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그라운드] #누아르 #재즈넘버 #한국화 #동시대성…뮤지컬 ‘시티오브엔젤’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07-02 23:00 수정일 2019-07-02 23:00 발행일 2019-07-02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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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콜먼의 스윙 재즈 넘버로 무장한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198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누아르
오경택 연출·박해림 작가·김문정 음악감독, 최재림·강홍석, 이지훈·테이, 정준하·이기홍, 가희·백주희, 리사·방진의, 김경선·박혜나 등 출연
시티오브엔젤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스캣으로 진행되는 오프닝 넘버(사진제공=샘컴퍼니, CJ ENM)

“번역극이고 1989년에 초연됐던 30년 전 작품이어서 시간적 거리와 문화적 거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왜 이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이 작품을 해야 하는가가 연출로서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고 풀어야할 숙제였죠.”

2일 마포구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열린 뮤지컬 ‘시티오브엔젤’(8월 8~10월 20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제작발표회에서 오경택 연출은 ‘동시대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티 오브 엔젤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오경택 연출(사진제공=샘컴퍼니, CJ ENM)

뮤지컬 ‘시티오브엔젤’은 ‘포시’ ‘바넘’ ‘스위티 채리티’ ‘더라이프’ 등에 참여했던 싱어송라이터 사이 콜먼의 스윙, 재즈, 블루스 풍 넘버로 무장한 작품으로 198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후 웨스트엔드, 호주, 일본 등에서 공연됐다.

흑백영화가 성행하던 194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영화 시나리오 작가 스타인(강홍석·최재림, 이하 가나다 순)이 누아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스타인과 그의 시나리오 속 주인공인 사립탐정 스톤(이지훈·테이)을 중심으로 모든 캐릭터들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1인 2역을 소화한다.

스타인의 제작자 버디이자 영화계 거물 어윈 어빙은 정준하·임기홍, 버디 부인 칼 헤이우드와 팜므파탈 어로라 킹슬리는 가희·백주희, 스타인의 여자친구 게비이자 스톤의 헤어진 연인이자 여가수 바비는 방진의·리사, 스타인과 스톤의 비서 도나이자 울리는 김경선·박혜나가 연기한다.

‘시티오브엔젤’의 한국화 작업은 ‘레드북’ ‘킬미나우’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등의 오경택 연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모래시계’ ‘나빌레라’ ‘생쥐와 인간’ 등의 박해림 작가, ‘영웅’ ‘팬텀’ ‘엘리자벳’ ‘웃는남자’ 등의 김문정 음악감독이 함께 한다.

◇한국화와 동시대성에 대한 고민, 누아르 ‘시티오브엔젤’ 

시티오브엔젤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출연진. 왼쪽부터 스타인 역의 최재림, 스톤 테이·이지훈, 스타인 강홍석(사진제공=샘컴퍼니, CJ ENM)

“작품 자체가 영화 세계를 다루고 있고 필름 누아르를 만드는 과정을 담고 있어요. 필름 누아르는 1930년대 후반부터 50년 초반까지 미국에서 상당히 유행했던 장르로 미국적 정서가 많이 녹아 있습니다. 오리지널 창작진들이 뮤지컬화를 하면서 전통 누아르적인 요소들을 패러디와 오마주를 통해 블랙 코미디 톤으로 만들었죠. 언어적 유희들이 드라마의 큰 묘미이다 보니 미국적 정서를 한국의 것으로 치환하는 윤색작업에 공을 들였어요.”

한국화와 동시대성에 대한 고민을 전한 오경택 연출은 “누아르는 플롯이나 진행방식, 주인공 및 캐릭터들에 전형적인 면이 많다. 약간의 배열 및 구성 변경이 있었지만 이야기 진행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시티오브엔젤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김경선(왼쪽)과 리사(사진제공=샘컴퍼니, CJ ENM)

“코믹해야하는 부분들은 윤색을 한 박해림 작가와 제가 연습하면서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위트 있고 재밌는 표현이지만 한국 정서에 안 맞으면 상의하고 시도하면서 매우 즐겁게 만들고 있죠. 처음 대본을 받고 불편했던 부분은 여성캐릭터였어요. 수동적이고 전형화된 여성캐릭터가 존재해서 어떻게 하면 동시대에 의미있게 재생산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죠.”

