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한(恨)과 효, 정절 등 한국 고유의 정서, 서양 장르를 만나다! 오페라 ‘1945’, 발레 ‘춘향’ ‘심청’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09-26 07:00 수정일 2019-09-28 13:42 발행일 2019-09-2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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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Board]해방 직후 만주 장춘의 조선인 전재민 구제소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인간군상을 다룬 배삼식 작가의 연극 ‘1945’ 오페라로
위안부 분이와 일본인 여자 미즈코 등의 연대, 고선웅 연출과 최우정 작가 등 꾸려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춘향’과 ‘심청’ 유니버설 발레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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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1945’ 창작진. (왼쪽부터) 작곡 최우정 지휘 정치용 연출 고선웅 대본 배삼식(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급작스러운 해방 직후 만주 장춘의 조선인 전재민 구제소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인간군상을 다룬 배삼식 작가의 연극 ‘1945’,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춘향’과 ‘심청’ 등 한국 고유의 한과 정서를 담은 이야기들이 서양 장르인 오페라와 발레로 변주된다. 

오페라와 발레는 서양 귀족계급이 향유하던 장르로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하며 그 소재 역시 서양 궁정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이 같은 장르가 한국 특유의 한과 민초들의 질박함, 일상성을 녹여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아름다운 아리아와 화려한 테크닉의 발레 동작들이 불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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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1945’ 연습(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오페라 ‘1945’(9월 27, 2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는 2017년 초연됐던 배삼식 작가의 동명 연극을 변주한 작품이다. 배삼식 작가가 처음으로 오페라 대본을 직접 꾸렸고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낙타상자’ ‘라빠르트망’ ‘흥보씨’ ‘변강쇠 점찍고 옹녀’ ‘원스’ ‘아리랑’ ‘광화문연가’ 등 연극, 뮤지컬, 창극 등의 작가·각색가·연출로 활동하던 고선웅 연출과 ‘적로’ ‘오이디푸스’ 등의 최우정 작곡가, 정치용 지휘자이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 의기투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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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1945’ 연습인 분이 이명주(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위안부였던 분이(소프라노 이명주)와 임신한 일본인 여자 미즈코(소프라노 김순영), 위안소 중간관리자였던 박섭섭(메조 소프라노 김향은), 분이에게 호감을 가진 오인호(테너 이원종), 섭섭과 정분이 난 장막난(바리톤 이동환), 구제소의 어른 이노인(바리톤 유동직), 한글강습회를 열려는 지식인 구원창(베이스바리톤 우경식), 생활력 강한 김순남(메조소프라노 임은경) 등이 고향으로 돌아갈 기차를 기다리는 여정을 담고 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작으로 배삼식 작가는 무리지어 사는 인간 문명 속 가치판단 기준의 성김과 폭력성을 논하며 ‘1945’를 통해 “자비와 따뜻하고 자애로운 슬픔이 인간에게 있다고 믿었고 발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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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1945’ 연습(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고선웅 연출은 브릿지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노래가 가진 경제성 안에서 인물들의 개성들이 존재하며 물 흐르듯 표현되고 있다”며 “배삼식 작가 특유의 문학성을 바탕으로 오페라 문법에 맞게 풀어낸 대본, 최우정 작곡가가 한국적 정서와 선율, 대중적 코드를 많이 넣어 꾸린 아리아가 훌륭하다”고 전했다.

연극으로 초연되던 당시 위안부 피해자와 침략국인 일본의 여자, 위안소 중간관리자로 같은 민족의 소녀들을 핍박하던 여자의 연대에 논란이 되기도 했던 ‘1945’에 대해 고 연출은 “몰상식하게 누군가의 권리를 침탈하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평화에 대한 메시지가 응축된 이야기”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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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춘향’(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판소리로 주로 만나던 ‘춘향’(10월 4~6일, 이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과 ‘심청’(10월 11~13일)은 발레극으로 변주된다.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35주년 기념작으로 ‘춘향’은 2007년 초연과 2018년 정기공연을 통해 사랑받았던 작품이다. 퇴기의 딸 춘향과 양반가의 자제 이몽룡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기가 ‘만프레드 교향곡’(Manfred Symphony, Op.58, 1885), ‘템페스트’(The Tempest Op.18, 1873), ‘교향곡 1번’(Symphony No.1, Op.13, 1866), ‘조곡 1번’(Suite No.1, Op.43, 1878~1879)’ 등 차이콥스키의 숨겨진 명곡에 실린다.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초야, 애틋한 이별, 격정적인 해후로 이어지는 세 가지 유형의 파드되(2인무), 화려한 테크닉이 볼거리인 기생무, 강렬한 위엄이 돋보이는 장원급제와 어사출두 등으로 무장했다. 강미선·블라디미르 쉬클리야로프와 홍향기·이동탁 페어가 춘향·이몽룡으로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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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심청’(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심청’은 1986년 초연 후 프랑스 파리, 러시아 모스크바, 미국의 워싱턴·뉴욕 등 15개국 40여개 도시의 무대에 올라 사랑받은 창작발레다. 눈먼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 이야기를 통해 동양 특유의 효 사상과 민간신앙, 부녀의 정, 왕과의 로맨스 등을 아우른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배 위 선원들의 역동적인 군무가 돋보이는 인당수 신, 영상으로 투사되는 바다 속 심청, 바다 요정 및 왕궁 궁녀들의 아름다운 군무, 달빛 아래서 사랑을 속삭이는 ‘문라이트’ 파드되 등이 볼거리다.

홍향기·이동탁, 김유진·콘스탄틴 노보셀로프 페어가 심청과 선장으로 호흡을 맞추며 용왕은 마밍·콘스탄틴노보셀로프가, 왕은 알렉산드르 세이트칼리예프와 마밍, 이동탁이 번갈아 연기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