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r Play 인터뷰+제13회 딤프 Pick ⑤] 스페인 힙합 뮤지컬 ‘라 칼데로나’의 나탈리아 칼데론·파블로 파스 “이 세상 모든 칼데론을 위하여”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07-01 14:00 수정일 2020-05-29 14:13 발행일 2019-07-01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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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힙합 뮤지컬 ‘라 칼데로나’의 파블로 파스(왼쪽)와 나탈리아 칼데론(사진=허미선 기자)

“마리아 이네스 칼데론(Maria Ines Calderon)이 17세기 스페인 왕의 여인으로만 평가되는 건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에요. 대단한 배우였고 그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 그 자체였죠.”

13회를 맞은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7월 8일까지 Daegu International Musical Festival, DIMF 이하 딤프)의 공식초청작인 스페인의 ‘라 칼데로나’(La Calderona)에서 마리아 이네스 칼데론을 비롯해 이사벨 여왕의 하녀 플로리타, 신문팔이 소년 등을 연기하는 나탈리아 칼데론(Natalia Calderon)은 이렇게 말했다.

극의 주인공인 마리아 이네스 칼데론에 대해 “그 가치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나탈리아의 말에 펠리페 4세, 이사벨 여왕, 검열관, 수련 수녀 등을 연기하는 파블로 파즈(Pablo Paz) 역시 “칼데론이 역사에서 왕의 여인으로만 평가받는 건 슬픈 일”이라고 동의를 표했다.

◇마리아 이네스 칼데론, 역사의 뒤안길에 가려졌던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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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 칼데로나’ 중 마리아 이네스 칼데론을 연기 중인 나탈리아 칼데론(사진제공=딤프 사무국)

“역사에서 항상 여자는 그늘에 가려져 있어요. 업적이 있어도 저평가받곤 하죠. 하지만 칼데론은 그걸 다 뛰어넘은 대단한 위인이고 재평가 받아 마땅한 중요한 인물이죠.”

뮤지컬 ‘라 칼데로나’는 배우였고 17세기 스페인의 왕 펠리페4세의 연인이었던 마리아 이네스 칼데론의 일대기를 힙합 리듬으로 표현한 남녀 2인극이다.

랩과 아르디 하이(Hardy Jay)의 디제잉에 웃음과 슬픔이 실리는 작품 속에는 칼데론 뿐 아니라 이사벨 여왕, 수녀원으로 숨어든 수련 수녀 등 ‘여자’라는 이유로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등장한다.

칼데론은 유명 배우로 좀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펠리페 4세의 눈에 들면서 그 꿈에 가까워지는 듯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매춘부라는 세상의 손가락질이다. 쉽게 그녀에게 매혹당한만큼이나 빨리 질려버린 왕은 칼데론의 아이를 빼앗고 수녀원으로 보내버린다. 

프랑스 출신의 이사벨 여왕은 ‘정비’지만 바람둥이 왕 때문에 온 나라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는가 하면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아 죽어버리는 자신의 아이들 때문에 고통과 절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칼데론이 왕에게 쫓겨나 머물던 수녀원에 잠깐 등장하는 수련 수녀마저도 정략 결혼을 시키려는 아버지를 피해 도망쳐온 신세다.

“칼데론을 주연으로 내세우면서 예술가로서 책임감을 느껴요. 역사의 뒤편에 가려진 여성상을 재해석하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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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힙합 뮤지컬 ‘라 칼데로나’의 나탈리아 칼데론(왼쪽)과 파블로 파스(사진=허미선 기자)
나탈리아의 말에 파블로는 “역사에서는 늘 남자이야기 뿐이다. 작가, 위인 등 항상, 어떤 분야든 그렇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에 위대한 여성도 분명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기록으로 남아있질 않죠. 이에 스페인에서는 여성도 남성과 같다는 의식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어요.”

이렇게 전하는 파블로에 나탈리아는 “여자도 역사 속에서 분명 기여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그 여자들이 누구였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을 보탰다. 나탈리아의 말에 파블로는 “스페인 황금시대의 귀환”에 대한 희망을 전하기도 했다.

“당시의 스페인은 언어의 시대였어요. 모든 사람들이 적절한 말들로 풍자하곤 했고 시와 예술 작품들로 가득했죠. 그런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되돌리고 싶어요. 그 시대는 여전히 살아 있거든요.”

◇17세기 스페인 인물 이야기에 랩과 디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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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힙합 뮤지컬 ‘라 칼데로나’의 디제잉을 책임진 아르디 하이(사진제공=딤프 사무국)

“스페인의 황금시대에는 언어로 풍자와 해학을 표현하는 예술 양식이 있었어요. 힙합도 그런 맥락에서는 언어로 시처럼 표현하는 음악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러운 결합이었죠.”

