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더컬처] 한국 춘향과 마린스키 몽룡, 차이콥스키를 만나다! 발레 ‘춘향’ 유병헌 예술감독·강미선·블라디미르 쉬클리야로프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10-04 14:30 수정일 2019-10-04 14:31 발행일 2019-10-04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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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춘향' 유병헌 안무·연출,  강미선과 마린스키발레단의 블라디미르 쉬클리야로프와 홍향기·이동탁 출연
'만프레드 교향곡' '템페스트' '교향곡 1번' '조곡 1번' '내림마장조 교향곡' 등 차이콥스키의 숨은 명곡에 어우러지는 초야·이별·재회 파드되, 화려한 기생무, 카리스마 넘치는 장원급제 및 어사출두 등 볼거리
발레 춘향
연습 중인 발레 ‘춘향’의 춘향 강미선(왼쪽)과 몽룡 블라디미르 쉬클리야로프(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최대한 발레 언어를 통해 판소리에서 유명하고 중요한 ‘사랑가’ ‘이별가’ ‘옥중가’ 등 중요한 장면들을 구성했습니다.”

발레 ‘춘향’(10월 4~6일, 이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유병헌 예술감독은 이렇게 전하며 “2007년 초연 이래 3번의 수정을 거치면서 드라마 발레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창단 35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의 ‘춘향’은 퇴기 월매의 딸 춘향과 양반가 자제 이몽룡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기다. 당시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이었던 배정혜 연출, 유병헌 안무, 미국의 작곡가 케빈 바버 픽카드(Kevin Barber Pickard) 음악 등으로 2007년 초연됐다. 유 감독의 전언처럼 3차례의 수정을 거치면서 2014년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의 숨은 명곡들로 다시 꾸려 선보였다.

발레 춘향
발레 ‘춘향’의 유병헌 예술감독(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초야, 애틋한 이별, 격정적인 재회로 이어지는 세 가지 유형의 파드되(2인무), 화려한 테크닉이 볼거리인 기생무, 강렬한 위엄이 돋보이는 장원급제와 어사출두 등으로 무장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강미선과 마린스키발레단의 블라디미르 쉬클리야로프와 홍향기·이동탁이 페어를 이뤄 춘향과 몽룡으로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춘향’과 차이콥스키 숨은 명곡…유병헌 예술감독 “차이콥스키에서 발견한 굿거리장단”

“무용은 음악이 반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픽카드 선생의 음악은 멜로디 등 매우 훌륭했지만 오케스트레이션이 너무 약했어요. 게다가 몽룡을 영웅처럼 만드는 음악이었죠. 고민 끝에 차이콥스키 음악을 찾아냈습니다. 1시간 10분짜리 ‘만프레드 교향곡’(Manfred Symphony, Op.58, 1885)을 듣다가 한국의 템포와 굿거리장단을 들었죠.”

이렇게 전한 유병헌 감독은 “러시아 클래식 음악에서 한국 전통의 굿거리장단이 나올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며 “그때부터 차이콥스키 음악을 모두 뒤졌다”고 설명했다.

“3개월 동안 선곡을 하면서 너무 많이 듣다보니 우울했어요. 비극성이 짙은 차이콥스키 작품 중 3대 발레곡(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말고는 행복한 음악을 찾기가 힘들어요.”

그렇게 찾아낸 숨은 명곡이 춘향과 몽룡 파드되에 쓰인 ‘만프레드 교향곡’과 어사출두, 재회신에 쓰인 환상 서곡 ‘템페스트(The Tempest Op.18, 1873), 변학도 부임과 어우러지는 ‘교향곡 1번’(Symphony No.1, Op.13, 1866), 방자와 향단의 ‘조곡 1번’(Suite No.1, Op.43, 1878~1879)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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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중인 발레 ‘춘향’의 춘향 강미선(왼쪽)과 몽룡 블라디미르 쉬클리야로프(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과거시험 시제를 확인하고 답을 단숨에 써내려가는) 몽룡의 일필휘지 솔로에 쓰인 ‘내림마장조 교향곡’(Symphonie in E flat, Op. posth.)은 러시아에서도 악보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잘 안알려진 곡이에요. 힘들게 일본 동경도서관에서 찾아 들었는데 굉장히 와 닿았죠. 몽룡(의 대표 감정)은 사랑이고 과거 시제의 답도 사랑이거든요.”

이어 “한국 전통 서사를 서양의 발레에 결합하는 게 어려웠지만 차이콥스키 음악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말을 보탠 유병헌 감독은 “무언의 언어인 무용은 다 통한다. 나라, 형식 등이 다를 뿐 표현하는 감정은 같다”며 의상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전통 한국 옷을 고집하기 보다는 발레 형식에 맞게끔 모던한 개량 한국의상을 만들어주셨습니다. 한국 정서 표현에 색감이 중요한데 무난히 소화했다고 생각해요.”

◇마린스키 대표주자 블라디미르 쉬클리야로프 “예술엔 경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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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춘향’에서 몽룡으로 분할 마린스키 발레단 무용수 블라디미르 쉬클리야로프 (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처음 제안이 왔을 때 고민도 없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정서를 담고 있지만 굉장히 높은 수준의 클래식 창작발레 같았거든요.”

몽룡으로 유니버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강미선과 호흡을 맞추는 블라디미르 쉬클리야로프는 전세계적으로 그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는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없어서는 안될 무용수이자 파워풀한 테크닉과 풍부한 감정표현으로 사랑받는 발레리노다.

