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그라운드] 서로의 존재 이유 조지와 레니, 그들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시선들…연극 ‘생쥐와 인간’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10-03 14:05 수정일 2019-10-03 14:05 발행일 2019-10-03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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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테인벡 '생쥐와 인간', ‘승산없는 싸움’ ‘분의 포도’와 더불어 노동자 3대 비극 시리즈
민준호 연출 새로 합류, 레니 최대훈·서경수, 조지 문태유·고상호,  캔디·칼슨 김대곤·김종현, 컬리·슬림·크룩스 송광일·차용학, 컬리부인 김보정·한보라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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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생쥐와 인간’ 출연진들.

“당시 사회상이나 지금과는 다른 사상들 등이 조금 더 비춰져야 이 공연의 원래 뜻이 담기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괜찮은 것들이 ‘당시엔 저랬구나’ 등 많은 생각을 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연극 ‘생쥐와 인간’(11월 17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 새로 합류한 민준호 연출은 이렇게 전했다. 1일 유니플렉스 2관에서 프레스콜을 진행한 연극 ‘생쥐와 인간’은 노벨문학상, 퓰리처상을 수상한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동명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승산없는 싸움’(1936), ‘분의 포도’(1937)와 함께 노동자 3대 비극 시리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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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생쥐와 인간’ 위 왼쪽 조지 역의 고상호(왼쪽)와 레니 서경수, 아래 조지 문태유(왼쪽)와 레니 최대훈(사진제공=빅타임엔터테인먼트)

1930년대 대공황기의 미국 목장을 배경으로 아이처럼 순수하지만 큰 덩치와 주체할 수 없는 힘을 가진 레니(최대훈·서경수,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와 영민하지만 교육받지 못한 채 천둥벌거숭이처럼 살아가는 조지(문태유·고상호)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비극적인 삶, 약자들 간의 차별과 상처, 허망하게 무너져버린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193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고 한국에서는 지난해 첫 선을 보였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설의 리틀농구단’ ‘모래시계’ ‘나빌레라’ 등의 박해림 작가가 각색하고 ‘뜨거운 여름’ ‘나와 할아버지’ ‘신인류의 백분토론’ 등의 민준호 연출이 재연에 새로 합류했다.

조지 역에는 초연의 문태유와 새로 합류한 고상호, 레니 역에는 최대훈과 서경수가 더블캐스팅됐다.

농장주 아들 컬리와 슬림 그리고 새로 추가된 크룩스는 송광일·차용학이, 컬리 부인은 김보정과 한보라, 캔디·칼슨은 김대곤과 김종현이 번갈아 연기한다.

민준호 연출은 “발전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의 모습을 최대한 자극적이지 않게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예가 원작에서 모두가 ‘창녀’로 취급하는 컬리 부인과 새로 추가된 크룩스다.

민준호 연출은 조지와 레니가 일하는 농장주의 아들(송광일·차용학)의 아내인 컬리 부인(김보정·한보라)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그녀를 욕하는) 원작이 거슬려 ‘창녀’라는 단어는 뺐지만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과는 말도 못 섞고 (말을 걸면) 헤프고 남자를 유혹하려 한다고 욕하던 시대의 분위기는 살려야 했다”며 “사상이 발전했기 때문에 원작과는 다르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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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생쥐와 인간’ 조지 고상호, 캔디 김종현, 컬리부인 한보라(사진제공=빅타임엔터테인먼트)

한보라는 컬리부인에 대해 “제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더라도 남자들에 의해 이미 ‘헤픈 여자’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며 “결혼한 여자가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실현하기 어려운 시대에 컬리 부인은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고 철없는 모습도 있지만 절박하고 솔직한 여자”라고 소개했다. 

새로 추가된 캐릭터 크룩스는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숙소에서도 머물지 못하고 마구간에서 생활하는 약자 속 약자다. 민 연출은 “주인공 둘(조지와 레니)의 갈등만으로 가는 걸 바꿔보자 했다”며 “원작의 흐름에 따라 대공황시대의 노동자들 안에서도 계급이 나뉜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래서 크룩스를 꼭 넣어야겠다고 말씀드렸다”며 “인종 문제를 부각시키기에는 오래된 이야기라 흑인임을 강조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크룩스를 비롯해 컬리와 슬림을 동시에 연기하는 차용학은 “조지와 레니는 그대로인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게 안타까웠다”며 “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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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생쥐와 인간’ 레니 서경수(왼쪽부터), 컬리 차용학, 조지 고상호(사진제공=빅타임엔터테인먼트)

초연에 이어 재연에서도 레니로 분하고 있는 최대훈은 “좋은 작품이지만 ‘과연 내가 큰 변화를 줄 수 있을까’ ‘그때보다 잘 할 수 있을까’ 싶어 부담을 가졌다”며 “더 찾고 변화시킬 부분도 있지만 놓치거나 발견하지 못한 것, 거슬리는 부분을 정리하는 데 집중하며 레니에 접근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털어놓았다.

“이 사람(레니)은 우리와 크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좀 불편할 뿐이고 다수 보다 소수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여성에게 가하는 것들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윤리적으로 어떻게 접근할까 조심스레 고민했습니다.”

초·재연에서 조지를 연기하고 있는 문태유는 “조지가 극 전체적으로 중얼대다시피 ‘한달에 50달러쯤 죽어라 벌면 술이나 퍼마시고 당구나 치고 다시 일하고가 반복되는 게 싫다’고 말한다”며 “당시 많은 일꾼들이 그렇게 살았지만 조지에게는 유흥이고 쾌락”이라고 설명했다.

연극 생쥐와 인간_공연사진_조지 문태유, 레니 최대훈
연극 ‘생쥐와 인간’ 조지 문태유와 레니 최대훈(사진제공=빅타임엔터테인먼트)

“아득바득 돈을 모으려는 조지는 금욕적이기까지 하게 살아가요. 그런 방식으로 살려는 의지와 이유를 만들어주는 친구가 레니 같아요. 그냥 단순하게 의지하는 게 아니라 돈을 모아서 쳇바퀴같은 인생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가치있게 살고 싶게 하는 사람으로 레니를 바라보고 있죠.”

그리곤 5장 마지막을 예로 들며 “초연 때는 내 손으로 죽여야겠다 마음을 먹고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그 마음 결정을 더 힘들게 하고 끝까지 고민하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재연에서는 레니를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마음에 명확한 선이 없는 상태로 들어서요. 그래서 1~5장까지 연결돼 초연과는 다른 논리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극 생쥐와 인간_공연사진_레니 서경수, 조지 고상호
연극 ‘생쥐와 인간’ 레니 서경수와 조지 고상호(사진제공=빅타임엔터테인먼트)

조지로 새로 합류한 고상호는 “농장을 전전하면서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레니를 돌보면서 다니는 두 사람의 관계가 너무 궁금했다”고 출연 이유를 전했다.

“조지에게 레니는 인식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같이 했던 존재같아요. 처음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둘 사이에 대해 제가 어디까지 접근할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레니가 소중하다’ ‘내 옆에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게 당연한 관계죠. 제(조지)가 (레니를) 소중하다고 느끼는 순간 다른 얘기가 될 것 같아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