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그라운드]더 이상 금기가 아닌 실버들의 성(性), 달콤쌉싸래한 끝사랑…연극 ‘늙은 부부이야기’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08-30 20:00 수정일 2019-09-03 16:22 발행일 2019-08-30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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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부부이야기
연극 ‘늙은 부부이야기’에서 날라리 할아버지 박동만과 욕쟁이 할머니 이점순으로 분할 김명곤·차유경, 이화영·정한용(사진제공=예술의전당)

“100세 시대임에도 실버에 대한 관심도는 굉장히 약한 편입니다. 천대받던 실버세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최근 10년 정도 같아요. 2003년 ‘늙은 부부이야기’를 기획·제작한 이유이기도 하죠.”

29일 서초동 예술의전당 무궁화홀에서 열린 연극 ‘늙은 부부이야기’(9월 21~10월 1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제작발표회에서 위성신 작·연출은 “천대받는 노인 세대를 집중 조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버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안정된 노후, 자녀 걱정 그리고 그들을 풍족하게 하고 마지막까지 행복할 수 있게 하는 사랑입니다. 일반적이고 상투적인 안정된 노후, 자녀 문제보다는 실버세대가 터부시했던 성(性)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보자 했죠.”

늙은 부부이야기
연극 ‘늙은 부부이야기’ 위성진 작·연출(사진제공=예술의전당)

2003년 손종학·김담희로 초연된 ‘늙은 부부이야기’는 사별 후 세 딸, 두 아들을 키우며 살아온 욕쟁이 할머니 이점순과 날라리 양복쟁이 박동만의 황혼로맨스를 다룬 2인극이다.

죽음을 유쾌하게 다룬 1인극 ‘염쟁이 유씨’, 소박한 가족이야기 ‘당신만이’ 등의 위성신 작·연출작으로 2014년 공연 후 5년만에 돌아오는 ‘늙은 부부이야기’에는 김명곤·정한용이 박동만으로, 차유경·이화영이 이점순으로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최근 실버세대가 많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제2의 청춘과 더불어 돈도, 명예도 아닌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사랑과 함께 죽을 수 있는 것이죠. 실버들의 사랑과 성 그리고 재혼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담았습니다.”

동만 역의 정한용은 “제 또래라 공감대도 있었고 캐릭터 성격이 저랑 많이 맞았다”며 “보통 배우가 극중 인물이 되기 위해 역할로 빠져들어야 하는데 (동만 역은) 저를 연기해도 될 정도”라고 웃었다.

“제 평생 가장 할만한 역을 맡은 것 같습니다. 우리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편화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스토리 속에서 사랑으로 보편화에 성공한 작품 아닌가 싶어요.”

위성신 작 혹은 연출작인 ‘사랑에 대한 다섯 개의 소묘’ ‘염쟁이 유씨’ ‘장수상회’ ‘당신만이’ ‘친정엄마’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을 비롯해 ‘사랑해요’ ‘사랑해 엄마’ 등 실버 공연 등과의 차별점에 대해 “제2의 청춘이라는 단어 아래 절실한 사랑”이라며 지난 시즌과 달라진 점에 대해서도 밝혔다.

늙은 부부이야기
연극 ‘늙은 부부이야기’ 정한용(사진제공=예술의전당)

“저희 작품의 모토는 첫사랑만큼 절절한 끝사랑 얘기입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서도 가장 많은 것이 두 사람이 나오는 장면이에요. 가장 흔하면서도 완벽한 장면이죠. 5년 전의 ‘늙은 부부이야기’는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이 배경이었다면 이번엔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번 ‘늙은 부부이야기’는 예술의전당의 “한국 연극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하면 좋을까” 고민한 결과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유인택 사장은 “힘들고 어렵게 국가 지원을 받아 공연된 창작극 중 지속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리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1500만에 달하는 시니어 세대들이 즐길 만한 콘텐츠가 절대 부족합니다. 대학로 현장에 8, 9년 정도 있으면서 연극을 보러 왔다가 실망하고 돌아가는 시니어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이에 대학로 중심의 창작극을 유치해 대관투자까지 해 좋은 작품이 오래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연극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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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늙은 부부이야기’ 김명곤(사진제공=예술의전당)

이어 “앞으로 자유소극장은 대관 위주가 아닌 적극적인 대관투자, 외부 투자유치 등을 동시에 진행하고자 한다”며 “그 첫 작품이 ‘늙은 부부이야기’다. 12월에는 ‘여자 만세’라는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공동 기획·제작, 투자한다. 제 임기 중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의 방향을 그렇게 잡았다”고 덧붙였다.

동만 역의 김명곤은 “배우, 연출 등으로 활동하다가 잠깐 행정 일을 하다 다시 현장에 와서 보니 현장에서의 열악한 환경이라는 건 행정이 잠깐 도와준다고 바뀌는 게 아니다. 현장은 굉장히 근본적인 문제들이 있는 곳”이라고 말을 보탰다. 이어 “특히나 실버세대가 즐길 공연문화 등은 굉장히 난감하고 어려운 일”이라며 “단순히 행정에서 신경 쓴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예술의전당이 실버 연극을 적극 기획·제작·투자하려는 노력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행정적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이런 역할들이 광범위하게 여러 곳에서 이뤄져야 하죠. 2, 30대에 쏠린 공연의 관객층을 5, 60대까지 유인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제 영역에서 제 나이에 맞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충실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