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한 살 더 먹은 당신… 지혜롭게 나이들고 싶나요?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19-01-09 07:00 수정일 2019-01-09 07:00 발행일 2019-01-09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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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석학 2인에게 듣는 노년의 삶… 신간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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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마사 누스바움과 로스쿨 전 학장 솔 레브모어.(사진제공=어크로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2012년 개봉한 정지우 감독의 영화 ‘은교’ 중 백발의 시인 이적요(박해일)의 대사다. 여고생과 노년의 시인 그리고 젊은 제자 사이에 얽힌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지만 수많은 관객들이 인상적으로 꼽는 ‘나이듦’에 대한 대사이기도 하다. 2019년 새해를 맞아 출간된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은 세계적인 두 석학이 인생 후반을 위해 나눈 대화가 오롯이 담긴 책이다. 부제 ‘현명하고 우아한 8번의 지적대화’가 말하듯 ‘세계 100대 지성’에 이름을 올린 시카고대 석좌교수 마사 누스바움과 로스쿨 전 학장 솔 레브모어는 이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인류가 축적한 깊고 넓은 지적 유산을 넘나들며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전한다.

◇묵직한 주제에 대한 명쾌한 대화

60대에 들어선 두 친구의 대화 형식을 띤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은 두 저자의 에세이를 두편씩 소개한다. 같은 주제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묻기도 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관객들에게 무작정 주제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토론의 여지를 남겨 세월이 주는 무게를 주위 사람들과 나누도록 배려하고 인생 선배로서의 일상을 공개한다.

특히 두 사람은 다른 성별과 성격, 학문적 접근법을 지녔기에 각 주제마다 신선한 의견이 충돌한다. 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은퇴한 사람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에서 현재지상주의를 발견하고 비판하는 반면 법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솔 레브모어는 좀 더 현실적인 입장에서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는 그들의 모습을 인정하는 식이다.

책은 독자들이 ‘품격 있게 나이 들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제시한다. 우정, 나이 들어가는 몸, 적절한 은퇴 시기, 나의 과거 등의 주제는 다른 세계 혹은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더 좋은 모습으로 나이 들기 위한 방법, 경제적 불평등과 노인빈곤, 노년의 성 등 우리에게 닥친 미래에 대한 준비과정을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우리와 세계에 대한 숙제가 아닌 실질적인 고민과 의견으로 꾸려진 문장은 읽는 데 막힘이라곤 없다.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현명하게 사는 법’에 관한 책이다. 지혜를 획득하고 사랑하고 무언가를 잃어 버리고 편안함을 느끼는 단계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전하는 깊은 이해와 조언은 스스로 늙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상당 부분 적용된다.

◇ 진부한 소재를 영화와 연극, 고전을 넘나들며 해설

지혜롭게 나이드다는 것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마사 누스바움,솔 레브모어 지음 | 안진이 옮김|1만 7000원.(사진제공=어크로스)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은 꽤 두꺼운 책이다. 47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유명한 고전과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리어왕’이 그 예다. 리어왕은 노인들의 치매를 다루는 보편적인 대상이자 그 시기의 꼰대들이 가진 자기애와 막무가내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표면적으로는 지배하고 통제하는 데 익숙한 인물이지만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기 쉬운 인간의 가벼움을 역설하는 것이다. 

노년의 사랑은 어떨까. 젊은 사람들은 노년기에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책에서는 오페라 ‘장미의 기사’와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필두로 최근 영화 ‘사랑은 너무 복잡해’와 ‘로맨틱 레시피’ 심지어 현재 미국과 프랑스의 대통령인 트럼프와 마크롱의 결혼을 통해 ‘갭연애’(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제시한다. 특히 마지막 8장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주제로 유산을 주제로 심도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단순히 자녀들을 위한 재산분할을 일컫는 유언이 아니다. 솔은 나눔의 역설을, 마사는 기부를 통한 인간의 이타성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무엇보다 책은 나이듦의 1순위인 건강한 몸과 아름답게 만들려는 모든 시도를 간과하지 않음으로써 젊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미국인들은 해마다 성형수술에 130억 달러를 쓴다. 하지만 여기에 성형 목적의 치과수술, 모발 이식수술, 라식 등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계산이 빠진 것을 간과하지 않는다. 책은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에 비해 미용에 4배 이상을 쓴다고 전한다. 책의 여성 저자인 마사는 눈을 서구적으로 돋보이게 만드는 쌍꺼풀 수술에 대한 아시아 여성들에 대한 열망을 몇 줄의 소개로 정의했다. 그렇다고 아재스러운 입장만 강조하지도 않는다. 저자들은 현명한 나이듦이란 과거에서 뭔가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확언한다. 노인의 불운을 표현하기보다 나이듦으로 인해 주어지는 차별과 성숙한 사랑에 대한 의견을 곁들일 뿐이다.

이 책의 장점은 생존과 건강을 아우르는 신체보전을 필두로 나이를 먹을 수록 감각, 상상, 사고를 해야 한다는 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데 있다. 더불어 웃음, 인간 이외의 종(동물, 식물, 자연, 세계관)과 우정을 나눔으로서 얻는 기쁨을 장황하지 않게 설명한다. 그 어떤 책도 이렇게 엑기스만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게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은 눈부신 지적 유산에서 길어 올린 ‘나이듦’에 대한 응답을 전한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