“제가 입단하던 2003년과 지금의 마린스키 발레단은 많이 달라요. 하지만 군무부터 시작해 자신의 기량에 따라 주역 무용수까지 커가는 과정을 밟는 것이 무용수로서 제일 튼튼하고 오래 가는 방법이라는 건 변함이 없죠. 그 과정은 어려운 시간들이지만 군무부터 차근차근 밟아온 게 굉장한 교육이었고 지금의 저를 받쳐주는 것 같거든요. 제대로 배우고 성장한 무용수가 오래도록 좋은 기량을 보여줄 거라 확신합니다.”

러시아 무용수로서 ‘춘향’에 스민 한국 특유의 정절, 장원급제, 기생문화 등이 낯설 법도 하다. 이에 대해 블라디미르는 “한국에 머물수록 문화와 정서를 비롯해 음식부터 건물들까지 점점 더 마음에 든다”며 “읽기 쉽지는 않았지만 러시아어로 번역된 ‘춘향’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늘 사랑과 정의가 악을 물리친다고 느꼈어요. 저의 몽룡이 한국 전통 이미지는 아니라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에는 경계가 없어요. 무용수로서 제 최대치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2막 내내 글이 써진 부채와 붓을 들고 있어야 하는 게 힘들면서도 특이했어요. 처음엔 적응이 힘들었지만 그 소품들에도 의미가 많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곤 “굉장히 많은 레퍼토리를 공연했지만 ‘춘향’은 그 어느 것과도 같지 않은 특별한 작품”이라며 “이 작품이 잘 보존되면 좋겠고 제가 출연함으로서 퀄리티를 더 높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춘향’ 성장 지켜본 강미선 “보다 적극적인 네 번째 몽룡 블라디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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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춘향’ 강미선(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2007년부터 향단으로 시작해 기생, 군무 등의 역할로 참여하면서 ‘춘향’이 여러 차례 수정되고 완성돼 가는 걸 지켜봤어요. 아름답기로는 초야 파드되를 꼽을 수 있지만 제가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고 중점적으로 연기하고픈 장면은 이별과 재회예요. 가장 크게 와닿을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어 “이 부분을 잘 표현하면 관객들이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한 강미선은 2014년부터 춘향으로 분하며 이현준, 이동탁,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에 이어 네 번째 몽룡 블라디미르를 만나 호흡을 맞추고 있다.

“(블라디미르에게서) 한국적 추임새나 춤사위가 나와서 놀랐어요. 외국 무용수들은 (한국 전통 춤사위나 추임새가)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니까 따라하는 듯한데 점점 익숙해지면서 몸에 배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흥미로워요. 감정적으로도 어느 정도 감추는 한국적인 절제와는 다른 것 같아요.”

발레 춘향
연습 중인 발레 ‘춘향’ 강미선(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이렇게 전한 강미선은 “팔을 크게 혹은 움츠리는 등 감정을 발레로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며 “외국 무용수들이 감정을 더 크게 표출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동탁의 몽룡이 절제되고 보듬어주는 표현력이라면 블라디미르는 좀더 크고 적극적이죠. 다른 표현방법이나 표현력을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을 듯합니다.”

◇춘향 강미선과 몽룡 블라디미르 그리고 콘스탄틴

“그 먼 데서 떠나와 있지만 내집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강)미선과 콘스탄틴 때문이에요. 한국에 있는 동안 잘 적응해갈 수 있도록 편하고 아늑하게 도움을 주죠. 발레단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그 외 시간도 지루하지 않게 프로그램을 잘 짜서 맛집과 재밌는 곳을 두루두루 안내해주고 있어요.”

블라디미르는 “1995년 바가노 발레학교 입학부터 함께 공부하던 동료”이자 파트너 강미선의 배우자이기도 한 콘스탄틴에 대해 이렇게 전하며 “좋은 단체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가 자랑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콘스탄틴은 멈춰 있지 않고 더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무용수예요. 낙천적이고 열심히 하는 그의 성격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한 것 같아요.”

강미선은 파트너 블라디미르에 대해 “워낙 풍부한 감정 표현이 강점인 무용수로 유명하다”며 “남편 친구이다 보니 영상을 많이 보기도 하는데 매번 감탄하는 무용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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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춘향’에서 몽룡으로 분할 마린스키 발레단 무용수 블라디미르 쉬클리야로프 (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사실 처음 캐스팅이 나왔을 때는 부담이 됐어요. 워낙 유명하다보니 어떻게 호흡을 맞출까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 연습실에서 친근하고 편하게 대해주니 마음을 열게 됐어요. 다양한 작품에서 여러 여자 무용수들과 파트너로 호흡을 맞춘 경험이 많으니 믿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풍부한 표현력 때문에 저도 더불어 감정 표현을 더 하게 되는 시너지를 주는 무용수죠.”

강미선의 칭찬에에 블라디미르는 “당연히 좋은 말밖에 생각이 안난다” 화답하며 “첫 협연인데도 연습실에서나 일상에서나 굉장히 친밀하게 느껴지고 소통이 잘 된다”고 덧붙였다.

“춤으로도 대화가 잘 통해서 좋은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트너십에서 제일 중요한, 리듬을 주는 미선에게 고마워요. 미선을 비롯한 유니버설 발레단은 열정이 많은 단체 같습니다. 그들의 열정을 보면서 저 역시도 열정이 생기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