구를 근절시켰던 세종대왕 - 세종은 1419년 왜구 소굴인 쓰시마를 정벌했다. 하지만 이후로는 쓰시마 도주에게 제도적으로 무역을 허용하는 교린정책을 펼쳤다. 1426년 쓰시마 도주 소 사다모리 요청으로 웅진(진해) 내이포와 부산포, 울산의 염포를 개항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조선은 나중에 3포를 폐쇄하기에 이른다. 일본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전면적인 교역 금지 조치를 한 것이 결국 임진왜란을 불러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 일본 사과의 역사와 反역사

* 일본 위정자들의 역사관이 망라된 ‘구보타 망언’ - 1953년 10월 한일회담 당시에 구보타 간이치로 일본 수석대표는 “일본이 진출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러시아, 중국에 점령되어 더 비참했을 것”이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그는 또 “일본이 조선에 36년 식민지 통치에 대해 피해보상을 요구한다면, 한국에 남기도 온 일본 재산의 반환을 요구하겠다”고 막말을 했다. 일본이 조선에 36년 동안 철도를 부설하고 항만을 건설해 경제부흥을 일으켰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것이 일본 보수 정치계의 보편적인 역사인식이다.

* 일본 정부 ‘사과의 역사’ - 일본 정부 사과의 상징적인 존재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다. 일본 전후 50주년 종전 기념일인 1995년 8월 15일에 그는 “식민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사과는 1993년 8월 내각 관방장관 고노 요헤이가 대표적이다. 그는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관해서는 일본군이 관여했다”고 인정하고 일본군 위안부에게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는 이를 부정했다. 2013년 12월26일 야스쿠니신사 참배 후 기자회견에서 “국가를 위해 귀중한 생명을 희생한 영령에게 ‘존숭’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전범’을 존경하고 숭배한다고 해 크게 물의를 일으켰다. 일본군 위안부에 관해서도 2015년 3월 “인신매매에 의한 희생자”라고 표현하는 등 역사 부정이 극에 달했다.

* 일본이 진정성 있는 사과하지 않는 이유 - 일본 정부가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과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를 않는 이유는 역사적 배경 때문이라고 저자는 파악한다. 주변국가를 침략한 세력이 ‘반공’을 중시한 미국의 방조 아래 다시 정권을 장악했고, 그 자손들이 일본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거사를 인정하는 것은 곧 자신은 물론 자신의 조상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주변국가들이 사과를 요구하면 마지못해 사과하는 척 하지만 진정성이 없다. 과거를 영광스러운 역사로 가르치자는 자유주의사관이 힘을 얻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고 저자는 전한다.

◇ 일본의 적나라한 본 모습

* 한반도를 생명선으로 여기는 일본 - 일본은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가 한반도를 장악한다면 일본이 다음 타깃이 된다는 두려움을 늘 안고 산다. 때문에 한반도를 일본 열도에 대한 방어선으로 생각한다. 남진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러일전쟁을 불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 돈으로 방글라데시 눌러앉힌 일본 - 2014년 9월 9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에 의하면, 아베 총리는 방글라데시와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선거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의석을 놓고 경합이 붙었을 때 대규모 경제지원을 약속하고 방글라데시를 사퇴시켰다. 향후 4~5년에 걸쳐 6000억 엔을 지원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 난징대학살 숨기려는 일본 - 일본 교과서는 난징 대학살과 관련해 ‘1937년 12월 난징을 함락했다’라고만 기술하고 있다. 난징에서 살해된 사람의 숫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는 내용만을 주석으로 달았을 뿐이다.

* 세습에 익숙한 일본 주류사회 - 일본은 고대에 유력한 호족들이 속민을 거느리고 조정에서 맡은 일을 세습했다. 이른바 우지가배네(氏姓) 사회였다. 7세기 말에 이 제도가 없어졌지만, 세습 문화는 사무라이가 지배한 막부시대에 이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의 총리직도 사실상 돌아가면서 세습되고 있으며, 현재 여당 의원의 40% 이상이 세습의원들이다.

* 일본을 통치하고 군대를 통솔하는 천황 - 일본 헌법에 천황이 정의되어 있다. 제1조에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 제3조에 ‘천황은 신성해서 침범할 수 없다’ 등 천황을 신성불가침의 ’천인신‘ 임을 강조하고 있다. 제4조에도 ‘천황은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통괄하고 헌법 각조에 의거해 이를 시행한다’, 11조에는 ‘천황은 육해군을 통솔한다’고 정의했다. 미국은 그런 천황을 전범 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오히려 지켜 주었다. 일본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타협한 것이다. 결국 전쟁 최고책임자인 천황은 전범으로 처벌받지 않고, 다시 일본을 상징하는 존재로 복귀시켜 준 셈이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