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은 '퍼펙트스톰'에 내수는 '늪'에서 허우적

박종준 기자
입력일 2019-08-27 14:44 수정일 2019-08-27 16:58 발행일 2019-08-2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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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금액지수는 지난해 동월보다 10.1% 떨어졌다. 전달 수출금액(-15.5%) 보다 하락폭은 줄었지만, 8개월 연속 하락세다.(연합)

“요즘 미중 무역전쟁에다 일본 수출 규제 등으로 수출은 말할 것도 없고, 내수에서도 ‘추석특수’는 고사하고 현상유지도 쉽지 않을 판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국내 제조 대기업 관계자는 요즘 경기 상황을 이같이 하소연했다. 특히 국내 주요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장기화에다 △일본의 수출규제 및 화이트리스트 제외 △홍콩사태 장기화 △애플 보호를 위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 등 대내외 악재가 겹쳐 수출이 ‘퍼펙트 스톰’에 빠져들 조짐을 보이면서 하반기 수출 부진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이 중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가 28일 시행되는 가운데,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발표로 추가적인 경제보복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홍콩 시위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우리나라 수출에 직격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내수경기마저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기업들은 ‘내우외환’에 빠진 형국이다.

문제는 수출이 급격한 위축을 보이는 가운데 설비 등 관련 투자의 둔화폭이 확대되고 소비까지 지지부진하다는 점에서 경기 침체가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현실화돼가고 있으며 이 같은 한국경제의 ‘경고등’이 올 하반기 이후 더욱 짙어질 조짐이라는 점이다.

이 같은 우려는 최근 수출 등 경제지표를 보면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특히 반도체 경기 부진 속에 7월 한국의 수출 물량과 금액이 모두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악재로 꼽힌다.

실제로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금액지수는 지난해 동월보다 10.1% 떨어졌다. 전달 수출금액(-15.5%)보다 하락폭은 줄었지만, 8개월 연속 하락세다. 수출물량지수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7% 떨어졌다.

반도체 경기 부진 속에 7월 한국의 수출 물량과 금액이 모두 감소세를 이어간 것이다. 미중 무역 갈등에 일본 수출 규제가 더해지면서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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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배경에는 미중 무역전쟁이 최근 다시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일본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 관련 규제에 이은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와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등 대내외 악재로 인한 환율 상승, 경기침체 우려 고조 등 글로벌 경제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그나마 우리 수출을 한 축을 책임져왔던 홍콩마저 정치 불안정에 빠져들어 우리나라 수출에도 직격탄이 우려되고 있다. 홍콩의 범죄인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가 12주째 이어지며 혼란의 장기화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나라 수출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8년 기준 홍콩의 무역규모는 세계 7위 수준이며, 우리나라의 對홍콩 수출액은 460억 달러(약 56조원)에 달해 중국, 미국, 베트남 다음으로 4번째 수출국이다. 우리나라의 對홍콩 수출 중 반도체와 메모리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73.0%, 63.3%로 높게 나타났으며, 반도체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홍콩 시장에서 특히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한국의 대(對)홍콩 수출 중 상당수가 중국에 재수출되고 있어 홍콩-본토 간 갈등이 격화될 경우 홍콩 경유 대중국 수출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특히 반도체 수출의 경우 영향이 더욱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콩 탄압에 대한 서구권의 반발이 미중 무역갈등과 연계될 경우 세계 무역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고, 이에 △반도체 가격 급락 △미중 무역 갈등으로 인한 중국 수출 타격 △일본 수입규제로 인한 불확실성 증대 등으로 이미 많은 어려움을 겪은 우리 수출에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는 “통상정책을 실익을 기반으로 대외리스크에 실제적으로 대응하도록 제도적 지원과 정책적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가 없으면 ‘잇몸’이 대신해야 하지만, 수출을 뒷받침할 내수마저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2.5로 한 달 전보다 3.4포인트 하락했다. 소비자심리지수가 2년 7개월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을 친 것이다. 그 기저에는 앞으로도 일본 수출규제와 미중 무역분쟁, 환율 등이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수출은 글로벌 경기가 좋지 않아 그렇다 쳐도 내수의 경우 정부가 최근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을 펼쳤음에도 살아나지 않은 것은 소비자들의 심리가 꽁꽁 얼어붙어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준 기자 jjp@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