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그라운드] 자애로운 그리고 따뜻한 슬픔이 인간에게 있을 것이라는 믿음…오페라 ‘1945’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09-17 22:00 수정일 2019-09-17 23:20 발행일 2019-09-17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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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1945
오페라 ‘1945’ 창작진들. 왼쪽부터 최우정 작곡가, 정치용 지휘자, 고선웅 연출, 배삼식 작가(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무리지어 사는 인간 문명 속에서 가치판단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인간의 구체적인 삶 앞에서 그러한 가치판단의 틀이 얼마나 성기고 때로는 억압과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돌아볼 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17일 예술의전당 연습동 N스튜디오에서 열린 오페라 ‘1945’(9월 27, 2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연습실 공개 및 기자간담회에서 “오페라는 처음 써본다”는 배삼식 작가는 “보는 분들의 마음 속에 움직이는 것이 있기를 바란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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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중국 만주 장춘 소재의 조선인 전재민 구제소를 배경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이들의 이야기. 오페라 ‘1945’ 연습현장(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자비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썼습니다. 따뜻한 그리고 자애로운 슬픔, 그런 것들이 인간에게 있다고 믿었고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국립오페라단이 제작한 오페라 ‘1945’는 배삼식 극본의 동명 연극을 변주한 작품으로 해방 직후 중국 만주 장춘 소재의 조선인 전재민 구제소를 배경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이들의 이야기다.

위안부였던 분이(소프라노 이명주)와 임신한 일본인 여자 미즈코(소프라노 김순영), 위안소 중간관리자였던 박섭섭(메조 소프라노 김향은), 난감하게도 이들이 한데 모인다.

분이에게 호감을 가진 오인호(테너 이원종), 섭섭과 정분이 난 장막난(바리톤 이동환), 이노인(바리톤 유동직), 구원창(베이스바리톤 우경식), 김순남(메조소프라노 임은경), 송끝순(소프라노 김샤론) 등이 얽히고설켜 이야기를 꾸린다.

2017년 국립극단 제작으로 공연된 연극 ‘1945’를 바탕으로 배삼식 작가가 대본을 다시 꾸렸고 최우정 작곡가, 정치용 지휘자, 고선웅 연출이 힘을 보탰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낙타상자’ ‘라빠르트망’ ‘흥보씨’ ‘변가쇠 점찍고 옹녀’ ‘원스’ ‘아리랑’ ‘광화문연가’ 등 연극, 뮤지컬, 창극 등의 작가·각색가·연출로 활동하던 고선웅 연출은 ‘1945’를 통해 ‘맥베드’에 이어 두 번째 오페라 작업에 나선다. 고선웅 연출은 “뼈아픈 얘기지만 뜨겁게 영광스럽게 하자고 했다”며 “버라이어티하고 좋은 멜로디, 익숙한 것도 많아서 재밌고 친근하게 볼 수 있는 오페라”라고 소개했다.

SHAO멘트하는 연출 고선웅
17일 예술의전당 연습동 N스튜디오에서 오페라 ‘1945’ 연습실 공개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정치용 지휘자는 “평소 한국 창작 작품에 관심 많다. 이번 ‘1945’를 만나면서 생각하는 것은 창작 오페라 활성화”라며 “문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성도 있고 대중성도 확실하게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이 다 들어 가 있어요. 특히 배경이 일제시대, 위안부 문제 등이 섞여 있죠. 오페라로 무대에 올라갈 때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도록 음악적으로 뒷받침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배삼식 작가에게 오페라 변주를 제안했다는 최우정 작곡가는 “배삼식 작가의 음악적 대본에 한국 사람이면 공감할 수 있는 선율들, 음악적 요소 등을 넣었다”며 “외가가 평안도 철산이다. 옛날 한국 역사적 질곡을 많이 겪은 세대들 얘기를 많이 들으면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스토리에 어떤 음악을 쓸까가 몸속에 스며들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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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1945'의 배삼식 작가(왼쪽)와 최우정 작곡가(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배삼식 작가는 “음악은 잘 모르지만 사랑한다”며 최우정 작곡가에 대해 “2년 전쯤 음악극(적로)을 함께 했다. 오페라에 대한 배움이 일천한 제가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대본을 읽으며 자신의 음악적 순간을 가지고 있었다”고 믿음을 표했다.

“지루한 토론 없이도 음악이 어떻게 자연스레 흘러나오게 할 것인가, 그에 텍스트가 방해되지 않도록 대본을 옮기는 작업을 했습니다. 연극 대본을 쓰면서도 항상 최종적으로 어떤 말이나 행위가 필요 없어지는 순간을 느껴요. 그 소임을 다하고 남아 있는, 말로 표현이 어려운 순간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음악이 그 자리에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