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잊지 말아야 할 분노와 슬픔 그리고 사람들! 하루쯤 ‘국뽕’에 취해도 좋다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08-14 07:00 수정일 2019-08-24 14:39 발행일 2019-08-1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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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작소] 8·15 광복절 문화계 달구는 '애국 콘텐츠' 봉오동 전투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원신연 감독, 유해진․유준열․조우진 등과 특별출연 최민식․박희순의 ‘봉오동 전투’와 홍범도 장군의 노년 이야기 ‘극장 앞 독립군’
피해자’가 아닌 이름들…영화 ‘김복동’ ‘주전장’, 전시 ‘할머니의 내일’
뮤지컬 ‘영웅’과 ‘독립운동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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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 대법원의 일제 한국인 강제징용 배상판결로 촉발된 한일 무역 갈등이 ‘전쟁’으로 표현될 정도로 격화일로다. 3개 반도체 소재(포토리지스트·애칭가스·플루오린 플루아미드)에 대한 수출제한조치에 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명단)에서 제외하는 내용이 포함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이 각의·공포됐고 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노 재팬’(NO Japan, 일본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이라는 일본 제품 불매·일본 여행 거부 운동을 시작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광복 74주년 그리고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이하 수요집회) 1400회를 맞는다. 
채 해결되지 않은 분노와 슬픔 그리고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문화콘텐츠들이 다양한 형태와 장르로 만들어져 국민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과유불급의 국수주의와 민족주의에 ‘국뽕’(국가와 히로뽕을 합성한 신조어)이라 여겨질지도 모를, 하지만 제대로 해결되기까지 잊지 말아야할 분노와 슬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문화콘텐츠들을 소개한다.
[FILM][MUSICAL] 봉오동 전투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 영화 ‘봉오동 전투’ 뮤지컬 ‘극장 앞 독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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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봉오동전투'(사진제공=쇼박스)
1920년 6월,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 봉오동 전투. 이를 주제로 한 영화 ‘봉오동 전투’와 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9월 20, 2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스크린과 무대에 재현된다. 
영화 ‘봉오동 전투’가 이름 없는 독립군들의 질주와 분투의 여정을 따른다면 ‘극장 앞 독립군’은 봉오동·청산리 등의 전장에서 독립군을 이끌던 홍범도 장군의 노년에 집중한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총이 영 마뜩찮은 최고 칼 솜씨의 소유자 황해철 역의 유해진, 웃음기라고는 없이 ‘이 구역 가장 빠른 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이장하 류준열, 마적단 출신으로 ‘제 의지’가 작용하기 보다는 부화뇌동한 마병구 조우진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들이 독립군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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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과 재혼한 부인 이인복 여사, 손녀 예카테리나(사진제공=고려인역사박물관 김병학 관장)

본 이야기를 이끄는 이들을 비롯해 특별 출연으로 이름을 올린 홍범도와 극 내내 작전 수행 중인 독립군 포로군의 최민식, 박희순은 당시 전장으로 돌아간 듯 달리고 또 달리며 혹은 무자비한 고문을 감내하며 분투한다.

