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브레히트와 바일, 자본주의의 폐부를 찌르다,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07-11 07:00 수정일 2019-07-11 09:45 발행일 2019-07-1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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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Board]‘서푼짜리 오페라’(Dreigroschenoper), ‘베를린 레퀴엠’(Das Berliner Requiem), ‘일곱 가지 죽을 죄’(Die Siebenn Todsunden) 등의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와 쿠르트 바일(Kurt Weill)의 첫 번째 콤비작
SHAO마하고니의 지루함을 참을 수 없는 지미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서푼짜리 오페라’(Dreigroschenoper), ‘베를린 레퀴엠’(Das Berliner Requiem), ‘일곱 가지 죽을 죄’(Die Siebenn Todsunden) 등의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와 쿠르트 바일(Kurt Weill)의 첫 번째 콤비작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7월 11~1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한국에서 초연된다.  

1927년 브레히트의 ‘가정 기도서’에서 추려낸 5편의 시에 바일이 곡을 붙인 20분짜리 ‘작은 마하고니’의 성공으로 수정과 개작을 반복하며 완성된 ‘마하고니의 번영과 몰락’은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을 바탕으로 꾸린 최초의 오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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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20분짜리 ‘작은 마하고니’를 거쳐 1930년 3월 9일 라이프치히의 노이에스 테아터에서 초연되던 당시에도 파격이었고 히틀러 군단의 핍박으로 고난을 겪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유쾌하지만 어딘가 기괴한 웃음, 새로운 것에 대한 실험정신, 기존의 형식에 대한 파괴 본능 등으로 무장하고 폐부를 찌르는 극작가 브레히트. 

유대 교회전통 속에서 성장하며 독일 제국주의에 환멸을 느끼며 ‘반(反) 바그너’를 주창했던 작곡가 바일. 두 사람 특유의 색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품이다.

이번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은 급격한 산업화로 자본주의가 본격화된 원작의 배경을 자본주의가 갓 태동한 시기로 거슬러 오른다. 

흑백의 모노톤, 직선과 사각형으로 이뤄진 무대,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지극히 현실적인 비극들이 무대 위에 형상화된다.

위스키가 너무 싸서, 너무 평온해서 이상한 마하고니에는 행복하면서도 욕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그득하다.

사기죄로 수배 중인 이들이 건설한 이 도시에 알래스카에서 벌목공으로 7년간 사투를 벌이며 큰돈을 번 지미·잭·빌리·조, 네 친구가 도착한다. 

추위와의 사투 끝에 살아남아 마하고니에서 사랑하는 제니를 만난 지미를 비롯한 친구들은 이제야 사람답게 살아보겠다는 희망과 뭔가 이상한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마하고니로 향하는 허리케인의 공포, 죽음의 직전에서 살아남은 네 친구와 마하고니 사람들은 모든 금지된 것들을 벗어던지고 ‘네 맘대로 해!’를 외친다.

SHAO사본 -지미를 타이르는 친구들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마음껏 먹고 여자들과 놀고 권투를 즐기고 술을 마시는 것이 기본 규칙이 돼버린 마하고니 사람들. 그들에게 스스로 택한 대로 살아가기, 남을 짓밟고 오르기, 두려워 말고 꿋꿋이 버티기 등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돈이다.  

자본주의를 향한 신랄한 비판은 현대무용, 흰 박스와 그림자, LED를 감각적으로 배치한 모던한 무대, 픽셸아트, 이퀄라이저, 17세기 궁정스타일의 의상 등으로 구현된다. ‘돈 있으면 섹시하다’는 정의처럼 돈에 모든 것을 걸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던 마하고니의 지미와 친구들의 결말은 그야말로 ‘브레히트의 부조리극’답다.  

너무 많이 먹어서, 상대도 안되는 강자와의 권투경기로 친구들을 잃은 지미는 허리케인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신나는 노래를 불렀다고, 질 것이 뻔한 친구에게 배팅해 살인을 방조했다고, 여자를 유혹했다고 규류 2일부터 10년형 등을 선고받다. 하지만 정작 그를 사형으로 내몬 죄목은 무일푼이다. 

SHAO사본 -재판을 받는 지미 2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돈이 없어 위스키 3병과 망가뜨린 커튼봉 값을 내지 않은 것이 죽을 죄가 되는 도시의 비극은 지금 시대에서도 종종 목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네 맘대로 해!”부터 “돈으로 산 즐거움은 즐거움이 아니었고 돈으로 산 자유도 자유가 아니었다”는 깨달음까지의 여정이 남일 같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오페라와 현대무용의 묘한 부조화, 계륵처럼 느껴지는 엔딩, 소유물처럼 취급되는 여성 캐릭터들 등이 아쉬움을 남기긴 한다. 하지만 브레히트가 사회 부조리에 겨누는 칼끝은 여전히 날카롭고 음악적 도발로 브레히트의 낯섦을 한껏 끌어올리는 바일의 음악어법은 섬세하면서도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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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의 지휘자 다비드 레일랑, 총연출 안무 안성수(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코지 판 투테’ ‘마술피리’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다비드 레일랑(David Reiland)이 지휘자로,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이 총연출과 안무가로 극을 꾸렸다. 지미 마호니는 미하엘 쾨니히(Michael Konig)와 국윤종, 그와 사랑에 빠지는 마하고니의 사창가 여인 제니 스미스는 바네사 고이코엑사(Vanessa Goikoetxea)와 장유리가 더블 캐스팅됐다.  

더불어 마하고니를 설립하는 사기꾼들인 레오카디아 베그빅·트리니티 모세·패티는 각각 백재은·박기현·구태환, 지미의 알래스카 동지들인 빌·잭·조는 나유창·민경환·이두영이 연기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