이어 “자신의 욕망과 욕심을 위해 주변 모든 인물들을 성적 매력으로 이용하는 팜므파탈의 전형성을 완전히 뒤집고는 흘러갈 수 없는 이야기”라며 “세밀한 지점에서 톤앤매너를 바꾼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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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시티오브엔젤’ 박혜나(사진제공=샘컴퍼니, CJ ENM)

“하지만 원래 작품이 가진 코미디적인 측면을 훨씬 보강하고 강조함으로서 이야기를 한발 떨어져서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현재 사회의 대변이 아니라 하나의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인물로 보이게 하는 ‘거리 기법’을 사용해 동시대 관객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게 했죠. 음악적인 매력이 덧붙여진 대중적이고 쉬운 스토리로 만들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같은 과정에서 가장 많이 변주된 캐릭터가 현실과 영화 속에서 비서로 등장하는 도나와 울리다. 이들 캐릭터에 대해 오경택 연출은 “각색이라고 할 정도로 방향을 가장 많이 튼 유일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도나와 울리를 연기하는 박혜나는 “연출님이 처음에는 거의 다르지 않은 캐릭터라고 하셨다”며 “한국화하면서 도나와 울리의 갭을 많이 둬서 차이를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다”고 말을 보탰다.

이어 “한국정서와 시대에 맞게 도나가 많이 바뀌어서 원작과 차이가 가장 많은 캐릭터”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외에 무대도 변주된다. 오경택 연출은 “구조 자체가 시나리오를 써가는 작가 스타인과 그 시나리오 속 주인공 탐정 스톤, 현실과 영화가 교차되고 병치되는 구조”라며 “가장 큰 건 현실은 컬러로, 영화는 흑백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는 흑백을 절반으로 나눠 쓰는 등 심플한 방법을 썼는데 한국 프로덕션은 영화 필름 롤을 상징하는 회전 원형 무대, 카메라의 이중조리개 등 좀 더 다채롭게 구성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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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시티오브엔젤’ 김문정 음악감독(사진제공=샘컴퍼니, CJ ENM)
◇재즈넘버, 18인조 빅밴드 무대 위로!

“이 작품의 음악적 특성은 빅밴드 위주의 재즈 스타일 넘버입니다. 곡 구성이나 형태가 아닌 연주 스타일에 목적을 두고 있어요. 재즈의 자유로움과 연주자들, 싱어들의 자유로움을 스캣(의미가 없는 음절을 가지고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재즈 창법)으로 표현했죠.”

김문정 음악감독은 ‘시티오브엔젤’의 음악적 특성을 “재즈 스타일 연주와 스캣”이라며 “재즈 풍과 그렇지 않은 곡들로 구성해 흑백, 컬러 등에 적절히 배치한다”고 설명했다.

제작발표회에서는 엔젤 김찬례·윤지인·이준성·황두현과 멀티 김연진·이종석, 스윙 안다영·이준영 8명이 선사하는 오프닝 넘버 ‘프롤로그’(Prologue)와 김경선·리사의 ‘왓 유 돈 노 어바웃 우먼’(What You Don’t Know About Women), 최재림의 ‘퍼니’(Funny), 강홍석·테이의 ‘유 아 낫싱 위드아웃 미’(You’re Nothing With Out Me)가 시연됐다.

김문정 감독은 “전체 합창이 별로 없는 작품”이라며 “원작에서는 엔젤 4명이 드라마를 이끌어갔는데 이번 한국 프로덕션에서는 멀티 4명을 추가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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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시티오브엔젤’(사진제공=샘컴퍼니, CJ ENM)

“엔젤 4명과 멀티 4명을 뽑는 오디션이 엄청 치열했습니다. 음색은 물론 연주와 가창 스타일을 맞춰야 해서 3, 4차에 걸쳐 오디션을 진행했죠. 빅밴드는 ‘시카고’처럼 무대 위에 올라가는 구성이지만 3시간 내내 노출되는 건 아니에요. 리사·방진의 배우가 연기하는 재즈 여가수 장면에서는 밴드와 함께 라이브 무대를 보는 듯한 장면으로 연출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한 김문정 감독은 “재즈의 자유로움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가장 어려웠다”며 “그루브는 교육이나 훈련이 아닌 익숙함으로 몸에 배 있어야 하는 것들이라 배우는 물론 연주자들 섭외와 오디션 과정이 까다로웠다”고 덧붙였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