최고·최신의 화력으로 무장한 일본군 제19사단 월강추격대대를 상대로 ‘작전’을 수행하는 이름없는 독립군들은 지역감정을 유발했던 전라도와 경상도, 빨갱이로 몰렸던 이북지역, 제주, 강원도 등 출신을 뛰어넘어 ‘독립의지’를 불태운다. 
원신연 감독의 전언처럼 누군가의 눈물겨운 사연의 구구절절한 묘사, 죽음으로 독립의지를 증명하는 희생자 등 ‘신파’와 ‘국뽕’이라는 안전한 길을 마다하고 독립의지로 한군데로 내달리는 이들의 ‘희망’에 집중한다. 
이에 ‘지루하다’는 평도 없지 않다. 어쩌면 과장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순간들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독립군에 잡혔다 중간 즈음 자유를 얻은 일본 소년병이 꼭 보고 느낀 대로 누구에게든 진실을 알렸기를 바라는 간절함 등이 여운을 길게 한다. 
‘극장 앞 독립군’은 전장을 누비며 독립의지로 서슬이 퍼렇던 ‘날으는 홍범도’ 시절이 아닌 극장 앞 문지기로 지내던 노년의 홍범도에 집중한다. 1940년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에서 1943년까지 수위로 일했던 홍범도 장군이 극장장에게 일대기를 들려주며 ‘날으는 홍범도’라는 연극을 제작하는 데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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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3일 진행된 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 쇼케이스(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김광보 총연출의 전언처럼 홍범도 장군을 비롯해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은 비루한 말년을 보냈다. “그 원인을 알고 싶고 연극적으로 보여주고자 기획된” 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은 김광보 총연출의 의도처럼 홍범도와 극장의 관계 속에서 비루하고 실패한 모습이지만 저들이 있어 지금의 우리가 존재함을, 실패 역시 미래를 위한 한 걸음임을 전할 예정이다.
김광보 총연출이 이끄는 서울시극단을 비롯해 서울시국악관현악단·청소다.국악단, 서울시 무용단, 서울시합창단·소년소녀합창단, 서울시뮤지컬단, 서울시오페라단,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단 등 세종문회화관 산하 9개 예술단 소속의 300여명이 총동원된다.  
[DOCUMENTARY] [EXHIBIT] ‘피해자’가 아닌 이름들의 이야기  : 영화 ‘김복동’ ‘주전장’, 전시 ‘할머니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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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복동’(사진제공=엣나인필름)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피해사실을 공개 증언하면서 시작한 위안부 피해자 수요집회가 1400회를 맞았다.  

강제 동원된 소녀들의 이야기는 국제적인 인권문제로까지 확대됐지만 일본 정부는 사과는커녕 입에 올리기도 심한 폄훼의 말들로, 한국 정부는 피해자를 철저히 배제한 합의로 끊임없이 생채기를 내고 있다. 

가해자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한 목소리에 돈으로 입막음을 하려는 일본과 그에 한국정부가 부화뇌동 하는 사이 이제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스무명으로 줄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이 문제를 주제로 한 영화와 전시가 마련됐다.
“나이는 93세, 이름은 김복동.”
영화 ‘김복동’은 1992년 3월 피해 사실 고발을 시작으로 1993년 유엔 인권위원회,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수요집회와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을 위해 암투병 중에도 홀로 섰던 외교부 청사 앞 등에서 끊임없이 외쳤던 이름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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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복동’(사진제공=엣나인필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의 세 번째 다큐멘터리로 올 1월 28일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다. 송원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한지민이 내레이션을, 배우 정우성·박호산, 변영주 감독 등이 홍보를 자처했다. 
피해자로 시작했지만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였던 김복동 할머니의 27년 간 투쟁의 여정을 따르는 ‘김복동’은 격한 감정이나 분노로 일관하기보다 할머니의 일상과 증언을 통해 담담하게 풀어낸다. 
신파에도, 극적 감정에도 기대지 않고 차분하게 할머니의 행보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그 여운은 그가 걸어온 만큼, 또 다시 그 만큼을 걸어야할지도 모를 만큼 길게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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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전장’(사진제공=시네마달)
영화 ‘주전장’은 일본의 인종차별 문제 영상으로 일본 우익들의 공격대상이 된 일본계 미국인 유투버 미키 데자키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기사를 쓴 기자에 인신공격을 가하는 우익단체를 보며 왜 저리도 감추려고 하는지 궁금해진 미데키 감독이 시작한 3년 동안의 추적기다. 
감독은 진지하지만 무겁지만은 않은 화법으로, 철저하게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일본 우익들과 정부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폄훼하고 부정하며 성적 대상화했는지, 또 어떻게 지워내려 했는지를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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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할머니의 내일'(사진제공=나눔의집)