이렇게 말한 나탈라이는 17세기 스페인의 실존 인물 이야기에 최신 음악인 힙합을 결합한 데 대해 “다듬어진 텍스트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랩의 라임을 맞추는 건 운율에 맞춰 시를 읊는 것과 같아요. 하면할수록 오히려 쉬워졌죠.”

이렇게 전한 나탈리아에 파블로는 “처음엔 좀 이상했지만 하면할수록 자연스럽게 결합됐다”고 말을 보태며 연습 전 랩에 대한 강연을 들으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전했다.

“강연을 듣는데 어떤 사람이 ‘랩을 하기에 너희는 좀 늙지 않았니’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뭐든 처음은 낯설고 힘들지만 익숙해져요. 랩도 마찬가지죠.”

◇1인 다역의 묘미 살린 스페인식 희비극, 그럼에도 ‘공감’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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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힙합 뮤지컬 ‘라 칼데로나’에서 펠리페 4세는 물론 이사벨 여왕으로도 분하는 파블로 파즈(사진제공=딤프 사무국)

“정확하게는 블랙코미디라기 보다 ‘희비극’(Tragicomedia) 뮤지컬이에요. 드라마도 있고 코미디도 있고 웃음도, 슬픔도 있죠.”

장르에 대한 나탈리아의 설명에 파블로는 “많이 웃는 사람이 또한 많이 울기도 한다”는 스페인의 격언을 언급하며 “그걸 잘 반영한 극”이라며 웃었다.

이어 ‘라 칼데로나’에 대해 “웃는 장면에서 슬픈 장면으로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는 파블로의 말에 나탈리아는 스페인 전통춤인 플라멩코를 직접 추며 “스페인에는 화를 표현하다가도 침착해지는, 극과 극의 감정을 표현하는 문화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펠리페 4세, 이사벨 여왕, 수련 수녀, 검열관, 칼데론의 아들 요한까지 저는 5개의 역할을 해요. 처음엔 총을 맞은 느낌이었죠. 왕이었다가 아들이었다가…나는 누구인가,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었죠. 각각의 캐릭터들을 구분하기 위해 애쓰곤 했는데 나탈리아의 눈을 맞추면서 하다보면 어려움은 사라져 버리죠.”

운율을 맞춘 시, 라임을 바탕으로 한 랩을 기반으로 하는 ‘라 칼데로나’는 엄청난 양의 대사와 가사, 노래들을 쏟아낸다. 이에 대해 “총을 맞은 느낌”이었다는 파블로에 나탈리아는 “즐겁기도 하다”고 말을 보탰다.

“다양한 인물들을 연기하는 건 흥미로운 여정이었어요. 캐릭터들 안에서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배웠거든요. 그렇게 배운 관점들로 세상을 이해하고 역사가 말하고자하는 것들을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죠.”

‘라 칼데로나’는 시적인 언어, 대사와 가사를 랩으로 읊어가다 보니 많은 말들이 빠르게도 지나가버리는 극이다. 한국어로 공연돼도 따라가기 바쁠 이 극의 대사와 가사들을 이번 딤프에서는 스페인어로, 그를 번역한 자막으로 관람해야했다. 오죽하면 딤프 측에서는 관객들의 극 이해를 돕기 위해 20개의 신을 설명하는 리플렛을 준비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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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힙합 뮤지컬 ‘라 칼데로나’의 나탈리아 칼데론(왼쪽)과 파블로 파스(사진=허미선 기자)

“빠른 건 맞아요. 시적인 표현이기도 하죠. 대사나 가사가 많기도 해요. 하지만 음악, 감정, 연기, 동작 등이 곁들여지기 때문에 한국 관객들이 자막을 보지 않더라도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걸 이해하리라고 생각해요.”

파블로의 말에 나탈리아는 “하나하나의 신은 고정된 사진과 같다”며 “그 하나의 신 안에서 멈춰진 역사를 말하고 있다. 풍부한 제스처들로 표현되는 분노, 고통, 꿈, 모성애 등 다양한 감정들과 함께”라고 동의를 표했다.

“그 소중한 아들을 빼앗기고 수녀로 살다 17년이 지나 아들에게 받은 편지를 읽는 칼데론의 장면이 그 좋은 예죠. 아들이 살아있고 그 아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편지를 읽는 칼데론의 감정을 관객들도 똑같이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파블로의 여왕과 나탈리아의 플로리타 그리고 수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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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힙합 뮤지컬 ‘라 칼데로나’의 수녀원 신(사진제공=딤프사무국)

“저는 이사벨 여왕 장면을 제일 사랑해요.”

파블로는 자신이 연기하는 이사벨 여왕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칼데론이 주인공인 극에서 ‘지위’로 그를 압박하는 이사벨 여왕은 자칫 악역처럼 보일지도 모를 인물이다. 하지만 한없이 사랑받으며 프랑스 왕실에서 보낸 어린시절에 대한 그리움, 남편의 홀대와 전국민의 조롱 속에 수많은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절절한 사연과 그로 인한 지옥같은 고통은 또 다른 역사의 희생양임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수녀원장이 된 칼데론과 수련 수녀가 등장하는 장면은 아주 특별해요.”

