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제 전면전에 기업 등 재계 우려 '확산'

박종준 기자
입력일 2019-08-13 15:55 수정일 2019-08-13 15:56 발행일 2019-08-1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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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일본이 지난달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백색국가)에서 제외하자, 정부가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맞대응 카드를 꺼내 들면서 수출 기업들의 딜레마가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사진=연합)

지난달 초, 일본의 반도체 소재 관련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간 경제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서, 재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일본이 지난달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백색국가)에서 제외하자, 정부가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맞대응 카드를 꺼내 들면서 수출 기업들의 딜레마가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정부가 전날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 발표를 통해 기존 가·나로 분류하던 것을 가의 2로 세분화하고 일본을 여기에 분류함으로써 사실상 ‘한·일 경제전면전’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일단, 기업들은 이번 정부의 조치에 대해 표면상으로는 수긍하는 눈치다. 일련의 일본 수출 규제 조치가 아베 정부의 정치적 명분의 불합리한 조치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선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며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그 근거로 새롭게 분류된 ‘가의2’는 4대 국제수출통제 국가 중에서 국제수출통제 원칙에 맞지 않게 수출통제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를 포함시키는 조치라는 점을 들고 있다.

특히 일본이 첫 분류 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은 지난 2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기점으로 격화되고 있는 양국 간 경제전쟁에서 자칫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양국 간 ‘강대강’ 카드 남발로 인한 한일 관계 악화 장기화에 따른 교역 등 경제 리스크가 고조될 경우 기업들의 투자 및 경영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본은 지난달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리지스트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와 지난 2일 화이트리스트 제외할 때 전략적으로 한국을 겨냥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일본을 ‘다’로 분류하지 않고 새롭게 ‘가의 2’로 분류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WTO 제소하는 과정에서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미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WTO 제소 앞둔 만큼, 향후 심리 등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반대급부 조치를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곽노성 한양대 대학원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일본이 최근 EUV 포토레지스트 수출 허가 조치라는 유화적인 제스처가 나오긴 했으나 추가 보복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번에 맞대응 카드를 썼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면서도 “하지만 WTO 제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의 ‘강대강’ 카드를 썼어야 했는냐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곽 교수의 지적에 아홍배 동의대 무역학과 교수도 “원론적으론 정부의 이번 맞대응 카드에 대해 이의를 달고 싶진 않지만, 이로 인한 기업과 소비자들의 불확실성 증가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고려한 후 결정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경제도발에 상응하는 조치를 강구해야 하지만, 이에 따른 기업 등 시장에 미치는 리스크도 감안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한일 경제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우리 기업들이 떠 안아야 할 비용 부담 가중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이유로 재계에서도 정부에 감정적인 맞대응 보다는 냉철하면서도 전략적인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모 대기업 관계자는 “우리 경제가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했으나 기초소재, 부품, 첨단 기술 등에서는 여전히 밀리는 만큼 주력 산업 경쟁력이 제고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맞대응은 자칫 화를 자초할 수 있다”며 우회적으로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도 “현 상황에서 기업은 정부를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며 “그만큼 정부도 사전에 기업 등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종준 기자 jjp@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