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허황옥부터 BTS까지...다문화계 ‘알쓸신잡’ ‘세계시민교과서’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18-10-31 07:00 수정일 2018-10-31 07:00 발행일 2018-10-3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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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민 교과서 | 이희용 지음 | 라의눈 | 1만 5000원 | 사진제공=라의 눈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은 전세계 충성스런 팬덤 아미(ARMY·방탄소년단 공식팬클럽)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세계를 주름잡는 슈퍼스타로 등극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대’에 선정된 한현민은 국내 최초 흑인 혼혈 모델이다. 

‘지구촌 가족’이라는 말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의 날갯짓이 전세계 문화계를 휘어잡는다. 국내 거주 외국인은 230만명을 넘어섰고 국제결혼을 통한 다문화 가정은 31만 가구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7000개의 새로운 성씨가 생겨난다. 한국을 떠난 재외 동포 743만명은 전 세계 179개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제 다문화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신간 ‘세계시민교과서’는 일명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잡학사전’ 같은 다문화 인문교양서다. 전직 기자 출신 저자가 지난 2년간 연재한 칼럼을 토대로 역사와 21세기 현실 속 이주민과 다문화 이슈를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게 엮어 설명한다.

첫 장부터 흥미롭다. 저자는 웅녀와 환웅의 결혼은 천신을 믿는 무리와 곰을 숭배하는 부족의 결합이라는 학자들의 풀이를 토대로 ‘단군은 문헌상 최초의 다문화 가정 자녀’라고 소개한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가야 개국왕이자 김해 김씨 시조 김수로와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결혼으로 우리나라 최초 결혼 이주여성이 탄생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더는 단일민족이라는 믿음의 근거에서 벗어나야 하며 한민족의 원형이 다문화적 결합을 거쳐 형성됐다고 적었다.

고구려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와 결혼한 바보 온달은 고려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역사서에는 온달이 ‘비루 먹은 당나귀처럼 우습게 생겼다’는 표현이 기재됐다. ‘온다르’란 이름은 중앙 아시아 러시아 자치 공화국 투바 일대에서 흔하다. 때문에 온달이 우리와 생김새가 다른 서역인이거나 중앙 아시아 일대 고대 왕국 소그디아 출신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다문화

한국의 영문 국호 ‘코리아’의 어원인 된 고려는 한국사 최초의 글로벌 국가이자 다문화 국가다. 각종 사료에 외국인을 받아들인 기록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이민족을 적극 포용해 다문화 사회를 형성하며 국가의 기틀을 다지고 풍요로운 문화를 일궜다. 지금도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미 고려는 800년 전 베트남과 사돈을 맺었다. 베트남 리왕조의 6대왕 영종의 일곱 번째 아들로 태어난 리롱뜨엉은 새 왕조가 들어선 후 중국을 거쳐 고려 황해도 웅진 반도로 망명했다. 고종은 리롱뜨엉을 고려 여인과 결혼시키고 화산땅을 식읍으로 내렸다. 리옹뜨엉이 바로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이다.

역사는 우리 민족이 다문화에 개방적이었다고 기록하지만 21세기의 한국사회는 오히려 다문화에 폐쇄적이다. 올 초 무사증 제도를 도입한 제주에 예맨 난민이 몰리자 지난 6월 법무부가 비자 없는 예맨인의 입국을 막는 사태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1992년 유엔 난민지위협약과 난민의정서에 가입했고 1994년 출입국관리법에 관련 규정을 신설해 난민 신청을 받기 신청했다. 2012년에는 아시아 최초 난민법을 제정해 2013년부터 시행했다. 저자는 “한국 전쟁 중 많은 난민이 발생해 세계 각국의 도움을 받았던 우리나라는 난민문제를 남일처럼 여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제주 예민 난민은 현재 인도적 체류허가가 난 상태다.

저자는 다문화인을 향한 우리 안의 이중 잣대도 꼬집는다. 지난해 11월 한국과 콜롬비아 축구 대표팀 평가전에서 콜롬비아 선수가 한국의 기성용 선수에게 눈을 양 옆으로 당기는 제스처를 취하자 ‘인종 차별 행위’라며 비난과 항의가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어떤가. 영화 ‘국제시장’에는 우리 고교생이 동남아 노동 출신 노동자를 놀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저자는 “오랫동안 인종차별 피해자로 살아온 한국인이 이주노동자에겐 쉽게 가해자로 둔갑한다”며 “외국인의 인종차별에만 분노할 게 아니라 우리 안의 이중 잣대를 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단순히 국내의 이주민 역사만 짚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저자는 킹 목사가 품은 차별 철폐의 꿈이나 국제 왼손잡이의 날 등을 소개하며 다문화에 대한 차별에서 벗어나려는 세계적인 움직임을 전한다.

또 역사 속 전세계를 누린 글로벌 코리안부터 한류 드라마의 효시 ‘사랑이 뭐길래’ 열풍과 방탄소년단으로 이어진 K팝 세계화 현상도 짚는다. 책 곳곳에 풍부한 역사·인문학적 지식과 현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녹아 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