감독의 ‘안전’을 우려하게 될 정도로 단호하게 결론까지 거침없이 내달리는 문제작이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역사인식 부재, 우익들에 의해 감춰지고 왜곡되는 역사 등의 분위기가 팽배한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논쟁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8월 8일 개봉한 ‘김복동’은 지난 12일 누적관객수 3만명을, 7월 25일 한국에서 개봉한 ‘주전장’은 16일째인 지난 9일 2만명을 넘어섰다.
“내가 왜 위안부입니까. 나는 이옥선입니다.” 인사동 갤러리 이즈는 나눔의 집과 손잡고 7일부터 ‘할머니의 내일’(8월 20일까지)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신분 아닌 신분에 가려졌던 할머니들의 일상을 만날 수 있는 전시로 ‘할머니의 어제-어제처럼 아픈 역사’ ‘기억-고향, 고통 그리고 소망’ ‘오늘-피해자가 아닌 나’ ‘내일-우리의 내일’ 4개부로 구성됐다.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는 과거부터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으로 기록한 생활 그리고 나눔의 집에서 평범하게 울고 웃고 장구를 치며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가 하면 하트까지 날리는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 서울 전시를 시작으로 독일 베를린(9월 1~14일), 부산·대전(10월 예정) 등지로 순회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MUSICAL][EXHIBIT] 아쉽지만 여전히 유효한 10주년 뮤지컬 ‘영웅’과 20명의 순국열사를 만날 ‘그리고, 100’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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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웅’(사진제공=에이콤)
제작사 에이콤의 대표이기도 한 윤호진 연출의 위계에 의한 성폭력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안중근을 연기하기로 했던 배우 안재욱의 음주운전 등으로 다소 빛바랜 10주년을 맞았지만 뮤지컬 ‘영웅’(8월 2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전하고자 하는 민족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김도형·정의욱·이정열)를 하얼빈에서 사살하고 순국한 안중근(정성화·양준모, 이하 시즌 합류·가나다 순)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안중근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스러져 간 이름 모를 이들의 간절하고 애틋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왜색 짙은 연회 장면, 등장 이유가 모호한 조선의 마지막 궁녀 설희(정재은·린지) 등 여성 캐릭터들의 활용 등이 아쉽기는 하다. 그럼에도 나라를 위해 스스로를 내던진 이들이 호소하는 메시지는 묵직하고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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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을 비롯한 김구, 한용운, 윤동주, 박열, 김상옥, 김원봉, 신채호, 안경신, 한용운 등 순국열사 20명의 인물화를 만날 수 있는 ‘그리고, 100’展(사진제공=마포문화재단)
안중근을 비롯한 김구, 한용운, 윤동주, 박열, 김상옥, 김원봉, 신채호, 안경신, 한용운 등 순국열사 20명의 인물화를 만날 수 있는 ‘그리고, 100’展(8월 20일까지 마포아트센터 갤러리맥, 스튜디오Ⅲ)도 진행 중이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전으로 일제강점기 조국을 위해 애썼던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그리고, 100’에서는  구광모, 노재순, 박승원, 아작, 오형숙, 유진숙, 이익태, 정의철, 최우, 탁노, 신상철 등 현대작가들의 붓끝에서 재현된 순국열사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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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weight: normal;">독립운동 맞습니다-결코, 약자여서는 안 될 그들을 위해 | 정상규 지음(사진제공=아틀리에BOOKS)

[BOOK]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이름들… : 책 ‘독립운동 맞습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들도 있지만 그들만큼 절절하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스러져간 이들도 넘쳐난다. 
‘영웅’으로 분류되는 독립운동가들의 이름모를 ‘동지’로 저항하고 분투하며 자신을 내던졌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독립운동 맞습니다’가 출간됐다. 
정진완, 박상열, 문형순, 김용이, 신현표, 조복애, 안성녀, 최능진 등 분명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가로 지정되지 않은 32명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회 민간위원이자 ‘잊혀진 영웅들’의 정상규 NGO ‘MASA’ ‘4Weeks’ 설립자다.
저자는 지난 6년간 513명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책을 엮었다. 아무도 몰랐던 이들의 이야기는 물질만능주의, 자본주의, 대기업 갑질, 재벌횡포 등으로 얼룩졌음에도 내 나라임을 상기시키며 “더 좋게 만들기 위한” 몸짓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