앞서 언급한 ‘많이 웃는 사람이 많이 울기도 한다’는 스페인의 격언을 실천이라도 하듯 시종일관 유쾌하게 웃던 파블로는 여왕의 대사와 수녀들의 장면을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던 파블로는 “제 동료인 나탈리아와 연결되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두 수녀들처럼 나탈리아와 저의 연결고리가 느껴지는 장면이에요. 나탈리아가 신문으로 분장하고 ‘호외요 호외’를 외치는 장면은 즐겁게 춤추는, 아주 신나는 장면이죠.”

나탈리아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들 중 여왕의 시녀 프롤리타를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꼽으며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자신의 할 일을 다 하는 인물”이라고 이유를 전했다. 이어 “칼데론이 아이를 안고 있는 장면 그리고 두 수녀 장면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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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힙합 뮤지컬 ‘라 칼데로나’의 나탈리아 칼데론(왼쪽)과 파블로 파스(사진=허미선 기자)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 칼데론에게 아이는 새로운 희망과도 같아요. 그녀 자신의 것이 처음 생겼잖아요. 그 새로운 존재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장면이죠. 그리고 마지막 수녀원장이 된 칼데론은 성숙한 모습이 보여져서 좋아해요. 과거를 다 보내고 평정을 찾은, 이제는 과거와 상관없이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죠. 수련 수녀 역시 강제로 결혼을 시키려는 아버지를 피해 수녀원으로 도망친 수련 수녀 역시 여자들의 현실을 보여줘요. 그런 여자들의 연대가 좋아요.” ◇2인극으로 성장한 나탈리아와 파블로 “이 여정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

“칼데론과 나탈리아의 눈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어요. 여성에 대해서도, 저 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었죠. ‘라 칼데로나’를 시작할 때와 지금의 저는 많은 성장을 거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어요”

파블로의 말에 나탈리아는 “배우와 배우, 사람과 사람으로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서로를 인정하고 완벽히 이해하며 성장하는 여정”이었다고 표현하며 “이제 우리 두 사람은 완전히 연결돼 있다”고 털어놓았다. 웃음도, 눈물도, 사랑도 많은 나탈리아와 파블로는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고맙다”고 크게 웃다가 울컥거리며 눈시울을 붉혔고 마주 안고 서로에 대한 감사와 신뢰를 주고받았다.

“이 모든 여정을 함께 해줘서, 그리고 행복할 미래까지 가르쳐주고 같이 해줘서 고마워”라고 감사함을 전하는 파블로에 나탈리아 역시 “그 여정 동안 나를 잘 보살펴줘서 고마워”라고 화답했다.

“저희를 한국으로 초대해주셔서, 이런 여정을 선물해주셔서 딤프 측에 너무 감사해요. 나중에 손녀, 손주들에게 ‘나 한국에서 공연도 했어’라고 말해줄 수 있어서, 그 생각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칼데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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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힙합 뮤지컬 ‘라 칼데로나’(사진제공=딤프 사무국)

“어머니는 역사에 대해 많이 알고 계셨고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하셨죠.”

마리아 이네스 칼데론과 나탈리아 칼데론. 그렇게 어머니를 통해 마리아 이네스 칼데론을 알게 된 나탈리아의 두 번째 성 역시 ‘칼데론’이다.

“전 극장을, 그리고 그 극장에서 연극 보는 걸 좋아했어요. 매우 극적인 성격이기도 하죠. 그런 저를 보고 어머니는 ‘우리 집에 칼데로나가 있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주 어려서부터 친밀감을 느꼈죠. ‘라 칼데로나’를 하면서는 그(마리아 이네스 칼데론)가 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리곤 “아주 가끔은 내 전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할 정도”라고 덧붙이는 나탈리아에 파블로는 “그녀가 지금 이 시대에 살아있었다면 한국에서 ‘라 칼데로나’를 공연하는 걸 아주 기쁘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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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힙합 뮤지컬 ‘라 칼데로나’의 나탈리아 칼데론(왼쪽)과 파블로 파스(사진=허미선 기자)

“강제로 수녀원으로 보내지고 배우로서의 삶을 끝냈어야 했을 때, 그 시절의 그녀는 절대 2019년에 ‘라 칼데로나’라는 공연이 무대에 오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나탈리아의 말에 파블로는 당시 뿐 아니라 지금도 세계 곳곳 어디에나 존재하는 칼데론들에게 “늦든 빠르든 당신의 이야기, 당신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위안을 전했다. 나탈리아 역시 “남녀 성 평등을 위한 연대와 움직임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을 보탰다.

“고통받고 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가려져 있는 이들이 여전히 많아요. 남녀 성 평등을 위한 연대와 움직임을 통해 언젠가는 평등해질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